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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 솔솔, 한옥 품은 어린이집

등록 : 2016-06-30 13:41 수정 : 2016-06-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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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로 기둥을 세워 지붕에 기와를 얹고 한지로 벽을 바르니, 아이들을 돌보는 내용도 달라졌다. 노원구 상계9동 수락한옥어린이집에서 7살배기 하얀눈꽃반 아이들이 최원탁(77) 훈장 선생님과 함께 한글 자음을 붓글씨로 따라 쓰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품밟기 시작!” “이크, 에크, 이크, 에크”  

7살 아이들의 우렁찬 구령 소리에 천장 대들보가 울린다. 생활한복을 입고 전통무예 택견을 익히는 아이들의 발놀림이 아직 서툴지만 귀엽기만 하다. 문 창살 틈 사이로 형들을 훔쳐보는 어린 동생들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지난달 22일 오전 노원구 상계9동 수락한옥어린이집. 분명 어린이집인데, 서울 시내 여느 어린이집과 풍경이 사뭇 다르다. 수락산 자락의 배밭과 가까워 전망이 확 트였다. 수락산 숲의 싱그러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건물은 전통 한옥이어서 주변 자연과 잘 어울린다.  

구립 수락한옥어린이집은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상계9동의 유일한 국공립 어린이집이자 서울에 두 번째로 들어선 한옥어린이집이다. 노원구는 지역주민이 원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짓기 위해 국토교통부의 한옥 건축지원사업에 공모해 건축비 일부를 지원받았다. 1979㎡(600평)의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면적 546㎡) 규모로 짓는데, 건축비만 29억7900만 원이 들었다. 수락한옥어린이집에는 2살부터 7살까지 모두 99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들꽃향기’ ‘고운햇살’ ‘산새소리’ 등의 반 이름에서 자연의 정취가 느껴진다.  

어린이집의 방군자(49) 원장은 “도심 속에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이 아토피나 천식 같은 질환을 많이 앓고 있어 안타깝다. 수락산 자락에 전통 한옥으로 어린이집을 지으니, 주변 공기도 좋고 한옥 건물 자체도 숨을 쉬고 있어서 아이들이 건강하고 키도 쑥쑥 자라는 것 같다”며 웃었다.  

방 원장이 말했듯이 수락한옥어린이집의 목표는 ‘숨을 쉬는 집’이다. 아파트의 콘크리트에 갇힌 아이들에게 건강한 공간을 제공하자는 뜻이다. 벽체는 시멘트 벽돌 대신 건식 소나무 목재를 썼고, 지붕은 서까래와 대들보를 얹어 기와를 올렸다. 창호 역시 전통의 멋을 살리면서도 단열 기능을 높이기 위해 목구조 단열창호를 사용했다. 벽체와 기와지붕에 글라스울(유리섬유) 단열재를 넣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사물함과 교구함은 모두 미송으로 짜 맞췄다. 어린이집에 들어서면 은은한 소나무 향이 나는 이유다.

자연 향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처음에는 코를 벌름거리며 “이건 무슨 냄새예요?” 하며 많이 물었다고 한다. 김수정(36) 교사는 “원래 새집증후군에 예민한 편이어서 막 개원한 이곳에 왔을 때는 걱정도 많았는데 눈도 안 따갑고 피부 알레르기도 없다”고 말했다.  


수락한옥어린이집은 이미 노원구 학부모들에게 유명세를 탔다. 입학을 신청하고 기다리는 아이만 6월 말 현재 1379명에 이른다. 한옥이라는 친환경 보육 공간도 매력적이지만, 전통을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인기에 큰몫을 한다. 7살 아이를 보내는 박수현(40) 씨는 “유치원을 다니다가 이곳 환경이 좋아서 옮겼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배우는 장구, 택견을 너무 좋아한다. 전통 프로그램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은데 아이들 정서에 좋은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전통문화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은 천연 염색한 생활한복을 입고 있다.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일체감을 갖기 위해 생활한복을 입는다. 아이들은 연필 대신 붓을 쥐고, 피아노 건반 대신 장구를 두드린다. 어린이집의 기본 누리과정에 더해 매주 서예, 국악 사물놀이, 택견 무예 등을 특별활동으로 한다.  

“서예는 쓸 때마다 붓끝이 갈라져서 힘들어요. 발차기는 재미있는데.” 7살 박가온은 택견 수업이 있는 수요일이 제일 좋다고 한다. 택견을 지도하는 외부 강사 이현기 씨는 “초등학생은 많이 지도해 봤지만 어린이집에서 택견을 가르치기는 처음이다. 아이들이 한옥에서 한복을 입고 택견 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달마다 하는 풍욕과 다도, 그리고 단오 등 절기마다 마련하는 세시풍속 놀이도 수락한옥어린이집의 자랑거리다. 방 원장은 “삼짇날에는 진달래꽃을 따다 화전을 부쳤는데, 아이들이 먹는 것인지도 모르더라. 진달래화전의 유래를 설명해 주고 아이들과 동산에 가서 꽃도 따왔다. 7월 유두에는 구슬꿰기를 할 예정인데, 한옥에서 하는 전통 활동으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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