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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사회로 복귀 도와줘요”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의 새 실험

등록 : 2021-06-1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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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병원과 집의 중간집 ‘케어B&B’ 5월말 문 열어

LH 매입형 주택 빌려, 13호 개별 가구에 3호 공유공간 갖춰 ‘의료·돌봄’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 ‘케어비앤비(B&B)’는 의료와 일상훈련을 거쳐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올해 서울시 참여예산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10일 오후 은평구 갈현동 케어비앤비 1호 입주자인 박희찬 할아버지의 활동 모습. 건강모임방에서 작업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관절 가동운동을 한다.

“집에서 돌봄 받을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

올해는 시 참여예산 사업으로 추진

입주자 월 20만원 내고 독채에 살며

의료·생활·관계 등 안심 서비스 받아

“하루 세 끼 제대로 식사해 건강이 좋아진 것 같아요.”


지난 10일 오후 은평구 갈현동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료사협)의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 ‘케어비앤비(B&B)’ 2층 건강모임방. 박희찬(77) 할아버지가 2주 동안 이곳에서 지낸 소감을 말했다.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도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단다.

2년 전 박 할아버지는 뇌경색을 앓았다. 혼자 생활하며 치료를 받았으나 후유증이 천천히 나타났다. 집에만 머무르면서 무기력해지고, 신체기능도 점점 더 떨어졌다. 혼자서 더는 생활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 딸이 조합원인 살림의료사협의 케어비앤비 입주 신청을 했다. 심사선정위원회 심사를 거쳐 5월 말 입주해, 1호 입주민이 됐다.

케어비앤비 건물 입구에 붙어 있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원들의 ‘호혜적 돌봄’ 실천 활동 기록판인 ‘노동의 협동’을 보고 있다.

의료사협은 주민들이 출자(5만원 이상)해 만든 협동조합 의료기관이다. 예방에 중점을 두고 조합원의 건강 자치력을 높이며 지역에서 건강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을 지향한다. 은평 지역에서 2012년 설립된 살림의료사협은 조합원이 3500가구이다. 62%는 은평, 나머지는 인근 자치구나 다른 지역에 산다. 현재 살림의료사협은 의원, 치과, 재가복지센터,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 등을 운영하고 있다. 8월쯤 한의원, 데이케어센터를 열 계획이다.

살림의료사협 임직원들은 현장에서 지역 주민을 만나며 대다수가 시설보다는 집에서 돌봄을 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2018년부터 두 차례 일본 요양시설을 둘러봤다. 병원과 집의 ‘중간집’ 제도가 눈에 띄었다. 사업 자체가 수익성이 있지 않다 보니 의료협동조합, 민주적의료기관연합회 소속 의료·돌봄 기관들이 주로 운영하고 있었다.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의료와 일상훈련을 지원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살림의료사협은 서울시 참여예산사업으로 ‘중간집’인 단기 입주형 재활주택을 제안했다. 아이디어는 시민투표에서 뽑혀, 예산(4억4500만원)과 담당 부서(어르신복지과)가 정해졌다. 살림의료사협이 실행 기관이 됐다.

민관 협력도 이뤄졌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다리를 놓아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가 어렵게 신축 건물을 찾아 임대해줬다. 그 덕에 공간을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는 의료복지 통합모델의 전국 확산 가능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은평구청은 대상자 선정 등의 행정적인 지원 역할을 맡았다. 사업명은 숙박 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처럼 지역에서 돌봄을 공유한다는 의미로 ‘케어비앤비’로 정했다.

올해 케어비앤비 입주 대상자는 중위 소득 150% 이하 만 60살 이상의 서울에 주소를 둔 시민이다. 자치구와 실행기관 그리고 재활의학과 전문의로 구성된 심사선정위원회에서는 신청자의 병력과 현재 독립생활 수준을 확인한다. 의료 조건과 재활 필요성도 살핀다.

특히 재활 의지와 어느 정도의 독립생활을 할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둔다. 각자 독채에서 개별 가구로 생활하기에 입주자는 일정 수준의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한다. 밤에는 상주인력이 없지만 가구마다 안심벨이 있어 응급 상황일 때는 모바일폰 앱으로 간호사와 담당자에게 바로 연락이된다. 추혜인 원장은 “단순 돌봄이 아니라 집으로 다시 돌아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이기에 본인의 재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5층 다가구 주택 건물인 케어비앤비에는 16호가 있다. 이 가운데 13호는 개별 가구 공간이다. 약 35㎡ 규모로 방 2개에 화장실, 거실 겸 주방, 베란다를 갖췄다. 나머지 3호는 건강모임, 공동주방 등 공용공간으로 쓴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마련돼 있다.

입주자는 주거비로 월 20만원을 내고, 의료·생활·관계 안심서비스를 받는다. 기존 이용하던 장기요양서비스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이곳에 와서도 이어진다. 거주기간은 최대 6개월이고, 2개월 연장할 수 있다. 개별 가구 공간은 자율적으로 꾸밀 수 있고, 온돌이나 침대도 선택할 수 있다. 집에서 쓰던 가구를 갖고 와도 괜찮다. 민혜란 살림의료사협 통합돌봄팀장은 “최대한 집처럼 지낼 수 있게 해, 나중에 집에 돌아가 생활을 잘할 수 있게 도우려 한다”고 했다.

재활실에서 혼자 누웠다 일어나는 연습에 앞서 치료사가 굳었던 팔을 펴준다.

박 할아버지는 이날 점심 뒤에 건강모임방에 내려와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벼운 관절가동운동을 하고 있었다. 고관절이 밖으로 빠지지 않게 노란 밴드를 허벅지에 끼고, 앉은키 높이의 대에 꽂힌 빨간 풍선을 손으로 쳤다. 중간중간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박수도 쳐본다.

잠시 뒤 재활실로 옮겨 치료사 도움을 받아 누워 나무 봉을 들고 팔을 펴 위로 올리기를 한다. 케어비앤비 직원들이 옆에서 “어머머, 팔이 펴졌어요. 어르신 이제 충분히 혼자 생활할 수 있겠어요”라며 연신 응원과 격려의 말을 건넸다. 박 할아버지는 이들의 응원 덕분인지 이날 누운 자리에서 도움 없이 일어나기를 처음으로 해냈다. 운동을 마친 박 할아버지는 “다들 친절하게 잘해줘 불편한 게 하나도 없다”며 “6개월만 있어야 해 아쉽다”고 했다.

전날 입주한 김아무개 할아버지에게도 하루 새 작은 변화가 나타났다. 휠체어에 20분도 채 앉아 있지 못하던 그가 이날 40분도 거뜬하게 앉아 있어 팀원들이 기뻐했다. 김할아버지는 4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그간 거의 집에서만 지냈다. 이층집이라 외출이 힘들어, 치과나 안과 등 치료를 받으려면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야 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가 된 딸의 권유로 재활 의지를 갖고 이곳에 입주했다.

케어비앤비는 새벽 6시30분에서 밤 9시30분까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입주자의 관절 운동 범위를 확인해 재활운동 계획을 세워 요양보호사, 작업치료사 등이 진행한다. 재활운동은 주중에 매일 한다. 방문간호는 입주자 건강 상태에 따라 주중 횟수(2~5회)가 정해진다. 코로나19로 식사는 개별적으로 한다. 사회적기업에서 완전식 또는 노인 맞춤식으로 만든 세 끼가 제공된다.

케어비앤비 직원과 함께 보행보조기를 짚고 걷기 연습에 나선다.

실행 기관 입장에서 애로점과 아쉬운 점도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모델이다 보니 설명하기가 어렵다. 추혜인 원장은 “요양시설이 아니면서 그냥 주택과는 달라 설명이 쉽지 않다”며 “내부적으로 각자 생각하는 모습도 조금씩 달라 맞춰가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참여예산 사업으로 대상이 60살 이상으로 정해진 점도 아쉽다. 애초 계획에서는 연령 제한 없이 공적 지원을 받기 전 어려움 겪는 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대상을 잡았다. 민 팀장은 “재활과 일상 복귀를 위한 지원 필요성은 젊은 연령층에도 있을 수 있는데 (연령이 제한돼) 안타깝다”고 했다.

살림의료사협의 목표는 집에서 돌봄을 받고 지낼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케어비앤비와 더불어 지난해부터 또 하나의 모델 ‘마을간호스테이션’을 실험하고 있다. 마을에 간호스테이션을 두는 콘셉트이다. 마을이 일종의 병동이 되는 셈이다. 간호사, 영양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의사(가정의학과 전문의)가 팀을 구성한다. 간호사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필요하면 주치의, 사회복지사 등에게 연락한다. 팀은 매주 1회 사례회의를 해서 담당 환자에게 필요한 자원을 연결하는 등의 지원을 한다.

마을간호스테이션은 지난해 9월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3월부터 은평 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회적 재난을 대비하는 복지사업 ‘사회백신 프로젝트’에 선정돼 4년 동안 진행할 예산을 확보했다. 현재 서비스 이용자는 80명 정도다. 30명가량이 주 1회 간호사의 정기적인 방문 서비스를 받고 나머지는 부정기적으로 이용한다. 주로 욕창 관리, 비위관 등 관 관리, 이동식 치과 장비를 활용한 와상 장애인들의 치과 치료 등이 이뤄진다.

추 원장은 “실제 해보니 지역에 간호가 필요한 주민이 많아 깜짝 놀랐다”며 “복지부 커뮤니티케어 사업이 제대로 되려면 마을을 순회하는 방문 간호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살림의료사협은 필요성을 발굴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 어느 정도 역량을 갖춰야 하는지 실험을 이어간다. 그는 “4년쯤 지나면 방문간호가 훨씬 폭넓게 제도화될 거라 기대한다”며 “우리의 실험이 도움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케어비앤비 개별가구 공간에서 김아무개 할아버지가 휠체어에 앉는 시간을 늘려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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