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향 가득한 칼칼한 해장국, 유산에 등재되다

‘낭만 미식가’ 김작가의 서울시 미래유산 음식점·빵집 탐방기

등록 : 2017-02-02 16:05 수정 : 2017-02-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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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용문동 ‘창성옥‘의 해장국은 12시간 우린 사골 육수에 소 등뼈를 집어넣고 3~4시간 다시 우려낸 뒤, 밥상에 올린다.
서울시는 해장국집 창성옥, 독일빵집, 통술집, 쌍다리 돼지불백 등 개업한 지 40~70여 년 된 점포 4곳을 서울 미래유산에 새로 올렸다. 맛집에 해박한 ‘낭만 미식가’ 김작가가 4곳을 직접 방문해 미래유산 맛집을 검증한다.

70년 한결같은 용문동 해장국의 뿌리 ‘창성옥’

2차와 3차를 거쳐 4차와 5차에 이르면 새벽은 끝에 이르렀다. 중년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지만 스무 살인 양 놀고 마시는 친구들과 함께하노라면 이미 만취했음에도 딱 한 잔이 부족하곤 했다. 가난한 스무 살 때는 첫차를 타고 집에 가든가 자취하는 이의 집에 쓰러져 잤을 것이다. 그때만큼 가난하진 않으며 제집의 안락한 침대가 기다리고 있으니 해장이나 하고 헤어지면 그만이었다. 홍대에서 택시를 잡아타고는 효창공원앞역으로 가자고 했다. 서울 어디에나 술꾼들의 종착지이자, 전날 과음한 이들을 위한 낙원인 해장국집은 널려 있지만, 굳이 효창공원앞역으로 간 건 이 동네, 즉 용문동이 서울에서 제 나름의 색깔을 가진 해장국집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해장 음식은 크게 둘로 나뉜다. 담백하거나 얼큰하거나. 콩나물국과 북엇국이 전자요, ‘양평해장국’이나 짬뽕이 후자를 대표하는 메뉴다. 용문동 해장국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사골 육수에 된장으로 간을 맞춘다는 점에서는 대표적인 해장국집 ‘청진옥’과 같지만, 선지와 내포(내장), 콩나물이 주가 되는 청진옥과 달리 용문동 스타일은, 선지에 소뼈, 배추속대, 그리고 파를 절인 다진양념이 들어간다. 이런 방식의 해장국을, 쓰린 속을 달래려는 술꾼들은 용문동 스타일이라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용문동에 해장국집이 많은 것도 아니다. 딱 세 곳이 있다. ‘한성옥’과 ‘용문해장국’, 그리고 ‘창성옥’.

‘창성옥’은 용문동 해장국의 뿌리와 같은 곳이다. 약 70여 년 전 허허벌판에 들어서기 시작한 용문시장 한구석 노점에서 달걀프라이를 팔기 시작하다, 건물이 올라가면서 해장국집이 됐다. 그 후로 지금까지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간중간 ‘창성옥’에서 ‘부부해장국’, 그리고 ‘부부창성옥’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현재는 다시 ‘창성옥’으로 돌아와 예전과 똑같은 방식의 해장국을 끓인다.


‘창성옥’ 부엌에서 소 등뼈가 담긴 가마솥을 휘젓고 있는 사장 김행순(62)씨.
사골과 된장, 배추속대로 끓인 국물은 구수하다. 파의 향이 가득한 다진양념에서 우러나오는 칼칼함이 맛의 포인트다. 푹 삶아서 젓가락으로도 살이 발라지는 소뼈 한 대를 먹은 뒤 밥을 만다. 밥알에 국물이 배어드는 동안 최후의 한 병을 비틀어 따서 잔을 채운다. 술이 더 들어갈 것 같지 않았건만 해장국집에만 오면 술이 깨는 듯한 ‘플라세보’가 찾아온다. 밤을 꼴딱 새운 알코올 레이스의 막판 스퍼트가 시작되는 것이다.

조금은 쩝쩝거리며 그릇을 비워나가고, ‘크으’ 소리와 함께 술을 넘기다보면 그제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퍼마시고서야 온 이들은 우리밖에 없다. 하루를 시작하는 경건한 일상의 소유자들이 대부분이다. 누군가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누군가는 아침 운행을 시작하기 전에 속을 달래고 배를 채우러 온다. 시장에 물건을 대러 온 이들이 있고, 용산역 인근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의 존재가 식탁 너머의 대화로 전해진다. 하루의 끝과 시작이 만난다. 끝을 마치러 온 이는 시작을 채우러 온 이에게 미안해진다.

용문동의 다른 집들과 달리 ‘창성옥’은 24시간 운영한다. 저녁과 밤에 술이 고픈 이들을 위해서 해장국뿐 아니라 전골도 판다. 최근 달걀 파동으로 500에서 800원으로 오른 ‘후라이’는 이 가게의 뿌리를 알려주는 상징이다. 70년 세월 동안 가마솥은 끓었고 달걀은 구워졌다. 용문 시장 한구석의 ‘해장국 전문’ 간판의 불은 365일 꺼지지 않는다.

독일빵집
4대째 내려오는 64년 전통 맛, '독일빵집'

누구나 ‘빵집’이라고 하지만 정작 빵집은 없다. ‘베이커리’ 아니면 ‘제과점’들뿐이다. 과거 서울의 대표적 부촌이었던 연희동에도 전통의 제과점과 신흥 베이커리들의 경합이 치열하다. 그 틈에서 조용히 ‘빵집’ 간판을 걸고 오랜 세월 영업하는 곳이 있다. ‘독일빵집’.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센터 중 하나인 ‘사러가 쇼핑’에서 64년 전 장사를 시작해, 2009년 바로 옆 건물로 옮겼다. 4대째 내려오는 점포의 주방을 들여다보니 팔순이 넘어 보이는 사장님이 쉬고 있다. 계산대에서는 조카와 이웃 가게 주인이 납부일이 다가오는 부가가치세를 놓고 이야기를 한다. “이웃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에요. 택배도 맡기고 그래요.”

재개발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연희동답게 오랜 토박이 손님들은 많이 빠졌다. 노인들은 분당이나 성북동으로 많이 빠지고 그들의 빈자리를 젊은 층이 메운다. 진열되어 있는 빵도 신구의 조화가 눈에 띈다. 빵집이란 이름이 친숙한 오랜 단골들은 단팥빵을, 베이커리라는 이름이 익숙한 이들은 쇼콜라 클래식을 찾는다. 빵집을 빵집이라 하는, 몇 안 남은 가게인 ‘독일빵집’의 모습이다.

‘통술집’ 양념돼지갈비
수사반장이 어울리는 반세기 전통, ‘통술집’

<수사반장>부터 <베테랑>에 이르기까지, 형사들이 등장하는 작품에는 일종의 ‘클리셰’(판박이 장면)가 있다. 돼지고기를 지글지글 구워가며 소주를 마신다. 말단 형사가 윗선의 방해를 개탄하면 상사는 빈 잔을 채우며 혈기를 달랜다. 그 배경은 언제나 허름한 대폿집이다. 서대문경찰서옆 ‘통술집’은 이런 ‘클리셰’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전형적인 공간이다. 53년 전 좁은 가게에서 시작해, 야금야금 가게를 넓혀 지금은 1층을 통으로 쓰지만 그 넓이만큼 세월의 흔적도 고스란히 묻어 있다. 고기를 써는 공간과 요리를 하는 공간, 그리고 설거지를 하는 공간이 그 확장의 세월을 보여준다.

양념돼지갈비가 전문이지만 홀을 가득 메우는 연기의 근원지는 보통 삼겹살과 목살이다. 돼지갈비가 더 이상 특별한 메뉴가 아니게 되면서 신선하고 두툼한 고깃덩이를 통째로 구워 먹는 게 더 포만감을 느끼게 된 때문일까. 시간이 흐르면 주메뉴는 바뀌기 마련이지만 반세기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은 된장찌개다. 자극적이지 않은 투박한 찌개를 먹다보면 배가 불러도 밥 한 공기가 금세 사라진다. 형사들의 고된 하루들이 쌓여, 이 투박한 맛을 지켜왔다.

쌍다리 돼지불백
택시 요금이 아깝지 않은 맛집, ‘쌍다리 돼지불백’

차가 없으면 가기 힘든 곳, 성북동이다. 대대로 뼈대 있는 집안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덕에 이 동네는 버스보다는 기사를 두고 차를 굴리는 고위층이 많았고, 택시 요금을 아까워하지 않는 부유층도 상당했다. 연탄을 수레로 실어 날라 겨울을 나던 때부터 그런 기사들에게도 밥 한 끼는 소중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기에는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으니 즉석에서 구워 나오는 ‘돼지불백’은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고루 섭취할 수 있는 메뉴였다. 46년 전부터 성북동 한복판에서 기사들을 기다려온 ‘쌍다리 돼지불백’은 그래서 서울을 대표하는 기사식당이었다.

인터넷이 없었던 때에는 택시 기사에게 맛있는 집을 추천받기도 했으니 그들로부터 흘러나오는 입소문을 타고 일반 손님들도 야금야금 찾은 결과, ‘쌍다리 돼지불백’은 한때 인터넷에서 유명한 맛집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 결과, 이제 10개 가까운 체인점을 거느린 프랜차이즈가 됐다. 대형 건물에 들어선 ‘쌍다리 돼지불백’ 본점에 가면 세월의 흔적은 없다. 벽에 붙은 문구로 이 집의 역사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건물 앞 주차장에는 여전히 택시가 많다. 공간이 바뀌어도 맛에 대한 기억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리라.

글 김작가 음악평론가

사진 김작가, 장수선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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