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과제 점검

시급한 복지업무까지 발목 중앙정부의 권한을 나누자

③자치 사무권

등록 : 2016-09-29 16:34 수정 : 2016-09-2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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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살 돈이 없어요. 생리대 지원받는 법이 생기는 거 같던데, 어떻게 하면 지원받을 수 있을까요?”

지난 7월 한 인터넷 포털의 질문 코너에 여중생이 올린 글이다. 이 학생처럼 생리대를 사기 어려운 형편에 있는 청소년들은 지원제도 시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지난 6월 이후 서울시, 인천시, 부평구 등 10곳의 지방정부가 돌봄 사각지대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생리대를 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식으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중복지원 문제 등으로 승인 여부 결정을 미룬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에야 10월 중 시행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달 초 박원순 서울시장은 미국 최초로 ‘생리용품 무료’ 법안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뉴욕시를 방문하고 페이스북에 소회를 올렸다. “‘깔창 생리대 없게 하겠다’고 지난 6월에 했던 약속을 추석을 앞둔 시점에서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야 간 합의로 추경이 통과되어 기대했지만, 여전히 속도는 나지 않고 있습니다. 복지는 꼭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지방정부 복지사업 1496개에 정비 추진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 등 지방정부 복지사업을 중앙정부가 가로막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방정부들은 사회보장기본법의 ‘사회보장 신설·변경 협의제도’에 따라 새 복지사업을 할 때 보건복지부에 협의 요청을 한 뒤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지난해 법제처는 ‘협의’의 의미를 ‘합의 또는 동의’로 넓혀 봐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중앙정부가 제동을 거는 것은 지방정부의 신규 사업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사회보장위원회는 지방정부가 자체 시행하는 복지 사업 가운데 중앙정부 것과 비슷하거나 겹칠 수 있는 사회보장 사업 1496개에 대해 ‘정비’를 추진하기로 했다. 지방정부 자체 복지사업 예산의 15.4%에 해당하는 규모다. 교부세 감액이라는 강한 제재 방안도 내놓았다.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사회보장위원회의 조정 결과를 따르지 않을 경우 지출한 금액만큼의 지방교부세를 줄인다는 것이다. 지방교부세 의존도가 높은 지방정부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정책에 사실상 결정권을 틀어쥐고 있는 셈이다.

물론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사무에 관해 ‘조언 또는 권고하거나 지도’할 수 있다. ‘생리대’ 사례처럼 중앙행정기관인 보건복지부는 지방정부가 하는 사회보장 업무에 대해 지도와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쳐서 하는 사업까지 폐지 또는 변경하라는 것은 지방자치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헌법 117조는 지방정부의 기능을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것’이라며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방정부의 국가 사무 폐지


중앙정부의 지방정부 사무 관여에 대한 갈등 사례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관리, 감독이 중복적이고 포괄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갈등의 이면에는 지방정부를 중앙정부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 하부기관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고경훈 지방3.0지원센터소장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율권을 줄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국가 사무와 자치 사무 구분이 모호한 경우 갈등은 더 심해진다. 국가 사무는 애당초 국가의 일을 지방이 대신해 주는 것이니 중앙정부가 간섭하고 감독하는 건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지방정부의 고유한 일인 자치사무에 대해서는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우리나라는 행정자치부령, 행정규칙과 지침 등 일반 행정명령으로 지방정부의 자치사무를 제한하고 통제할 수 있다. 법률로 제한을 둔다 할지라도 중앙정부에서 정한 명령으로 지방정부를 통제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갈등을 예방하려 일본, 프랑스 등은 법 제도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지방정부의 국가 사무를 아예 없앴다. 자치 사무를 확대했으며, 꼭 필요한 경우 법정수탁 사무로 지정하도록 했다. 중앙정부의 자치사무 통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지방정부 사무에 대한 관여 범위를 법정화해 제한한다. 프랑스는 헌법에 지방정부 간 상호간섭주의 배제를 규정하고, 지방정부 간 사무에 대한 통제와 감독 행위를 못하게 한다. 지방정부 간 행정 업무의 중복이나 조율이 필요한 때에는 협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형용 동국대 교수는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 사회보험은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의료보건은 광역지자체가 맡고, 사회복지서비스 보장 등은 기초지자체인 코뮌이 담당하는 식으로 명확하게 나누고 있다”며 “우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광역, 기초)도 할 일을 명확히 정해야 할 시점이다”고 말했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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