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정식 운영 앞두고 진통

2019년 ‘자원순환도시’ 표방 사업 추진, 구별 상황 달라 반쪽 운영 처지
위탁업체 직원 사망, 공사 업체 간 갈등, 독점 수의계약으로 논란 이어져

등록 : 2025-08-28 12:24

크게 작게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지하 4층 모습. 오른쪽 샌드위치박스는 작업자들이 수작업으로 분류하는 수선별시설이고 왼쪽은 센서를 이용해 자동분류하는 광학선별기다. 은평구 제공

은평구 진관동에 자리한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는 광역 폐기물 공동처리시설이다. 2019년 3월 ‘자원순환도시’를 표방하며 은평·서대문·마포구 등 서울 서북 3구가 함께 야심 차게 추진한 결과 지난 5월 준공돼 9월 정식 운영을 눈앞에 뒀다. 당시 3구의 구청장과 국회의원들은 서북 3구 자원순환센터를 은평구에 건립하고 폐기물을 공동 처리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은평구는 재활용품, 서대문구는 음식물, 마포구는 생활폐기물 소각을 각각 책임짐으로써 광역 협력체계를 갖춘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생활폐기물 소각 처리를 맡기로 한 마포구가 서울시와 새 소각장 건립 문제로 갈등을 겪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서북 3구 폐기물 처리 협력체계에 참여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또 음식폐기물 처리를 맡은 서대문구는 서울시가 추진 중인 음식폐기물 바이오가스화 처리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당장 마포구와 은평구의 음식물쓰레기를 받을 수 없다며 “은평자원순환센터 건립 비용을 분담한 만큼 서대문의 재활용품은 은평자원순환센터로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은평구는 “서북 3구는 협약 이후 현재까지 협의를 이어오고 있으며 서대문구 재활용품 처리는 원활하게 반입 처리하고 있다. 마포구도 협의를 통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에서 일하던 위탁업체 직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구청을 포함한 공사업체 간 분쟁에 더해 자원순환센터 홍보관 사업 특혜 의혹까지 불거졌다.

지난 8월5일 폐회로텔레비전(CCTV) 관제와 순찰 업무를 맡은 위탁업체 은평환경의 60대 직원이 컨베이어벨트를 통과해 압축기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재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사인과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고 해당 시설은 잠정 폐쇄됐다. 직원이 숨진 지하 4층에는 재활용품 선별실, 생활폐기물 압축 적환시설, 저장공간 등이 있다. 은평구 관계자는 “희생자 장례, 유족 보상 등에 최선을 다하고 정확한 사고 원인과 사인 규명을 위해 적극 협조하고 있다”며 “사고 당시 희생자와 함께 현장 근무한 직원에 대해서도 심리 지원을 하고 구청장 직속 안전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공사 현장과 시설물 전체를 점검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와중에 해당 자원순환센터 건축공사의 원도급사와 하도급 업체 간 분쟁이 불거졌다. 공사비 약 274억원 규모로 시앤디건설, 흥한건설이 원도급사로 시공을 맡았는데 이 중 시앤디건설과 실질적인 하도급 업체인 승우개발이 공사비와 인건비, 산업재해 처리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승우개발 관계자는 “시앤디건설은 승우에 공사비 일부만 지급했고 임금을 조작해 지급함은 물론 노동자들의 요구에도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았다”며 증거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2024년 4월 하도급 가계약을 맺기 3개월 전인 1월부터 이미 직원들을 공사에 투입했는데, 이후 승우가 부실시공 문제를 제기하고 (하도급이 아닌) 직영 체제로 참여하라는 시앤디의 요구를 거부하자 강제로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시앤디건설로부터 받지 못한 공사대금이 수십억원에 달해 회사는 파산 직전 상태여서 추가 소송을 포기하고 시의원, 언론 등에 호소 중”이라고도 밝혔다.


승우개발이 시앤디건설 관계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사기 및 업무방해 고소 사건을 맡았던 송효석 변호사(법무법인 커넥트)는 서울&에 “발주자인 은평구가 건설산업기본법상 (약자 위치에 있는) 하도급업체인 승우개발 보호를 위해 더 적극 나섰어야 한다”는 소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원도급사 시앤디건설은 “승우개발은 그동안 증거가 있다는 주장으로 민원을 제기하고 경찰 고발을 했으나 제출한 증거가 허위와 조작으로 판단돼 당사는 무혐의를 받았다”며 “오히려 승우개발이 현재 노임 허위 및 과다 청구 등 행위로 부당 이득을 취해 사기와 사기 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라고 말했다. 또 승우개발이 주장하는 산재 미처리 건에 대해서는 “산재는 피해자 본인이 신청하는 것이며 당사는 손실을 감수하고 (산재로 처리하지 말아달라는) 피해자의 요구를 수용했을 뿐 은폐한 사실이 없다”며 “산재 대상 당사자와 이런 내용을 협의한 자료도 있다”고 주장했다.

취재가 시작된 뒤 박일현 은평구 자원순환센터건립추진단장은 서울&에 “논란이 되는 내용에 대해 관계자 조사를 거쳐 산업안전보건법령에 따라 노동관서 신고 등 필요한 조치와 임금 조작 지급 건에 대한 재검토 등 후속조치에 철저를 기하겠다”고 약속했다.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의 건립 총 사업비는 약 1천억원으로 국비 9%, 시비 21%, 참여구비 70%로 분담해 추진했다. 이 중 서북 3구 분담금은 704억원으로 은평구 366억원, 서대문구 150억원, 마포구가 188억원을 분담했다.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지상 체육시설 전경. 지난 6월1일 시범운영을 거쳐 7월부터 정식 운영 중이며 이용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축구장 1면(3367㎡), 족구장 1면(298㎡), 관람석 100석, 부설주차장 지상 54면으로 구성돼 있다. 은평구 제공

“드러난 문제 다시 살피고 3구 협력체계 대안 마련해야”

은평구 “문제점 다시 검토해
후속조치 철저 기하겠다” 약속

자원순환센터는 하루 150t을 처리할 수 있는 재활용 선별시설과 생활폐기물(130t/일), 대형폐기물(25t/일)을 옮겨 싣거나 쌓는 적환시설을 갖추고 있다. 자원순환센터는 단순한 지하 폐기물처리시설이 아니라 축구장, 족구장, 생활체육시설, 문화센터를 갖춘 복합시설이라는 것이 구의 설명이다.

한편, 지난 6월25일 오마이뉴스와 은평시민신문은 신봉규 구의원의 말을 인용해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홍보관 사업이 특정업체에 특혜를 주는 독점 수의계약을 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BI) 디자인 용역 회사 대표가 자원순환 체험센터 자문위원이고, 또 다른 자문위원은 그의 대학교 스승이라며 인맥을 통한 사적 계약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은평구는 “그들은 자문위원이 아니고 사업 초기 콘텐츠 검토를 위해 일회성 간담회에 몇 차례 참여했을 뿐”이라며 “BI 계약은 간담회에서 전문성과 적정성이 확인돼 관련 규정에 맞게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노동 현장의 고질적인 하도급, 위탁업체 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 끝에는 생명을 담보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일터에서 위험이 발견돼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당장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서다.

지난 14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우리나라 20대 건설사 최고경영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삼성물산이 중대재해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애써온 내용을 소개했다. 삼성물산 건설현장에서는 하루 평균 270건, 5분마다 한 번씩 근로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한다. 작업 중지로 인해 발생하는 공기 지연과 인력 추가 투입 등 협력업체 비용 증가에 대한 보상도 삼성물산이 한다. 발주자, 도급사, 하도급사, 일용직 노동자까지 모두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반면 지난 22일 한겨레는 고용노동부의 ‘중처법 수사 착수 사업장 현황’ 자료를 인용해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 이후 3년 간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에서 최소 75명(5명 이상 사업장 기준)이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마땅히 앞서가야 할 공공부문이 민간기업보다 못한 상황을 보이는 것이다.

은평구 자원순환센터를 완공했지만 서북 3구 협력체계 정상 가동은 당분간 어려운데다 안전사고, 공사비 분쟁, 특혜 의혹까지 터지면서 정책 전반에 대해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 신아무개씨는 “좋은 뜻으로 시작한 큰 사업이 여러 논란에 휩싸인 것이 안타깝다”며 “이번에 드러난 문제들을 구가 제대로 살펴 해결하고 3구 협력체계를 어떻게 완성해나갈지 창의적인 대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