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강북 지역예술 인형극, 영국 에든버러를 울렸다
창단 12년 만에 역경 딛고 전국 공연 거쳐 국외 진출
3800여 건 경쟁 뚫고 10여 개 어워즈 중 2개 수상
등록 : 2025-09-11 19:42 수정 : 2025-09-11 22:46
지난달 19일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아시안 아트 어워즈의 ‘최우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뒤 창작집단 싹 손진영 대표(오른쪽 둘째)가 팀원 박현선(가운데)씨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창작집단 싹
지난달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창작집단 싹 구성원들(왼쪽부터 박상범, 손진영, 오윤정, 김정국, 김정현, 박현선). 창작집단 싹
지난달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출품한 창작집단 싹의 인형극 ‘환상 공간’(Dream Space) 공연 모습. 창작집단 싹
강북의 이야기가 국외 관객의 감성 자극 ‘환상 공간’은 대사 없이 인형과 배우들의 움직임만으로 서사를 풀어가는 비언어극이다. 작품은 4년에 걸쳐 완성했다. 이 단체가 자리 잡은 수유동 지명 ‘수유'와 관련된 설화를 활용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 공연은 세 개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첫 번째 에피소드 ‘무너미 마을의 전설’은 수유동의 옛 이름인 ‘무너미 마을’(물이 넘치는 마을) 설화를 바탕으로 창작됐다. 이어 ‘무인도의 두 남자’는 인간의 욕심과 우정을 코믹하게 다루며 웃음을 선사하고, 마지막 ‘소녀와 고래’는 꿈을 이루지 못한 어린 영혼이 고래와 함께 나아가는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그렸다.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짜인 3단계 구성은 모든 연령대의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팀원 박현선씨는 “에든버러에서 공연이 끝난 뒤 코가 빨개진 할머니가 다가와 ‘인형극을 보며 운 건 평생 처음’이라며 극찬해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소녀와 고래’의 서사가 관객 개개인의 기억과 동심을 소환하며 나이와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적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배우들의 섬세한 인형 조종과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객석에서 고래가 등장하거나, 천을 활용한 환상적인 바다 연출 등)는 관객들을 공연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했다. 현지 언론은 ‘로컬적이면서도 전통적이며, 독특하고 영특한 인형극’이라는 평가를 하며 한국 창작 인형극의 가능성을 높이 샀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창작집단 싹 연습실에서 손진영 대표(오른쪽)가 아내이자 팀원인 박현선씨와 함께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인형극 ‘환상 공간’에 사용했던 소품을 선보이고 있다. 강북구 제공
지난달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창작집단 싹의 손진영 대표(왼쪽 첫째)와 팀원들이 한국 팀의 출품 플랫폼인 ‘코리안 시즌’ 입간판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창작집단 싹 제공
관람객·전문가 별점도 4~5점 호평 이어져 그러다 2024년 겨울이 되자 박현선씨가 지인 얘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따뜻한 오스트레일리아로 거리공연을 가자고 남편 손 대표를 설득했다. 박씨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시로부터 버스킹 라이선스를 받아내 올해 1월 한 달 동안 거리 공연에 도전했다. 우연히 이들의 감동적인 공연을 본 현지 연출가가 앤젤라 권 대표를 연결해준 덕분에 싹은 마침내 8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창작집단 싹은 ‘환상 공간’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고 새로운 지역 관련 공연을 연이어 구상 중이다. 3·1운동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우이동 봉황각,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를 소재로 하되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메시지를 배우들의 움직임이 중심이 되는 피지컬 시어터(Physical Theater) 형식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강북구와 강북문화재단 지원은 지역예술의 마중물 창작집단 싹은 강북문화재단이 제공한 창작·공연 예산 지원과 공연장 지원, 공연 홍보 등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얻고 작품 완성도를 높이며 국외무대에까지 도전할 기반을 마련했다. 손진영 대표는 “초창기부터 약 4년에 걸쳐 ‘환상 공간’의 작품완성도를 높이는 데 구와 문화재단이 지속적으로 마중물 역할을 했으며 다른 자치구와 전국 순회공연도 재단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현재 강북구와 강북문화재단은 지역예술 단체들의 성장을 위해 직접사업비 3억원을 편성해 다른 자치구 문화재단에 비해 높은 비중으로 지역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2023년 이순희 구청장 공약으로 신설된 ‘강북 페스타' 행사도 지역예술인들이 직접 수익을 창출하도록 지원 역할을 하고 있다. 구와 재단은 나아가 강북 페스타를 비롯한 지역예술 지원 사업에 대한 심사 평가는 외부 심사위원만으로 실시해 구와 재단의 입김을 차단하고 작품성 등 심사기준에 따른 평가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구와 재단은 대극장과 소극장을 운영 중인데 이 중 소극장은 이순희 구청장과 구의회의 지원 아래 오로지 공연만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된다. 이런 정책 덕분에 지역 예술인들의 지난해 소극장 활용률은 54%를 넘어섰다. 재단 서강석 대표는 “강북의 청년예술인들이 세계 최대 공연예술축제인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큰 상을 두 개나 수상한 것은 강북의 자랑이자 한국의 자랑”이라며 “이순희 구청장의 공약인 지역예술인 지원사업의 결실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며 “이런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강북문화재단은 지역예술인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