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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아시안 아트 어워즈의 ‘최우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뒤 창작집단 싹 손진영 대표(오른쪽 둘째)가 팀원 박현선(가운데)씨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창작집단 싹
지난 8월19일 오후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한 파티장,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 주최 쪽 관계자가 수상작을 발표했다. 서울 강북구의 지역예술단체 ‘창작집단 싹’ 손진영 대표의 귀에 낯익은 단어가 스쳤다. 주변이 소란스러워 제대로 못 들었지만 손 대표는 출품 작품 ‘드림 스페이스’(Dream Space, 환상 공간)가 호명된 건가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함께 간 동료들이 자신을 향해 환호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출품된 작품이 아시안 아트 어워즈의 ‘최우수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로 확정된 순간이었다. ‘환상 공간’은 연이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시어터 어워즈’ 수상자로도 선정돼 한국 극단으로는 최초로 상을 두 개 받는 성과를 올렸다. 강북구 수유동의 낡은 주택 지하에 집주인의 배려로 저렴한 월세를 내며 어렵사리 활동 중인 지역예술인 단체가 처음으로 국외 페스티벌에 도전한 이러한 성과는 기적 같은 쾌거였다.
손진영 대표는 “한 달간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관객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 이외 욕심 없이 임했는데 상을 받게 돼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창작집단 싹 구성원들(왼쪽부터 박상범, 손진영, 오윤정, 김정국, 김정현, 박현선). 창작집단 싹
고래 들고 거리 홍보까지…‘K-열정’에 매진 행렬
손 대표가 참석한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올해 전세계 80여 개 국가에서 약 3800개 작품이 몰린 문화예술공연 분야의 세계적인 축제 중 하나다. 이 축제는 1947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별개로 변두리(프린지)에서 소규모 극단들이 자발적 공연을 펼치며 시작됐다.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서는 초청 형식으로 30편 전후가 상연되는 것에 비해 프린지 페스티벌은 약 100배에 달하는 3천 개 이상의 팀이 300여 개 공연장은 물론 거리에서도 공연을 펼치는 개방형 축제다. 연극, 무용, 코미디,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등장하는데, 한국은 2015년부터 ‘코리안 시즌’이라는 별도 기획을 통해 사전 선정된 우수 작품에 대해 공연장 제공, 마케팅과 홍보 등 종합적 뒷받침을 지원하고 있다. 코리안 시즌을 운영하는 에이투비즈(AtoBiz) 앤젤라 권 대표는 ‘환상 공간’에 대해 “공연에 다녀간 관객의 온라인 평점과 언론 매체의 전문가 리뷰에서 별점 5점 만점에 4~5점으로 호평을 받았다”며 “74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23회 공연 중 10회가 전석 매진됐고 전체 좌석의 90%에 가까운 약 1500석을 채우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하며 2개의 어워즈를 거머쥔 것은 한국 최초”라고 말했다. 현지 리뷰 매체들의 찬사도 뒤따랐다. ‘페스트 매거진’(Fest Magazine)은 “마지막 장면의 고래 인형 연출은 이견의 여지 없이 잊히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고 평가했고, ‘프린지리뷰’(FringeReview)는 “움직임마다 미세한 감정을 전달하는 매우 정교하고 마법 같은 인형술”이라 언급했으며, ‘브로드웨이월드 스코틀랜드’(BroadwayWorld Scotland)는 “초현실적 연극으로 고래 인형은 평온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관심을 표시했다.
창작집단 싹 소속 6명에게 에든버러에서 보낸 지난 8월 한 달간은 ‘전쟁’과 같았다. 손진영 대표는 “팀원 다섯 명과 함께 6~7㎏에 달하는 인형극 소품인 고래 인형을 들고 매일 6시간씩 3만 보를 걸으며 홍보에 매진했다”며 “하루 종일 인형 손잡이를 쥐고 다닌 탓에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방아쇠 증후군'을 겪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한국에서 인쇄해 간 1만 장의 리플릿을 호텔, 고급 식당 등 다양한 장소에 직접 비치하는 등 ‘K-열정' 넘치는 홍보활동을 펼쳤다. 손 대표의 아내이기도 한 팀원 박현선씨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매일 공연 사진과 영상을 올리고 팀원들과 함께 500여 명의 현지 기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달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출품한 창작집단 싹의 인형극 ‘환상 공간’(Dream Space) 공연 모습. 창작집단 싹
강북의 이야기가 국외 관객의 감성 자극 ‘환상 공간’은 대사 없이 인형과 배우들의 움직임만으로 서사를 풀어가는 비언어극이다. 작품은 4년에 걸쳐 완성했다. 이 단체가 자리 잡은 수유동 지명 ‘수유'와 관련된 설화를 활용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 공연은 세 개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첫 번째 에피소드 ‘무너미 마을의 전설’은 수유동의 옛 이름인 ‘무너미 마을’(물이 넘치는 마을) 설화를 바탕으로 창작됐다. 이어 ‘무인도의 두 남자’는 인간의 욕심과 우정을 코믹하게 다루며 웃음을 선사하고, 마지막 ‘소녀와 고래’는 꿈을 이루지 못한 어린 영혼이 고래와 함께 나아가는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그렸다.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짜인 3단계 구성은 모든 연령대의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팀원 박현선씨는 “에든버러에서 공연이 끝난 뒤 코가 빨개진 할머니가 다가와 ‘인형극을 보며 운 건 평생 처음’이라며 극찬해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소녀와 고래’의 서사가 관객 개개인의 기억과 동심을 소환하며 나이와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적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배우들의 섬세한 인형 조종과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객석에서 고래가 등장하거나, 천을 활용한 환상적인 바다 연출 등)는 관객들을 공연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했다. 현지 언론은 ‘로컬적이면서도 전통적이며, 독특하고 영특한 인형극’이라는 평가를 하며 한국 창작 인형극의 가능성을 높이 샀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창작집단 싹 연습실에서 손진영 대표(오른쪽)가 아내이자 팀원인 박현선씨와 함께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인형극 ‘환상 공간’에 사용했던 소품을 선보이고 있다. 강북구 제공
반복되는 위기를 기회로 삼은 불굴의 도전
창작집단 싹은 지난 2014년 연기를 전공한 손진영 대표가 배우를 꿈꾸는 지인들과 시작했다. 싹은 연출상도 받고 지원 사업도 받으며 발돋움하던 초창기를 거쳤지만, 5년이 지나자 생계 수단이 되기에는 불투명한 상황 탓에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손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팀원을 재구성해 2019년 서커스와 연극을 결합한 새로운 공연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2020년 1월 코로나19 팬데믹 시작으로 집합금지 탓에 또다시 어려움이 닥쳤다. 그는 팬데믹 시대를 이겨내기 위해 대사가 없어 감염 우려가 없는 ‘인형극' 장르로 방향을 바꿨다.
손진영 대표는 “싹을 창단하던 해 세월호 참사 앞에서 문화예술인으로서 무기력감을 느꼈는데 세 번째 에피소드 ‘소녀와 고래'는 그래서 탄생한 것”이라며 “고래는 단원고 학생들을 등에 태우고 광화문 하늘을 날아오르는 형상으로 만든 일러스트에서 영감을 받아 창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역예술인들, 전국 공연 거쳐 국외 진출 모색
지역예술을 지향하던 싹은 초기부터 국외 진출을 모색한 것은 아니었다. 강북문화재단(대표 서강석)의 지원을 받아 ‘환상 공간’을 개발한 뒤 대학로 공연에서 가족극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2022년 서울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신나는 예술 여행' 사업에 선정돼 전국 학교 순회공연을 시작했고 2023년부터 2년간 전국 20여 개 시군 마을을 순회하며 본격적인 전국 공연으로 확대됐다.
지난달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창작집단 싹의 손진영 대표(왼쪽 첫째)와 팀원들이 한국 팀의 출품 플랫폼인 ‘코리안 시즌’ 입간판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창작집단 싹 제공
출품작 중 어워즈 2개 수상은 한국 최초
현지 언론도 “이견 여지 없이 환상적” 평가
관람객·전문가 별점도 4~5점 호평 이어져 그러다 2024년 겨울이 되자 박현선씨가 지인 얘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따뜻한 오스트레일리아로 거리공연을 가자고 남편 손 대표를 설득했다. 박씨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시로부터 버스킹 라이선스를 받아내 올해 1월 한 달 동안 거리 공연에 도전했다. 우연히 이들의 감동적인 공연을 본 현지 연출가가 앤젤라 권 대표를 연결해준 덕분에 싹은 마침내 8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창작집단 싹은 ‘환상 공간’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고 새로운 지역 관련 공연을 연이어 구상 중이다. 3·1운동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우이동 봉황각,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를 소재로 하되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메시지를 배우들의 움직임이 중심이 되는 피지컬 시어터(Physical Theater) 형식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강북구와 강북문화재단 지원은 지역예술의 마중물 창작집단 싹은 강북문화재단이 제공한 창작·공연 예산 지원과 공연장 지원, 공연 홍보 등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얻고 작품 완성도를 높이며 국외무대에까지 도전할 기반을 마련했다. 손진영 대표는 “초창기부터 약 4년에 걸쳐 ‘환상 공간’의 작품완성도를 높이는 데 구와 문화재단이 지속적으로 마중물 역할을 했으며 다른 자치구와 전국 순회공연도 재단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현재 강북구와 강북문화재단은 지역예술 단체들의 성장을 위해 직접사업비 3억원을 편성해 다른 자치구 문화재단에 비해 높은 비중으로 지역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2023년 이순희 구청장 공약으로 신설된 ‘강북 페스타' 행사도 지역예술인들이 직접 수익을 창출하도록 지원 역할을 하고 있다. 구와 재단은 나아가 강북 페스타를 비롯한 지역예술 지원 사업에 대한 심사 평가는 외부 심사위원만으로 실시해 구와 재단의 입김을 차단하고 작품성 등 심사기준에 따른 평가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구와 재단은 대극장과 소극장을 운영 중인데 이 중 소극장은 이순희 구청장과 구의회의 지원 아래 오로지 공연만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된다. 이런 정책 덕분에 지역 예술인들의 지난해 소극장 활용률은 54%를 넘어섰다. 재단 서강석 대표는 “강북의 청년예술인들이 세계 최대 공연예술축제인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큰 상을 두 개나 수상한 것은 강북의 자랑이자 한국의 자랑”이라며 “이순희 구청장의 공약인 지역예술인 지원사업의 결실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며 “이런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강북문화재단은 지역예술인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관람객·전문가 별점도 4~5점 호평 이어져 그러다 2024년 겨울이 되자 박현선씨가 지인 얘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따뜻한 오스트레일리아로 거리공연을 가자고 남편 손 대표를 설득했다. 박씨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시로부터 버스킹 라이선스를 받아내 올해 1월 한 달 동안 거리 공연에 도전했다. 우연히 이들의 감동적인 공연을 본 현지 연출가가 앤젤라 권 대표를 연결해준 덕분에 싹은 마침내 8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창작집단 싹은 ‘환상 공간’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고 새로운 지역 관련 공연을 연이어 구상 중이다. 3·1운동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우이동 봉황각,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를 소재로 하되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메시지를 배우들의 움직임이 중심이 되는 피지컬 시어터(Physical Theater) 형식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강북구와 강북문화재단 지원은 지역예술의 마중물 창작집단 싹은 강북문화재단이 제공한 창작·공연 예산 지원과 공연장 지원, 공연 홍보 등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얻고 작품 완성도를 높이며 국외무대에까지 도전할 기반을 마련했다. 손진영 대표는 “초창기부터 약 4년에 걸쳐 ‘환상 공간’의 작품완성도를 높이는 데 구와 문화재단이 지속적으로 마중물 역할을 했으며 다른 자치구와 전국 순회공연도 재단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현재 강북구와 강북문화재단은 지역예술 단체들의 성장을 위해 직접사업비 3억원을 편성해 다른 자치구 문화재단에 비해 높은 비중으로 지역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2023년 이순희 구청장 공약으로 신설된 ‘강북 페스타' 행사도 지역예술인들이 직접 수익을 창출하도록 지원 역할을 하고 있다. 구와 재단은 나아가 강북 페스타를 비롯한 지역예술 지원 사업에 대한 심사 평가는 외부 심사위원만으로 실시해 구와 재단의 입김을 차단하고 작품성 등 심사기준에 따른 평가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구와 재단은 대극장과 소극장을 운영 중인데 이 중 소극장은 이순희 구청장과 구의회의 지원 아래 오로지 공연만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된다. 이런 정책 덕분에 지역 예술인들의 지난해 소극장 활용률은 54%를 넘어섰다. 재단 서강석 대표는 “강북의 청년예술인들이 세계 최대 공연예술축제인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큰 상을 두 개나 수상한 것은 강북의 자랑이자 한국의 자랑”이라며 “이순희 구청장의 공약인 지역예술인 지원사업의 결실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며 “이런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강북문화재단은 지역예술인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