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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제도, 아파트 선호, 높은 보증금…서울 주거 생활 놀랐어요”

등록 : 2021-07-0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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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하우징랩, 6개국 청년들 허심탄회 ‘집 수다’ 자리 마련

“서울의 첫 진입장벽은 집…운 좋게 신혼부부 대출 받기도”

지난 5월26일 오후 서울하우징랩에서 ‘헤이 타우너스!(Hey, Towners!) : 서울에서 살아가는 세계 청년들의 집 이야기’ 사전 녹화가 진행됐다. 이날의 ‘수다’는 이후 약 한 달 동안 편집과 추가 인터뷰를 거쳐 6월17일 유튜브 채널로 대중에 처음 공개됐다. 왼쪽부터 마사(35·일본), 김민섭(28·한국), 사회자 이한솔, 서울주택도시공사(SH) 김승주 연구원, 지피(26·나이지리아), 바트(28·네덜란드), 에이버리(30·미국).

싱가포르 ‘BTO’, 네덜란드 ‘사회주택’ 등 ‘내 고향 주거’ 자랑도

BTO, 집값 15% 낸 뒤 99년 걸쳐 분납

사회주택, ‘서로 집 초대’ 커뮤니티 형성

“한국 청년, 주거 ‘우선순위’ 공부 필요”



독립.

한국에서 ‘홀로 선다’는 건 ‘내가 살 집’ 한 채 마련하는 일과도 맞닿는 말이다. 하지만 피부에 닿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많은 청년이 뉴스를 보면 “나와 동떨어진” 다른 세계를 보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매번 새롭게 발표한 부동산 정책도 “나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낀다. 다른 나라 청년들도 마찬가지일까? 그 친구들은 수입에서 얼마나 떼어 집세를 낼까? 월세는 얼마나 낼까?

지난 5월26일 오후 영등포구 당산동 주거의제거점공간 ‘서울하우징랩’에 6개 나라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집’을 주제로 속내를 공유했다.

‘외국인 친구들의 시선으로 우리에겐 어느덧 익숙해진 서울 주거 문화를 되돌아보자’는 한 서울 청년의 재기발랄한 제안에서 시작한 이 시간은, 오늘날 서울 사는 외국 청년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반찬처럼 삼는 ‘주거 관련 서울살이 수다’를 '아카이브'로 쌓아보겠다는 의미도 지닌다.

김민섭(28·한국), 마사(35·일본), 에이버리(30·미국), 캘리(22·싱가포르), 바트(28·네덜란드), 지피(26·나이지리아)가 약 두 시간에 걸쳐 ‘서울살이’를 털어놓으며 서로의 의견도 경청했다. 이를 위해 만남 한 달 전 대면·비대면 미팅을 거치며 서울살이를 공유했다. 만남 이후엔 약 한 달 동안 영상 편집과 추가 인터뷰를 거치고, 지난 6월17일 유튜브 채널로 대중과 첫 만남을 가졌다.

짧게는 1년4개월, 길게는 9년까지. 학업과 취업, 결혼 등 다양한 연유로 홈그라운드를 떠나 서울에 정착한 이들은 서울의 첫 진입장벽이 ‘집’이었다고 회상했다.


“전세자금 못 돌려받으면 어떡하나” 불안

6개 나라 청년들이 한목소리로 꼽은 ‘서울 주거 생활’의 가장 낯선 부분은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다. “집주인이 전세자금으로 투자를 잘못하면 그 전세금을 못 돌려받을 수도 있지 않나요? 그 때문에 서울에서 첫 집을 구할 때 이 제도를 듣고 저는 못 믿을 것 같았어요.” 네덜란드에서 온 바트의 고백이다. 그런데 바트는 6개 나라 청년 중 유일하게 ‘신혼부부 대출’을 받는 ‘운’을 잡아, ‘전세’로 집을 구한 청년이다.

“나이지리아에선 땅부터 사고 집을 짓는다는 인식이 있거든요. 집을 임차하면 계속 내 집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요. 만약 집을 임차한다면 보증금은 집수리 비용 정도로 저렴하게 내지만, 임차료는 1년 치를 한 번에 내고 들어가는 구조예요. 1년에 한 번 내는 ‘연세’ 개념이죠.” 지피가 덧붙였다.

생소한 전세제도지만 이조차 진입이 어려웠다는 이들은 “감옥 같은 원룸에 살며 수입의 30~40%를 집세로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이 힘겹다고 했다.

한국 대표 김민섭씨는 취업으로 서울에 ‘진입’하던 1년4개월 전을 회고했다. 김씨는 당시 500만원에서 1천만원을 왔다 갔다 하는 보증금을 감당할 수 없어 셰어하우스를 먼저 찾았다.

“월세가 너무 비싸서 청년을 위한 전세대출을 알아봤는데, 막상 전세대출이 가능한 매물은 찾기도 쉽지 않았어요. 막상 찾으면, 안 하겠다고 하는 집주인이 많았거든요. 매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지금도 월세로 사는데, 항상 전세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죠.”

일본에서 온 마사, 미국에서 온 에이버리도 보증금에 놀랐다고 털어놨다. 에이버리는 “뉴욕의 보증금은 월세의 두 달 치 정도예요. 200만원 안팎이요. 한국은 보통 500만~1천만원이었어요. 그래서 한국의 보증금이 뉴욕에 비해 너무 비싸다고 여겼죠”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청년들 대화에 참여한 서울주택도시공사(SH) 김승주 연구원은 외국 청년들이 궁금해했던 ‘전세제도의 탄생 비화’를 한국 역사에서 실마리를 잡아 풀어내 설명했다. 논밭에 수수료를 매기던 고려시대 ‘전당제도’가 조선시대 주택으로 넘어가던 때를 하나의 가설로 제시한 그는 오늘날처럼 집값이 계속 상승하는 시기 주택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요자와 공급자의 요구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전세제도라고 풀어냈다. 각국의 주거살이엔 특유의 역사성이 배어난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은데 일본에서는 반대로 단독주택을 선호해요. 30년 전 일본 경제 시장이 붕괴했을 땐 집값이 크게 들썩였지만,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니에요.” 마사는 한국의 인기 주거형태가 아파트인 것이 생소했음을 꼽았다. “상대적으로 아파트는 단독주택보다 싼 경우가 많습니다.” 에이버리도 마찬가지다.

빌라, 원룸, 셰어하우스 등 다양한 주거살이 형태에서, 6개 나라 청년들은 고국에서 체험한 주거 정책의 장점을 나누기도 했다. 그 가운데 청년들에게 가장 공감을 산 것은 싱가포르에서 온 캘리가 소개한 ‘비티오’(BTO·빌드투오더) 분양제도, 네덜란드에서 온 바트가 소개한 ‘사회주택’, 또한 나이지리아에서 온 지피가 소개한 ‘공용공간이 있는 커뮤니티 주거 문화’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지피가 거주단지 안 ‘공용공간‘이 만드는 주민 커뮤니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싱가포르 BTO 분양제도는 싱가포르 청년이 독립 무렵 첫 집을 구할 때 활용하는 제도로 꼽힌다. 싱가포르에서 온 캘리는 “한국의 청약제와 비슷하지만, 경쟁률이 그렇게 높지 않다. 체감으로 볼 때 5번 시도하면 당첨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BTO 분양제도는 집값의 5~10%를 선지불하고, 당첨 뒤 집을 짓고 나서 입주하면 99년 동안 나머지 값을 할부금으로 내는 방식이 골자다. 캘리는 “신혼부부가 첫 집을 이 제도로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입주자들은 99년이 만료되기 전 수입에 맞춰 할부금을 내거나, 다시 집을 팔거나,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집을 나갈 때 정부에서 다른 집을 구할 수 있도록 다시 지원금을 주기도 한다. 집 소유자가 국가여서 가능한 일이다.

네덜란드의 사회주택 제도는 거주의 안정감을 바탕으로, 이웃과 친구들이 서로의 집에 초대해 커뮤니티를 만드는 문화가 생긴다는 것이 바트가 꼽은 ‘피부에 와닿는 주거정책’이다. 나이지리아 역시 ‘공동공간’이 만드는 커뮤니티 문화를 주거살이의 장점으로 꼽았고, 두 문화 모두 청년들의 부러움을 샀다.

“나이지리아는 빈부 차이가 크지만, 가난한 사람도 대부분 빌라 여러 채가 합쳐진 ㄷ자 건물에서 공용공간을 두고 함께 살아요. 그 공간이 큰 편이죠. 공간은 때론 놀이공원이 되고 주차 공간이 되는데, 건물을 셰어하우스처럼 만들어요. 이웃이 서로 친해서 1㎞ 내에 사는 친구들 이름 다 알고요.(웃음)”

“네덜란드에서는 사회주택 개념이 자리잡아 가난하다고 집이 초라하지 않아요. 그 덕에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문화가 발달한 것 같아요. 또 네덜란드는 다세대주택도 많이 있어요. 대부분 3층짜리 주택에 많이 사는 것 같습니다. 3층짜리 주택 앞과 뒤엔 정원도 많이 있는 편이에요.”

김승주 연구원은 “네덜란드와 나이지리아 주택 유형을 들어보면 우리가 노후 주거지를 설계할 때 ‘가로주택정비사업’ 등을 도입한 형태와 비슷하다”며 “정원을 공유하고 이웃과 함께 교류를 잘할 수 있는 주거살이를 꿈꾸면서 노후 주거지를 개선해가려고 검토를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꿈의 집? 생각할 겨를이 없어…”

한창 ‘미래에 꿈꾸는 집’을 공유하는 시간이 돌아오자 모두 고민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김민섭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꿈의 집? 그동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이어서 “하지만 미혼 시절에 다양한 주거환경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꿈은 있다. 집은 집 넘어 ‘주거환경’의 체험이니까 다양한 동네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라고 설명했다.

행사를 기획한 서울하우징랩 최윤영(25)매니저는 본인 역시 취업으로 고향 경남 김해를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 약 1년차에 접어든다며 “이들의 고충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현재 마포구 6평짜리 원룸에서 월세 40만원을 주고 산다. 최씨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는데 교환학생으로 유럽, 아시아를 돌아다니며 다른 나라 청년들 주거모습을 흥미롭게 봤다”며 “해외 청년들의 서울살이 소감과 본인들의 고향 얘기를 듣고 싶어서 행사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김승주 연구원은 한국 청년들의 주거 정보 취득 과정에서 벌어지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에스에이치에서도 ‘희망하우징’ ‘두레주택’ ‘도전숙’같이 청년 대상으로 지원하는 임대주택 유형이 세분화돼 있다. 오늘날 주거 정보는 유튜브, 서적 등 방대하게 널려 있지만, 정작 필요한 정보가 청년들 실생활에 가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책이 좋아도 청년들이 잘 모르는 상태라면 효용이 없다. 주거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를 위해 공공파트에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 말했다. 김 연구원은 청년들도 좀더 주거 정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청년에겐 ‘정원이 있는 집’이 중요하고, 나이지리아 청년에겐 ‘주민 커뮤니티가 있는 집’이 중요하듯, 청년들이 한정된 재화 안에서 ‘나의 권리’와 주거의 ‘우선순위’를 잘 알고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인 대표 김민섭씨가 말했듯 집은 그 지역까지 향유하는 체험이다. 우리에겐 집과 더불어 내가 살고 싶은 주거 공간을 깊이 사유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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