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의 서울살이 “난 주거 걱정 덜었다”

등록 : 2016-04-21 15:56 수정 : 2016-04-2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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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벤처 ‘모두가 행복한 생활공간 연구소’가 관악구 신림동 고시원을 리모델링한 ‘쉐어어스’는 보증금없이 월세로만 입주자를 받는다. 19명이 입주해 있는 쉐어어스 1층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꾸며져 지역 사랑방 구실도 한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2004년 상경한 박수정씨

SH공사 ‘이웃기웃’ 입주

고등학교 때까지 지방에서 자란 박수정(30)씨. 그의 서울살이는 2004년 시작됐다. 대학 4년 동안은 기숙사에서 지냈다. 당연히 집 문제로 고민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 문을 나서는 순간, 집은 그를 무겁게 억누르는 ‘짐’으로 돌변했다.

처음 얻은 집은 지인의 이모가 사는 아파트의 방 한칸이었다. 월세 33만원. “1년쯤 살았는데, 관리비와 보증금이 없었어요. 그게 얼마나 좋은 여건인지 그땐 몰랐죠.”

두번째는 고모 집에서 6개월 정도 월세 부담 없이 지냈다. 그리고 옮긴 세번째 집은 반지하였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5만원, 관리비 3만원. 임대료 부담은 적었지만, 불안감 때문에 4개월 만에 다가구주택으로 이사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 관리비 3만원. 반지하 방보다 나았지만 문 두드리는 소리나 복도의 소음 때문에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샤워를 하다 바깥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어요.”

원룸으로 한번 더 이사를 했다. 이번에는 보증금 1000만원에 관리비를 포함해 월세 45만원. 28개월을 살았으니, 가장 오래 산 곳이다. 하지만 생활비 부담을 이겨내기가 점점 힘겨웠다.


집 문제로 고민이 컸던 2014년, 예상치 않게 ‘숨통’이 트였다. 친구의 소개로 에스에이치공사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지은 ‘이웃기웃’의 입주자 모집에 신청을 한 것이다. 이웃기웃은 청년 주거난 해결을 위해 에스에이치공사가 공급하는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임대주택이다. 소득과 나이를 기준으로 1차 선발되고 두 차례 교육 받은 뒤, 입주계획서 심사, 면접을 거쳐 최종 입주자로 선정됐다.

2014년 12월 박씨는 이웃기웃에 입주했다. 원룸 형태의 생활이지만, 지난 1년5개월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그는 말했다. 우선 경제적으로 이전보다 ‘여유’가 생겼다. 박씨는 보증금 1700만원, 월세 9만8천원에 이웃기웃에서 생활하고 있다. 직전의 원룸에 견주면 월세가 22%에 불과하다. “집세 내던 돈으로 학원을 다니는 등 저를 위한 투자에 신경을 쓸 수 있게 됐죠.”

경제적 안정감도 좋지만, 더 큰 반가움은 29명의 ‘이웃’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모두 30명인 입주자들은 한달에 한번 커뮤니티 공간 ‘사랑방’에 모인다. 건물의 운영·관리와 청소는 물론이고 자잘한 수리까지 스스로 해낸다. 2주일에 한 차례 식사도 함께한다. “밤 늦게 귀가할 땐 전화로 옆집을 불러내 함께 들어가곤 해요. 그동안 어디에서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죠.”

박씨는 “얼마 전 20대 총선 선거 유인물을 받고 서울 시민, 서대문구 주민이라는 소속감을 느꼈는데,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만 혜택을 받은 것 같아 또래 청년들에게 미안하다. 가뜩이나 취업난으로 힘든 우리 세대가 집주인의 터무니없는 보증금·월세 인상 때문에 애를 태워야 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요즘 표정이 밝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웃었다. ‘이웃기웃’이 가져다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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