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
서울, 이곳 l 동작구 효사정
등록 : 2026-01-22 11:16
효사정은 세종 때 우의정까지 지낸 노한의 별서로, 지금 있는 효사정은 1993년 복원한 것이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그로 설워하나이다’ 박인로의 ‘조홍시가’ 한 구절이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이 시조를 배울 때만 해도 부모님이 늘 내 곁을 지켜주실 줄만 알았다. 이 시의 지은이가 빨갛게 익은 감을 보며 얼마나 사무치게 어머니를 그리워했을지 그때는 몰랐다. 세월이 한참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야 작자의 마음을 알겠다. 나에게도 박인로의 감 같은 음식이 하나 있는데, 그건 두릅이다. 아빠가 산나물 종류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두릅을 좋아하셨다. 아빠 돌아가신 지 이제 7년이 지났다. 식성은 대개 가족끼리 닮는 법이어서 나도 아빠를 닮아 두릅 같은 쌉쌀한 나물을 좋아하지만, 두릅만 보면 아빠 생각이 나서 아직은 씹어 삼킬 자신이 없다. 비 오는 날이면 개굴개굴 울어대는 청개구리처럼, 부모님께 충분히 전하지 못한 마음만 생각나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비슷하다. 조선 시대 세종 때 한성부윤과 우의정까지 지낸 노한(1376~1443)이라는 문신이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벼슬도 마다하고 꼬박 3년을 시묘하였는데, 그러고도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삭일 수 없어 무덤 끝 북쪽 산꼭대기에 정자를 지어 그곳에 올라 어머니를 추모했다고 한다. 그 정자가 바로 효사정(孝思亭)이다. 효사정이라 이름 붙여준 이는 강석덕이라는 인물인데, 조선 초기 이름난 문장가이자 화가였던 강희맹의 부친이다. 강희맹은 효사정의 건립 배경, 이름의 유래, 노한의 효심과 가족에 대한 기록을 글로 남겼는데, 그 글이 ‘효사정기’이다. 이 글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0권 금천현 누정로에 남아 지금도 전해진다. 이러한 배경으로 효사정은 효의 상징이 됐고 정인지, 신숙주, 서거정, 김수온 등 당시 문인들의 시문 속에 자주 인용됐다.
광복을 염원한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시비.
노한이 지은 효사정의 위치는 지금 효사정이 있는 자리와 완전히 일치하진 않는다. 현재 서울의 지리를 기준으로 한강대교와 동작대교 사이 한강 변 산꼭대기 어디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 후기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 한강에 정자가 80여 개나 되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왕실과 사대부들은 한강 변 지대가 높은 곳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는데, 압구정, 망원정, 효사정이 대표적인 곳들이며, 그중에서도 효사정은 맞은편으로 경복궁과 종묘, 북한산까지 바라볼 수 있어 단연 으뜸으로 쳤다고 한다. 1960년대 동작구에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릴 때 한강에서 수영을 했다거나 배를 타고 강북까지 다녀왔다고 하신다. 조선시대 이곳은 동재기 나루로 불렸던 곳으로, 동작구라는 이름도 여기서 연유했다. 그만큼 동작구를 말할 때 한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노한이 지은 효사정은 성종 때 허물어졌고, 지금 있는 효사정은 1993년 옛 문헌을 참고해 다시 복원한 것이다.
효사정 아래쪽에 심훈 선생 좌상을 설치하고 문학공원으로 조성했다.
효사정 왼편으로는 한강대교와 여의도가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반포가 보인다.
효사정 정면에서 바라본 이촌동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