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첫 서양화가 고희동’ 삶 담은 예술 공간

종로구 ‘종로구립 고희동 미술관’

등록 : 2021-06-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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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화폭 속에서는 붓을 든 순간의 마음이 불멸하는 것 같다. 요즘 나는 영원히 붙잡아 두고 싶은 순간을 위해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어릴 때는 지금의 나이가 되면 무언가를 새롭게 익히는 경우가 더는 없을 줄 알았는데 긴 인생에 장담할 수 있는 일이란 없는 건가 보다. 기름통에 붓을 적시고 팔레트에 물감을 짜면 벅찬 감정이 올라왔다. 이런 시점에 ‘종로구립 고희동 미술관’을 찾은 건 내게 예정된 길인지 모른다.

창덕궁 옆 돌담길, 키 작은 한옥들이 정답게 모인 북촌 원서동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동양화까지 섭렵한 춘곡 고희동(1886~1965)이 41년간 거주한 집이 있다.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을 절충해 지은 근대 초기 한국 주택의 특징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소로 인정받았다. 2004년 ‘원서동 고희동 가옥’이란 이름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84호로 등재됐으며, 복원 공사를 거쳐 2012년 11월 개관했다. 2017년부터 구립 고희동 미술자료관으로 운영하다 2019년 구립미술관으로 등록해 운영하고 있다.

고희동 화백은 1918년 일본에서 미술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직접 설계해 집을 지었다. 이곳에서 오랜 세월 후진을 양성하고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수많은 제자와 당대의 예술가가 드나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춘곡의 집을 ‘한국 근대미술의 산실’이라 부른다 해도 지나친 찬사는 아닐 것이다.

화가로, 스승으로, 미술 행정가로 살아온 그의 인생 궤적을 따라가듯, 하늘색 대문을 열고 미술관 내부로 걸음을 옮긴다. 화백이 살아생전 40여 년을 머무른 곳인 까닭일까. 그림보다 앞서 이곳에 살았던 사람의 삶이 읽히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좁고 기다랗게 난 복도를 지나 얕은 계단을 오르면 ‘ㅁ’자 형태로 구성된 집 안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 전시실에선 ‘춘곡의 봄’이라는 재개관 기념 전시가 한창이다. 현존하는 화백의 서양화(영인본)는 물론이고 다양한 소장품과 표지화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조선 사대부로 자신을 표현한 작품을 비롯해 적삼을 풀어헤친 자유로운 차림새의 자화상이 인상적이다. 산수화에도 시선이 머문다. 고희동 화백은 어떤 마음으로 꽃과 새를 그리고, 당장에라도 물줄기가 쏟아질 것만 같은 금강산을 묘사했을까. ‘나’를 소재로 붓을 들던 젊은 청년 시절 작품부터 나이 들어 외손자를 위해 완성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이 화폭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윽고 마당으로 나와 화백의 흉상과 눈을 맞췄다. 내 마음을 하릴없이 일렁이게 하는 묘한 열정이 엄습한다. 사람은 가도 예술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는다고 했던가. 붉은 벽돌의 고택인 줄만 알았는데 여전히 이곳에선 평생을 그리고 가르치고 다시 그리길 반복했던 고희동 화백의 삶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글·사진 이혜민 종로구 홍보전산과 홍보팀 주무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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