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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사정은 세종 때 우의정까지 지낸 노한의 별서로, 지금 있는 효사정은 1993년 복원한 것이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그로 설워하나이다’ 박인로의 ‘조홍시가’ 한 구절이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이 시조를 배울 때만 해도 부모님이 늘 내 곁을 지켜주실 줄만 알았다. 이 시의 지은이가 빨갛게 익은 감을 보며 얼마나 사무치게 어머니를 그리워했을지 그때는 몰랐다. 세월이 한참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야 작자의 마음을 알겠다. 나에게도 박인로의 감 같은 음식이 하나 있는데, 그건 두릅이다. 아빠가 산나물 종류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두릅을 좋아하셨다. 아빠 돌아가신 지 이제 7년이 지났다. 식성은 대개 가족끼리 닮는 법이어서 나도 아빠를 닮아 두릅 같은 쌉쌀한 나물을 좋아하지만, 두릅만 보면 아빠 생각이 나서 아직은 씹어 삼킬 자신이 없다. 비 오는 날이면 개굴개굴 울어대는 청개구리처럼, 부모님께 충분히 전하지 못한 마음만 생각나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비슷하다. 조선 시대 세종 때 한성부윤과 우의정까지 지낸 노한(1376~1443)이라는 문신이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벼슬도 마다하고 꼬박 3년을 시묘하였는데, 그러고도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삭일 수 없어 무덤 끝 북쪽 산꼭대기에 정자를 지어 그곳에 올라 어머니를 추모했다고 한다. 그 정자가 바로 효사정(孝思亭)이다. 효사정이라 이름 붙여준 이는 강석덕이라는 인물인데, 조선 초기 이름난 문장가이자 화가였던 강희맹의 부친이다. 강희맹은 효사정의 건립 배경, 이름의 유래, 노한의 효심과 가족에 대한 기록을 글로 남겼는데, 그 글이 ‘효사정기’이다. 이 글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0권 금천현 누정로에 남아 지금도 전해진다. 이러한 배경으로 효사정은 효의 상징이 됐고 정인지, 신숙주, 서거정, 김수온 등 당시 문인들의 시문 속에 자주 인용됐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그로 설워하나이다’ 박인로의 ‘조홍시가’ 한 구절이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이 시조를 배울 때만 해도 부모님이 늘 내 곁을 지켜주실 줄만 알았다. 이 시의 지은이가 빨갛게 익은 감을 보며 얼마나 사무치게 어머니를 그리워했을지 그때는 몰랐다. 세월이 한참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야 작자의 마음을 알겠다. 나에게도 박인로의 감 같은 음식이 하나 있는데, 그건 두릅이다. 아빠가 산나물 종류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두릅을 좋아하셨다. 아빠 돌아가신 지 이제 7년이 지났다. 식성은 대개 가족끼리 닮는 법이어서 나도 아빠를 닮아 두릅 같은 쌉쌀한 나물을 좋아하지만, 두릅만 보면 아빠 생각이 나서 아직은 씹어 삼킬 자신이 없다. 비 오는 날이면 개굴개굴 울어대는 청개구리처럼, 부모님께 충분히 전하지 못한 마음만 생각나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비슷하다. 조선 시대 세종 때 한성부윤과 우의정까지 지낸 노한(1376~1443)이라는 문신이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벼슬도 마다하고 꼬박 3년을 시묘하였는데, 그러고도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삭일 수 없어 무덤 끝 북쪽 산꼭대기에 정자를 지어 그곳에 올라 어머니를 추모했다고 한다. 그 정자가 바로 효사정(孝思亭)이다. 효사정이라 이름 붙여준 이는 강석덕이라는 인물인데, 조선 초기 이름난 문장가이자 화가였던 강희맹의 부친이다. 강희맹은 효사정의 건립 배경, 이름의 유래, 노한의 효심과 가족에 대한 기록을 글로 남겼는데, 그 글이 ‘효사정기’이다. 이 글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0권 금천현 누정로에 남아 지금도 전해진다. 이러한 배경으로 효사정은 효의 상징이 됐고 정인지, 신숙주, 서거정, 김수온 등 당시 문인들의 시문 속에 자주 인용됐다.
광복을 염원한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시비.
노한이 지은 효사정의 위치는 지금 효사정이 있는 자리와 완전히 일치하진 않는다. 현재 서울의 지리를 기준으로 한강대교와 동작대교 사이 한강 변 산꼭대기 어디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 후기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 한강에 정자가 80여 개나 되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왕실과 사대부들은 한강 변 지대가 높은 곳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는데, 압구정, 망원정, 효사정이 대표적인 곳들이며, 그중에서도 효사정은 맞은편으로 경복궁과 종묘, 북한산까지 바라볼 수 있어 단연 으뜸으로 쳤다고 한다. 1960년대 동작구에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릴 때 한강에서 수영을 했다거나 배를 타고 강북까지 다녀왔다고 하신다. 조선시대 이곳은 동재기 나루로 불렸던 곳으로, 동작구라는 이름도 여기서 연유했다. 그만큼 동작구를 말할 때 한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노한이 지은 효사정은 성종 때 허물어졌고, 지금 있는 효사정은 1993년 옛 문헌을 참고해 다시 복원한 것이다.
효사정 아래쪽에 심훈 선생 좌상을 설치하고 문학공원으로 조성했다.
일제강점기 동작구 명수대에는 부유한 일본인이 많이 살았다고 하는데, 명수대와 가까운 지금의 효사정 자리에 일본인들이 신사를 지었다고 한다. 강 건너에 조선 왕실이 보이고 서울과 한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 자리를 일본도 탐냈던 것이다. 지금 효사정 공원은 효사정 정자 말고도 소설가이자 독립운동가, 시인이자 언론인, 배우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심훈의 시비와 동상을 설치해 문학공원으로 조성했다. 현충로를 사이에 두고 효사정 길 건너편 흑석동성당이 있는 자리가 심훈의 생가였다고 하니, 역사 깊은 효사정에 신사가 세워진 모습을 보면서 망국의 설움에 얼마나 통탄했겠는가.
효사정 왼편으로는 한강대교와 여의도가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반포가 보인다.
효사정은 올림픽대로에서도 보이고 흑석역과 버스정류장에서도 가까워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지만 규모가 크지 않아 의외로 덜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막힌 데 없이 시원하게 한강을 조망할 수 있어 가본 사람들은 누구나 최고로 치는 한강 명소다. 최근에는 여의도 불꽃놀이 직관 명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탔고,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출사 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특히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효사정 정면에서 바라본 이촌동 모습.
살면서 문득 부모님의 부재가 사무칠 때면 나도 그 옛날 노한이 효사정을 찾았던 것처럼 이곳에 서서 그저 말없이 한강을 바라보며 위로를 건네받고 싶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