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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의 만취예방 실험, 서울 전체로 퍼진다

2021년부터 3년 걸친 가톨릭대와의 ‘NoMAD’ 프로젝트
복지부 우수사례 선정 이어 서울시 주관 ‘만취예방 거리’로 확대

등록 : 2025-08-14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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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가 중랑경찰서와 함께 구민들의 절주를 위해 음주운전 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중랑구 제공

중랑구(구청장 류경기) 중랑보건소에서 2021년부터 3년에 걸쳐 시행한 만취예방 프로젝트가 그 효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보건복지부 음주 폐해 예방사업 평가에서 우수사례 1위에 선정된 데 이어 올해부터 서울시 주관으로 전 자치구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프로젝트 명칭은 ‘NoMAD’(No More Alcohol till Drunk) 즉 ‘취하기 전 멈추자’는 취지다. 구청과 보건소에 그치지 않고 술을 파는 업소와 업주단체는 물론 경찰서, 교육지원청, 병원과 의사회 등 지역 내 절주 관련 모든 단체와 기관을 망라해 구성된 협의체를 통해 추진함으로써 음주와 관련된 ‘환경 변화’를 조성함으로써 의미 있는 성과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중랑구 면목역 광장은 취객들을 단속해달라는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었다. 2018년 즈음부터 구와 보건소가 순찰과 계도 활동을 벌였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020년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되면서야 지방자치단체가 금주구역을 지정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NoMAD 프로젝트의 하나로 중랑보건소가 고위험 음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셀프체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중랑구 제공

다른 지자체와 달리 중랑구는 발 빠르게 2022년 조례를 개정했고 2023년 7월 면목역 광장을 공식 ‘금주구역’으로 지정했다. 광장 주변은 지하철역과 전통시장이 위치하고 노인 인구가 밀집해 있어 유동 인구 특성을 반영한 조치였다. 그 결과 현재 이 광장은 문화 행사가 자주 열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으며 중랑구는 성동구와 함께 금주구역을 지정한 선도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런 변화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021년부터 3년에 걸친 중랑구보건소와 가톨릭대 산학협력단이 함께 진행한 NoMAD 프로젝트 덕분이다. 중랑보건소는 질병관리청의 정책연구용역사업을 따낸 뒤 이 학교와 협력해 예방의학교실 조선진 박사를 책임연구원으로, 중독 분야 권위자인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 등 11명으로 실무와 연구를 담당할 연구진을 구성했다.

중랑구 주관으로 열린 절주 프로그램 참여 단체들의 회의 모습. 중랑구 제공

연구진은 그해 3월부터 구민의 음주 관련 현황을 파악한 뒤 연구 배경과 목표를 세우고 해결 모델을 개발했다. 보건소와 연구진은 환경 변화 관점에서 해결 모델을 추진하려면 지역사회의 각종 기관과 단체가 주도하는 협의체 구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4월부터 의사회를 시작으로 경찰서, 교육지원청 등을 접촉하며 협의체 필요성을 설득했다. 이런 노력 결과 11월 마침내 14개 기관이 참여하는 ‘음주환경 문화개선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 프로젝트는 기초자치단체 최초의 ‘다부문 협업 절주 중재 모델’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SAFER’ 모델을 적용해 개인 변화가 아닌 환경 변화를 모색했다. 조선진 박사는 “과거에는 음주 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행동 변화에 초점을 뒀지만 2018년 WHO 권고 이후 각국은 본격적으로 환경 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중랑구와 추진한 NoMAD 프로젝트는 환경 변화 관점에서 지자체와 학계가 협력해 처음으로 현장 적용한 만큼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면목역 광장이 금주구역으로 지정되자 각종 행사가 열려 주민들이 모여드는 문화행사 공간으로 변모했다. 2024년 제1회 면목 어린이 행복축제 모습. 중랑구 제공

중랑구보건소 이명순 팀장은 “당시 우리 구의 연간 음주자의 고위험 음주율이 16.6%로 서울 자치구 중 상위권이었기에 이를 줄이고 음주 관련 사고를 예방하려는 절실한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는 종합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협의체에 들어온 다양한 기관과 단체의 협력을 기반으로 불법 주류 판매 모니터링 체계, 외식업소 만취예방 프로그램, 1차 의료기관 단기개입, 음주운전 단속 강화, 공공장소 음주환경 개선, 연령별 절주 프로그램과 캠페인 등을 진행했다. 외식업소에는 절주 포스터를 배포하고 종사자 교육을 했다. 경찰과 협력해 음주운전 단속 종료 시각을 새벽 2시에서 새벽 4시로 연장하고 취약지 이동식 단속도 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스크린, 무인민원발급기를 활용한 캠페인도 병행했다. 청소년 불법 주류 판매 모니터링, 초등생·부모 온라인 절주 교육도 운영됐다.

올해 만취예방 프로그램을 시작한 동대문구가 자체적으로 제작해 외식업소에 배포한 ‘반잔술잔’. 동대문구 제공

그 결과 중랑구 고위험 음주율은 2020년 16.6%에서 2022년 14.8%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다른 자치구 평균 고위험 음주율은 4.0% 증가했다. 프로젝트 이전 상위권이던 고위험 음주율은 프로젝트 마지막해인 2023년 11위로 떨어지는 성과로 이어졌다. 음주운전 사고와 정신장애 사망률도 줄었다. 외식업소 만취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외식업소는 첫해 매출 감소 우려 탓에 8곳에 그쳤으나 2023년 327곳으로 크게 늘었다. 담당자들의 꾸준한 방문 관리와 설득 덕분에 업주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NoMAD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2023년 중랑구가 음주운전 단속 강화를 위해 중랑경찰서 등 관계자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중랑구 제공

흡연보다 높은 음주의 사회·경제적 비용 15조806억원에 달해

“절주 문화는 단기간 완성 안 돼”
“절주 노력 확대와 지속은 필수”

2024년 12월 보건복지부는 NoMAD 프로젝트를 음주 폐해 예방사업 우수사례 1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조선진 박사는 “만취예방 프로그램 참여 업주들이 ‘매출에 큰 영향이 없었다'는 반응은 물론 ‘건강한 음주 문화 조성으로 업소 이미지가 개선되고 지역 주민의 건강이 증진돼 보람 있었다'는 의견을 내놨다”고 밝혔다.

프로젝트의 성공적 전개를 지켜본 서울시와 산하 통합건강증진사업지원단은 프로그램 중 하나인 외식업소 만취예방 프로그램을 2024년 중랑구와 공동으로 진행한 뒤 2025년부터는 25개 전체 자치구가 참여하는 사업으로 확대했다. 김형수 단장은 “서울시민 전체의 건강한 음주 문화 조성을 위해 각 자치구 보건소가 형편에 맞춰 참여하도록 한 결과 올해 320개 이상의 업소가 추가로 만취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 자치구는 업소 입구에 캠페인 참여 업소임을 나타내는 스티커를 부착하고 시가 지원하는 홍보물품 배부와 참여 업소에 대한 만취예방 교육 영상 등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각 자치구는 외식업중앙회 지회, 상인회, 경찰서 등과 협의해 음주 폐해 예방 정책의 방향을 논의하고 외식업소의 자율적 참여와 시민 인식 개선을 위한 협의체도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동대문구는 동별 음주율이 가장 높은 장한평역 인근 업소 10곳이 참여하는 ‘만취예방 거리'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구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반잔술잔’을 참여 업소에 추가 배포하기도 했다.

조선진 박사는 “서울시 주관 사업 확대는 무척 고무적이지만 업소 관련 이외의 프로그램도 병행돼야 비로소 효과적인 환경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조사(2015~2019년)에 따르면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15조806억원, 흡연은 12조8677억원이었다. 전문가들은 “음주는 교통사고, 범죄, 생산성 저하 등으로 흡연보다 사회적 비용이 크지만, 예방 예산은 흡연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문화적 요인과 산업적 이해관계로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선진 박사는 “중랑구와 가톨릭대가 3년간 만든 사례는 지자체·학계·지역사회가 통합적 환경 변화를 통해 만든 모범 모델”이라며 “음주가 흡연보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 성과의 확대·지속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류경기 중랑구청장은 “절주 문화는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료·교육·외식업 등 생활 접점에서 환경 변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이런 작은 변화들이 모여 건강한 생활습관과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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