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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로 갈라진 100년, 도림고가 허물고 ‘사람 길’ 잇는다

10여년 전부터 안전 우려 제기, 지지대 없으면 E등급
하반기 실시설계 거쳐 2028년 착공, 2032년 준공 예정

등록 : 2026-03-1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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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 도림고가 위에서 본 경인·경부선 철도 모습. 멀리 여의도 고층빌딩이 보인다.

서울의 대표적 교통 혼잡 구간인 영등포 로터리 고가차도가 철거에 들어간 가운데, 영등포구(구청장 최호권)가 건립 52년 된 ‘도림고가’ 철거에도 박차를 가하며 ‘고가 없는 영등포’ 만들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 서남권의 대표 상업지역 영등포에는 백화점, 호텔, 시장 등 상업시설과 주거지가 밀집해 있다. 여기에서 경인·경부선 철도는 영등포 지역을 남북으로 가르는 물리적 경계 역할을 해왔다. 철도로 나뉜 영등포의 남북을 잇는 통로는 고가차도 네 곳과 지하차도 두 곳 등 모두 여섯 개다.

영등포 본동과 문래동을 잇는 영등포고가를 비롯해 도림동과 문래창작촌을 연결하는 도림고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시설들은 건립된 지 수십 년이 지나며 노후화되었을 뿐 아니라 지역 간 균형 발전을 가로막는 또 다른 물리적 장벽이 되고 있다.

도림고가는 1974년 설치됐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당시 급격한 인구 증가와 차량 통행량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핵심 교통시설이었다. 현재 도림고가에는 버스만 8개 노선 약 3500대가 출퇴근 시간에 운행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높게 솟은 도림고가 콘크리트 구조물은 도림동과 문래동 상권을 양분했고 고가 아래 공간은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공간으로 남았다”며 “주민들은 철도 소음과 분진으로 고통받고 있고, 영등포초등학교 학생들은 높고 위험한 고가 계단을 통해 걸어서 통학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도림고가로 영등포역 일대 상업지구와 문래동 창작촌, 도림동 주거지역이 물리적으로 단절돼 지역 간 균형 발전도 저해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림고가 붕괴를 막기 위해 상판 하부에 설치된 임시구조물.


도림고가의 노후화 문제도 심각하다. 2017년 정밀안전진단에서 C등급 판정을 받았는데 구조물을 지탱하는 보조시설물도 지지력이 약하다는 평가였다. 이 때문에 도로 하부에는 임시 지지대(가설 벤트) 30개가 설치됐다.

이후 실시된 2022년 정밀안전진단에서도 C등급을 받았으나 가설 벤트를 제외한 구조물 상태는 즉시 사용을 중단해야 하는 E등급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사실상 구조물 수명이 다한 상태라는 의미다.

이에 지역 주민들과 시의원, 국회의원 등은 2013년부터 도림고가 지하화를 요구해왔다. 영등포구는 이를 주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로 보고 서울시에 지속적으로 개선을 건의해왔다. 2020년 서울시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안전성을 재조사하고 근본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노력 끝에 사업은 서울시 심의를 통해 현재 기본설계 단계에 들어섰다.

어르신들이 도림고가 측면 보행로에 설치된 계단을 위태롭게 오르고 있다.

구 관계자는 “올해 2월부터 도림고가 주변 도로 공간 구조개선 기본설계가 진행되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 실시설계를 거쳐 2028년부터 2032년 사이 공사 시행과 준공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업의 핵심은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지하차도를 신설함으로써 차량 통행로를 지하로 이동시키고 지상 공간은 보행자 중심의 녹지 공간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총연장 약 662m 구간에 4차로에서 6차로 규모의 지하차도가 조성된다. 사업비는 약 1249억원이며 서울시 예산으로 추진된다.

구는 지상 공간의 공원화와 별개로, 철도로 단절된 남북을 안전하게 잇기 위해 ‘지하보도' 설치를 서울시에 추가로 건의했다. 구 관계자는 “철길 아래로 폭 3m 규모의 쾌적한 보행 공간을 확보하고, 20인승 이상의 대형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어르신과 장애인, 유모차 이용 주민 등 교통 약자들도 불편 없이 철길 너머를 오갈 수 있도록 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난 5일 오전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이 주민들에게 도림고가 철거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최호권 구청장은 “도림고가 철거는 영등포가 지닌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기폭제이자 단절을 넘어 소통으로, 소음에서 문화와 녹음으로 변모할 영등포의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주민들은 도림고가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설 새로운 주민친화공간을 맞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떡전고가, 청계고가, 아현고가, 홍제고가 등 20여 곳을 철거해 현재는 고가도로가 83개 남아 있는 상태다. 시 관계자는 “사람 중심 보행 친화도시로 가꾸기 위해 꾸준히 철거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도림고가 철거는 영등포의 100년 역사를 새로 쓰는 작업이기도 하다. 도림고가 철거에 더해 향후 경부선 철도 지하화 사업까지 진행되면 영등포 지역은 도시 재편 수준의 획기적 발전이 기대된다. 구는 이를 염두에 두고 문래동 철공소 밀집 지역을 인공지능(AI)·빅데이터·로봇 등 첨단 산업이 모이는 스마트 산업밸리로 전환해 일자리 창출의 중심지로 만들고, 영등포역 일대를 고밀도 복합 개발해 새로운 도시 랜드마크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철거를 앞둔 도림고가 모습. 영등포구 제공

“산업화의 자산과 현대 문화를 결합한 미래도시”

낡은 공장은 문화 창작 공간
서남권 핵심 거점으로 재부상

오늘날 단절의 상징이 된 고가와 철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영등포를 서남권 핵심 도시로 키워낸 일등공신이었다. 본래 갯벌과 모래밭이었던 영등포는 1899년 경인선 개통과 함께 핵심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원료와 기계는 영등포역을 거쳐 서울로 들어왔으며 영등포에서 생산된 제품은 다시 철도를 통해 전국으로 공급됐다.

한강을 끼고 있어 풍부한 용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영등포가 공업지대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 됐다. 1930년대 일제는 영등포를 병참기지로 육성하며 방직, 제분, 맥주 공장 등 대규모 공업시설을 집중 배치했다. 조선맥주와 쇼와기린맥주가 영등포에 자리 잡은 것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르러 영등포는 산업화의 중심지로 전성기를 맞으면서 수출 증가와 함께 공장들이 밤낮없이 돌아갔다. 영등포역 주변은 물론 경인로를 따라 구로공단과 온수동 기계공업단지는 당시 한국 산업화를 상징하는 풍경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와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영등포역 일대는 지하상가와 대형 유통시설이 결합한 현대적 상권이자 영화관과 음악다방, 고고장이 밀집해 젊은 세대가 북적이는 공간이었다. 낮에는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미팅하고 밤이 되면 생맥줏집과 고고장으로 향하던 모습이 흔했다.

영등포시장은 서남권 최대 도소매 시장으로 지역 상권을 떠받치는 중심 역할을 했다. 이후 1984년에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이, 1991년엔 경방필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이 문을 열면서 서남권 대표 쇼핑 중심지로 도약했다. 당시 영등포역 상권은 명동과 함께 서울의 양대 상권으로 꼽혔다.

1980년대 말 공장들이 외곽으로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영등포는 전환점을 맞았다. 과거 공장 부지에는 대규모 아파트와 복합 쇼핑몰이 들어섰고, 여의도의 금융 중심지와 영등포역 중심 상업지구가 결합한 서울서남권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영등포의 역사는 대한민국 산업화와 도시 변화의 축소판으로 평가된다. 쇠와 기름 냄새가 가득했던 공업지대는 이제 복합 문화 상권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늘날 영등포 상권은 체험형 복합 문화 상권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과거 경방필백화점 자리는 대형 복합 쇼핑몰 타임스퀘어가 들어섰다. 쇼핑, 영화, 숙박이 결합한 원스톱 소비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문래동 철공소 골목은 문래창작촌으로 변화했다. 낡은 공장 건물을 개조한 카페와 식당 갤러리가 들어서며 젊은층이 찾는 문화 공간으로 성장했다. 여의도 대형 쇼핑시설과 영등포역 상권이 연결되며 지역 전체가 거대한 쇼핑 클러스터로 확대되고 있다.

1970~1980년대 영등포가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청춘들이 처음 마주하던 활기찬 도시였다면 지금의 영등포는 산업 도시의 기억과 현대 문화가 결합한 서울의 대표 복합 문화 도시로 새로운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글·사진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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