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농사짓자

같은 햇빛도 사계절 따라 힘이 다르다

등록 : 2016-12-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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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들판을 지키는 허수아비. 계절의 흐름에 잘 따르는 것이 우리 삶을 건강하고 평안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지난가을 고양시 선유동 맹추네농장에서 들깨·울금·생강을 거둬 농막 안 그늘에서 1~2주일 말렸습니다. 문득 봄여름에 수확한 것들과 비교됐습니다. 봄여름 것은 가을 것과 달리 음지에서 말리는(음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농장 식구들이 나눴습니다. 계절에 따라 어떤 것은 말리고, 다른 것은 안 말리고,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봄여름의 수확물은 지표 가까이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봄에 씨를 뿌려 하지 전후에 열매 맺는 딸기, 수박, 참외 등은 땅에 기대어 자랍니다. 반면 가을 열매들은 땅에서 멀리 떨어져 하늘을 보고 그 열매를 맺습니다. 포도·사과·배·밤·호도·가래 등 껍질도 질기거나 단단합니다.

봄여름은 양(陽)이 생하면서 음(陰)이 확장하는 양생음장(陽生陰長)의 시기입니다. 작물은 수분이 많은 흙에 밀착해 수분을 끌어올려 형(열매)을 확대합니다. 반면 가을 겨울은 양이 안으로 응축하면서 음이 수렴, 저장되는 양살음장(陽殺陰藏)의 시기입니다. 이때의 결실은 수분을 배제하면서 형을 완성하기 때문에 땅과 떨어져 열매를 맺습니다. 음장(陰藏)의 형을 이뤄야 알차집니다.

가을 수확물이 말리는 과정을 거치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때 제대로 말리지 못하면 수확물은 곰팡이가 슬고 썩어버립니다. 썩는 것도 응축이 안 돼 수분이 남아 있는 부분입니다. 음건은 가을 수렴 과정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봄여름의 햇빛은 형을 확장시킵니다. 잎과 열매로 수분을 발산하고 확산시킵니다. 이때 열매가 대부분 껍질이 얇으면서 수분이 많고 즙이 넘치는 건 이 때문입니다. 이 수분은 가을철 열매의 수분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 썩지 않고 짓물러 버립니다. 반면 가을 겨울의 햇빛은 기를 안으로 모아들이기에 작물은 껍질이 두껍고 수분을 응축하며, 후숙이 가능합니다.

계절의 전환은 천지와 맞물려 끊임없는 순환과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런 자연의 변화 속에서 사람의 삶도 때론 상승 확대하고 때론 수렴 응축합니다. 그 흐름에 잘 따르는 것이 우리 삶을 건강하고 평안하게 하는 지름길일 겁니다. 유년 시절 그 이치를 몰랐습니다만 어머니와 함께 그 흐름을 느끼며 따랐던 것입니다. 새삼 사람이란 자연의 일부라는 지극히 간단한 이치를 절감합니다.

겨울은 물이 내려가는 계절입니다. 호수나 계곡의 물이 땅 아래로 내려가 저장되는 응축의 시기입니다. 봄이 되면 응축의 힘이 솟구쳐 오르게 됩니다. 수렴, 저장의 계절인 겨울에 우리네 인간도 안으로 힘을 모아 내면을 단단하게 하는 응축의 날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글·사진 시중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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