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과제 점검

지방세 비중 늘려 지방정부 재정자립도 높여야

②자치 재정권

등록 : 2016-09-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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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방범 감시카메라를 달아 주세요.’ ‘과속방지턱 만들어 주세요.’ ‘구민 정보화 교육장 고쳐 주세요.’

서울의 구청 누리집에는 이런 주민제안들이 다달이 수십 건씩 올라온다. 대부분 생활에서 생기는 안전 문제와 불편함을 풀어 달라는 제안들이다. 주민들의 요구가 많아지면서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도 늘고 있다. 문제는 부족한 지방정부의 예산이다.

지방정부가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예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세금 가운데 80%는 중앙정부(국세)가, 20%는 지방정부(지방세)가 거두고 있다. 반면 세금을 쓰는 비율은 중앙정부가 40%, 지방정부가 60%다. 이런 구조다 보니 중앙정부가 걷은 국세를 지방정부에 교부금이나 보조금 형태로 원활하게 나눠 주지 않으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 세수 감면 정책에 이중고

현재 지방정부는 스스로 예산을 만들어 관리하고 쓰기가 어렵다. 세수(세금 수입)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법(35조)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세를 부과해 거둘 수 있도록 규정해, 법률 제정 권한이 없는 지방정부가 필요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세목(세금 항목)을 만들어 세금을 거둘 수 없게 되어 있다.

지방세에는 취득세, 양도소득세, 재산세 등 부동산과 관련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따라서 부동산 경기에 따라 세수가 들쭉날쭉하고 지역에 따라 편차도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앙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을 하느라 취득세 감면 정책까지 펼쳐 세수는 더 줄었다.

최근 지방정부의 재정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은 복지 수요와 관계가 있다. 서울시의 지난 4년간(2012~2015년) 전체 예산은 해마다 4~5%씩 느는데, 복지에 써야 하는 예산은 13% 이상씩 늘고 있다. 주민복리에 관한 사무는 지방정부가 주로 해야 할 일(헌법 제117조)이지만,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예산이 부족하니 한숨이 깊어진다.

더욱 심각한 일은 중앙정부가 해야 하는 복지 업무까지 지방정부로 떠넘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의 복지 공약으로 전국에 실시된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이 그 예이다. 새로운 복지사업이 생겼는데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에 필요한 돈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보육 대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서울&>과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공약을 실행하면서 정부가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아 지방정부들은 뒷감당을 하느라 매번 보릿고개를 넘기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지방정부의 세수입 부족은 재정자립도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지방자치가 시작되던 1995년 62.5%였던 지방정부 평균 재정자립도는 계속 떨어져 올해는 46.6%가 될 것이라 한다. 서울의 기초자치단체인 구청(자치구)의 재정 상황은 더 나쁘다. 지난해 25개 자치구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31.5%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강남구(60.0%)와 중구(58.6%), 서초구(57.4%) 등 몇몇 사정이 나은 자치구를 빼면 재정자립도가 30%를 밑도는 자치구가 전체의 3분의 2에 이를 정도로 재정 사정은 심각하다. 최하위인 노원구(15.9%), 강북구(18.6%), 도봉구(19.5%), 은평구(19.8%) 등 4개 구는 10%대를 기록했다.

국제적으로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는 국세 비중이 너무 높고 지방세 비중은 매우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의 지방세 비중은 대략 40~50% 수준(캐나다 51%, 독일 48%, 미국 47%, 일본 43%)으로 우리나라 20%대에 비해 두 배쯤 된다.

일본, 지방정부가 목적세 만들수도

일본이나 프랑스 등은 지방정부가 스스로 예산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제도도 만들어놓았다. 일본의 지방정부는 직접 조례로 세목을 자율적으로 만들 수 있고, 중앙정부와 협의해 목적세도 새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세율도 지방정부가 정할 수 있다. 지방마다 사정이 다 다른 데 따라 지방세제 특례 조치 등 지역의 자주성, 자율성을 높이는 제도도 마련해두었다. 특례 기간과 비율은 조례에 위임해 정한다.

프랑스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사무에 필요한 재원(돈이 나올 곳)을 적극 지원하도록 헌법에 명문화해두었다. 수정헌법에 따라 지방정부에는 ‘법률이 정하는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재원이 있다. 과세 기준과 세목, 세율도 법률이 정하는 범위에서 지방정부가 정하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배인명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세입과 세출의 괴리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어, 지방자치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지방세를 늘리고 교부금, 보조금 등 중앙정부 의존 예산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체 조세에서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율을 현재 20%에서 30%, 장기적으로는 40%까지 올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6 대 4로 하자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지방세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지역발전위원회가 도입한 지방소비세(국세인 부가세 일부를 지방세로 돌린 것)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조치는 취득세를 대폭 줄이는 것과 같이 이뤄져,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지방정부의 재정 부족 문제가 나올 때면 일부 지방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에 대한 지적이 늘 따라붙는다. 이런 지적에 대해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는 “중앙정부는 지역 살림살이를 지방정부에게 믿고 맡기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의존만 하지 말고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원칙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지방정부 재정자립도

지방정부의 전체 예산 규모 중 자체 수입(지방세 + 과징금을 비롯한 세외 수입)이 차지하는 정도. 지방정부의 자율적 재정 운영 여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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