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농사짓자

시금치 대신 비름, 텃밭 작물로 차리는 추석 차례상

등록 : 2016-08-25 15:26 수정 : 2016-08-26 15:03

크게 작게

백로(9월7일)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고 했다. 9월의 햇살과 더위는 농작물에게 보약과도 같다.

참외는 중복 때 맛있고, 수박은 말복, 복숭아는 처서, 포도는 백로에 제맛을 자랑한다. 백로까지 핀 고추 꽃은 효자라는 말이 있다. 이즈음 모든 낟알이 고개를 숙이는 건 익어서도 그러려니와 새들의 공격에 저를 지키려는 뜻이다.

추석 무렵 들녘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농부의 장화가 아침 이슬에 흠뻑 젖도록 농작물을 돌보면 겨울에 배부를 수 있다고 했으니, 다시 한번 허리띠를 질끈 매고 들로 나서자. 하지만 추석을 앞둔 주부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일도 일이려니와 차례 상차림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요즘은 시장에 가면 없는 게 없으니 돈만 있으면 되지 싶겠지만, 근본을 알 수 없는 수입 농산물로 채워진 음식을 조상들이 좋아하실 리 없다.

전부는 아니라도, 텃밭에서 거둔 것으로 차례상을 차려 보자. 지금도 텃밭에 지천인 비름나물, 고구마 줄거리, 호박, 가지, 풋고추, 들깻잎, 배추와 무 솎은 것, 노각(늙은 오이) 등 둘러보면 상에 올릴 식재료는 얼마든지 많다.

으레 올리는 시금치 대신 비름 뜯어서 나물 무치고, 고사리 대용으로는 고구마 줄거리를 볶아서 올려 보자. 도라지가 없다면 노각으로 대신할 수 있겠다.

추석 무렵에는 김칫거리도 비싸다. 그러면 고구마 줄거리로 김치를 해 보자. 줄거리의 껍질을 까서 살짝 절인 다음 열무김치 담그듯 하면, 아삭거리는 식감과 감칠맛이 열무김치나 배추김치 못지않다.

미리 말려둔 호박으로 호박고지 나물하고, 가지 말려둔 것도 볶아 둔다. 바로 따서 부친 호박전, 가지전, 고추전의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무엇에 비교할까. 여름에 콩국수 해 먹고 남은 콩을 불려 삶은 뒤 되직하게 갈아서 고추랑 대파 넉넉히 넣고 전을 부치면, 구수하고 쫄깃한 맛이 고기 전 없어도 서운하지 않다.


대파로도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데쳐서 나물하고, 길쭉하게 토막 내서 밀가루를 살짝 묻힌 뒤 계란에 적신 뒤 넓적하게 전을 부친다.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얹어 같이 부치면 고기만 부친 것보다 향도 좋고 담백한 것이 물리지 않는다. 굳이 산적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과일이 비싸다고 제대로 익지 않은 과일을 조상님께 올릴 수는 없다. 그럴 때면 잘 익은 토마토를 차례상에 올리자. 자손들이 농약이나 비료 쓰지 않고 땀 흘려 가꾼, 그래서 손녀 손자 건강에도 좋은 음식을 조상님도 좋아하실 것이다. 아이들과 음식의 근본을 이야기하다 보면 저희의 근본도 함께 생각할 수 있으니 뜻 또한 얼마나 깊은가.

글·사진 유광숙 도시농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