도시농부 어렵지 않아요

서울아, 농사짓자

등록 : 2016-03-31 14:56 수정 : 2016-04-15 16:07

크게 작게

땅은 작물을 길러내고 그 작물로 사람을 살리는 이중의 생명곳간이자 아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무한한 놀이터다. 주말 봄볕이 따사롭게 내리쬔 26일 낮 서울 강동구 둔촌동 도시텃밭에서 네살배기 예빈이가 할머니가 일궈놓은 밭의 흙덩이를 모종삽으로 부수며 놀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첫째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이 빨갰다. 병원에서 아토피 약을 처방했지만 아무리 발라도 아이는 그대로였다. 어느 날 성분을 알 수 없는 연고를 처방했다. 바르니 다음날 깨끗해졌다. 그러나 바르지 않으면 원상태로 돌아갔다. 스테로이드제가 포함된 연고였다. 증상만 잠시 재울 뿐 후유증이 큰 성분이었다.

 아이가 크면서 얼굴 부위는 조금 나아졌지만 무릎, 목, 엉덩이 등 접히는 부분은 여전했다. 시행착오 끝에 아토피 요인은 먹거리라고 결론을 내렸다. 아이는 햄버거나 라면, 치킨 등을 먹고 나면 증상이 심해졌다. 탄산음료, 과자류 등도 마찬가지였다. 체질을 개선해야 했고, 그러자면 먹거리를 바꿔야 했다.

 시판 유기농 먹거리는 벽이 높았다. 2009년 아이가 열살 때부터 텃밭을 시작했다. 아파트 가까운 곳에 텃밭 10평을 구했다. 생초보였지만 상추, 치커리 등 쌈채류는 먹고 남을 만큼 나왔다. 이웃에서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의 도움이 컸다. 여쭈면 자상하게 가르쳐줬다.

 이듬해 자신이 붙었다. 발효액에도 눈을 돌렸다. 텃밭에서 거둔 토마토는 물론 유기농, 매실, 자두, 돌복숭아, 돌매 등 철마다 나오는 것들로 효소를 담갔다. 로션도 직접 만들었다. 직접 기르고 가공하고 만든 것들을 먹고 마시고 바르다 보니 아이의 증상은 놀랄 정도로 빨리 사라졌다. 중학교 1학년 땐 깨끗해졌다.

 늦가을부터 겨울까지가 문제였다. 채소를 사먹어야 했다. 2012년 가을, 베란다에서 기르기로 했다. 거실 쪽은 텄기 때문에 방쪽 한평 남짓뿐이었다. 높이 150㎝, 120㎝짜리 3단 프레임 두 개를 창쪽으로 설치했다. 큰 화분엔 공동 살림을 좋아하는 엽채류나 미나리를 심고, 작은 화분엔 독거를 즐기는 허브를 심었다. 맞은편에도 화분에 대파를 심었다.

 처음엔 실패했다. 통풍과 과습이 문제였다. 물빠짐이 좋고 가벼운 상토를 구입했다. 화분 바닥에 깔망 놓고 물티슈를 얹은 뒤 마사토를 2㎝ 깔고 상토를 넣었다. 노지텃밭에서 자라던 것을 옮겨 심었다. 골고루 햇빛을 받도록 1주일에 한번씩 화분을 돌려주었다. 한달에 한번 영양 액비를 줬다. 오줌액비나 인산액비를 집에서 만들었다. 해가 있는 동안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진딧물이 사라졌다.


 한평짜리 베란다는 작은 농원이 되었다. 상추, 쪽파, 적환무, 당근, 비트, 치커리, 비타민, 청경채, 쑥갓, 미나리, 열무, 알타리무, 배추, 바질, 루콜라, 펜넬, 한련화 등 30여종이 푸르름을 뽐냈다. 식탁은 한겨울에도 싱그러운 봄이었고, 그것을 채취하고 먹는 아이들 역시 늘 푸르렀다. 그곳은 아이들이 생명을 돌보고 배우고 나누는 아이들의 교실이자 밭이었다.

정리 곽병찬 <한겨레> 대기자 chankb@hani.co.kr

<서울&>은 도시농업 활성화를 위해 절기에 맞춰 ‘서울아, 농사짓자’를 연재합니다.

지면은 김희수 전 도시농부학교 교장, 도시농부 유광숙, 김명희, 박종덕씨가 함께 만들고, 곽병찬 <한겨레> 대기자가 정리합니다. 김명희씨는 스테디셀러 <심은 대로 잘 자라는 텃밭>의 저자입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