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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인이 달아준 여자 탁구의 금빛 날개

후원 통해 초·중·고 선수단 지원 선수들 위해 실업팀 창단 주도

등록 : 2017-03-02 14:10 수정 : 2017-03-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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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생활체육인의 후원으로 창단한 금천구청 소속 탁구부 선수들이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금천구청 여자탁구단은 금천 지역 탁구 꿈나무를 지원해온 금빛나래탁구후원회가 고교 졸업을 앞둔 선수들을 위해 창단을 건의해 이뤄졌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지난달 16일 금천구 독산동 문성중학교. 봄방학인데도 체육관은 스무 명 남짓한 커트 머리 탁구 소녀들이 내뿜는 열기로 춥지 않았다. 체육관 벽면에는 이들이 정상의 탁구팀임을 알리는 우승 현수막이 즐비하다.

‘신흥 탁구 명문’ 문성중이 자리 잡은 서울 금천구는 우리나라 여자 탁구계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 초·중·고교 탁구팀이 잇따라 창단된 데 이어 지난달에는 구청 소속 실업팀까지 새롭게 꾸려졌다.

금천구가 탁구계의 메카가 된 사연은 더욱 특별하다. 우선 금천구청 탁구팀은 여느 자치단체 소속 직장운동경기부와 태생부터 다르다. 소속 선수들의 육성부터 창단 지원까지 이 지역 풀뿌리 생활체육인들의 주도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금천구 임광수 생활체육팀장은 “금천구가 탁구 강자로 급부상한 데에는 2009년 지역 탁구동호회원들이 결성한 ‘금빛나래탁구후원회’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금빛나래탁구후원회는 금천구를 비롯해 서울시 서남권 탁구동호인들이 중심이 되어 꾸린 후원회다.

현재 정기후원 회원 수가 500여 명으로, 연간 후원금만 해도 1억원이 넘는다. “처음에는 함께 탁구를 하는 생활체육 모임이었지요. 운동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관악구에 있는 미성초 탁구부 시설을 이용했는데, 그때부터 어린 선수들을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금빛나래탁구후원회와 금천체육회의 류희복 회장은 금천구청 탁구단과의 깊은 인연을 더듬어갔다. “당시 미성초 선수단은 기대 이상으로 성적이 좋았어요. 그런데 막상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 갈 만한 중학교가 이 지역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후원만 할 것이 아니라 선수들을 지속해서 키워보자는 뜻에서 2011년 문성중학교에 탁구부를 창단했지요.”

문성중은 후원회의 기대에 부응해 나가는 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16년 문화체육부장관기 전국남녀 종별탁구대회 여자중등부 단체전·단식·복식 1위, 여고부 단식·복식 1위, 2016년 대통령기 전국 시도 탁구대회 여자중등부 단체전 1위 등 마침내 정상에도 우뚝 섰다. 금천구와 탁구동호인들은 문성중 탁구팀이 자리 잡자 3년 뒤인 2014년 문성중 바로 옆 독산고등학교에 탁구부를 창단했다.

선수들의 진학 과정에 따라 탁구부를 창단시킨 후원회는 독산고 선수들의 졸업을 앞두고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저 아이들이 졸업하면 어디서 운동을 계속하지?’ 그래서 생각을 모아 내린 결론이 실업팀 창단이다.

“우리 지역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금천구청 마크를 달고 뛰면 우리 구를 널리 알릴 수 있고, 지역 생활체육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아 팀 창단을 구청장에게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후원회의 물심양면 지원에 감동한 금천구청도 실업팀 창단 준비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구가 서울시 보조금을 포함해 모두 7억8000여 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후원회가 차량구매비 5000만원을 마련하는 등, 민관 협력으로 1월23일 창단의 열매를 맺었다.

금천구청 여자 탁구단의 지휘봉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추교성(47) 감독이 잡았다.

소속 선수로 계약한 이은섭, 양현아, 박승희, 김유진, 최예린, 노소진 등 6명은 모두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갑내기로, 이들 중 4명이 독산고 출신이다.

추 감독은 “다른 실업팀 유명 선수를 스카우트하지 않고 지역에서 성장한 신인들로 구성한 이유는, 단기적 성과가 아닌 장기적 육성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유소년과 청소년을 거쳐 구청 소속 실업팀까지, 탁구 국가대표나 지도자를 꿈꾸는 선수들이 마음 편히 운동할 수 있는 연계 체계를 갖춘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금천구는 실업팀 창단에 이어 3월 영남초등학교 탁구부 창단, 9월 탁구 전용체육관 건립 등 올 한 해 선수 양성 체계를 더욱 단단히 할 계획이다.

금천 유소년·청소년 탁구부가 전국 단위 대회를 휩쓸기 시작하자 다른 지역의 우수 선수들이 몰리며, 두꺼운 선수층이 만들어졌다.

탁구를 위해 인천에서 전학 온 최해은(16·문성중) 선수는 “고등학교, 실업팀 언니들과 함께 연습할 수 있어서 좋아요. 보통 고등학교 졸업하면 뿔뿔이 흩어지는데, 구청 실업팀이 만들어져서 열심히 하면 나도 들어갈 수 있겠다는 꿈이 생겼어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정작 부러움의 대상인 신생 실업팀 선수들은 후배들이 보내주는 존경의 눈길을 즐길 여유가 없다. 한창 외모에 관심을 갖고 꾸미고 싶은 나이지만, 흐르는 땀을 수시로 닦아야 하는 탓에 화장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짧은 머리를 질끈 묶고 지름 40㎜의 작은 탁구공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

금천구청팀 주장을 맡은 이은섭(19) 선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창단을 네 번 겪었는데, 창단팀은 모든 것이 처음이라 부담이 많아요. 게다가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직업 선수로서 뛰는 것이라 책임감도 느낍니다. 운동하는 동안에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열심히 하고 싶어요”라며 각오를 다졌다.

이 선수와 초등학교부터 호흡을 맞춰온 박승희(19) 선수 역시 “처음이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3년 뒤에는 후배들 우승 현수막 옆에 우리 것도 붙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국내 여자 탁구 실업팀은 서울시청·금천구청을 비롯해 모두 12개 팀. 이들은 4월11일부터 열리는 실업연맹전에서 우승기를 놓고 치열한 승부를 펼칠 예정이다. 베테랑 언니들을 향해 강스매싱급 도전장을 내민 금천구청의 공격은 성공할 수 있을까. “고등부에서는 정상급이었지만 실업팀 경기는 처음이고, 아직 실력 차이가 있어서…” 말끝을 흐리던 추 감독은 “아이들한테는 성적에 얽매이지 말고 출전에 의의를 두자고 다독였지만, 사실은 4강까지도 살짝 기대하고 있다”며 웃음과 함께 솔직한 속내를 전했다.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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