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흘러간 가요 속에 새겨진 서울의 역사

서울, 이곳 l 마포구 마포새빛문화숲

등록 : 2026-03-12 10:39

크게 작게

마포새빛문화숲.

어렸을 때 텔레비전 앞에서 리모컨 쟁탈전의 승자는 대체로 아빠였다. 아빠가 즐겨보시던 프로그램은 ‘가요무대’였다. 아빠가 ‘가요무대’를 트셨다는 건 ‘이제 너희는 방송 시청을 중단하고 그만 방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때는 화면 앞을 떠나는 아쉬운 마음에 저 옛날 노래가 뭐가 그리 좋을까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내가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흘러간 노래를 들으며 아빠도 당신의 왕년을 떠올렸을 것임을. 단순히 ‘노래’가 아니라 그 시절의 당신을 추억했을 것임을 말이다.

흘러간 가요의 매력은 무엇보다 노랫말이라 할 수 있다. 그 시절 시대상과 우리 사회의 모습이 노랫말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은방울 자매가 부른 ‘마포종점’은 1968년 지구레코드가 발매한 편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다. 노래 속에는 마포종점, 영등포, 여의도비행장, 당인리발전소까지 이렇게 구체적인 네 곳의 지명이 등장한다. 노래를 듣노라면 내가 직접 보진 못했지만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그 시절 서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점 때문에 이 노래는 2017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장소 중 우선 마포종점은 지금으로 치면 마포대교 북단 불교방송 건물이 있는 자리에 있었다. 마포대교가 1970년에 개통했으니 ‘마포종점’ 노래가 발표된 1968년은 마포에서 여의도를 가려면 나룻배를 타야 했던 시절이다. 그 시절 마포종점은 서울 전차의 종착역이었다. 1899년 개통을 시작한 서울 전차가 1968년 11월30일까지 운행했으니 노래가 발표되었던 때만 해도 서울 시민들이 전차를 타고 다녔음을 알 수 있다.

다음 장소는 영등포. 1970년대 강남 개발을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로 ‘영동’ 개발이라 불렀던 것에서 알 수 있듯 당시 영등포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도심이었다. 노래에 등장하는 장소 중 제일 생소한 곳이 여의도비행장인데, 김포공항이 생기기 전 우리나라 최초의 공항이 여의도에 들어섰고, 김포공항이 생긴 뒤에도 1971년까지 이곳이 공군기지로 사용되었다는 건 이 노래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발전 시설은 지하에 매설하고 지상부엔 한국중부발전 서울발전본부의 홍보관이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소가 당인리발전소다. 강북강변도로 일산 방면으로 자동차를 운전해 가다 보면 서강대교와 양화대교 사이 커다란 굴뚝에서 하얀 수증기가 마치 연기처럼 하늘로 뿜어져 나오는 광경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곳이 당인리발전소다. 당인리발전소의 시작은 19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경성전기회사가 1호기를 건설해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이후 1970년 수명이 다한 1, 2호기를 대신해 4, 5호기를 건설해 서울시 필요 전력의 75%를 이곳 당인리발전소가 담당했다. 4호기와 5호기가 2015년과 2019년에 각각 폐쇄 결정되면서 당인리발전소는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신 발전 시설을 지하에 매설했고 지상부엔 한국중부발전 서울발전본부의 홍보관(코미포 에너지움)과 공원이 들어섰다. 그 공원이 바로 마포새빛문화숲이다.

복합문화시설로 탈바꿈하고 있는 4, 5호기 건물.

당인리발전소의 변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4호기와 5호기 자리에 복합문화공간을 짓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기존 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대 산업 유산으로서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고려해 원형을 살려두기로 했다. 4호기 자리엔 문화창작 공간을, 5호기 자리엔 교육시설과 전시시설을 만들고, 이 두 건물을 연결해 대형 복합문화공원으로 완공될 예정이다.

밤이 되면 서울 도심의 야경이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마포새빛문화숲’이라는 이름은 시민 공모로 탄생했는데, 이곳은 특히 야경 명소로 유명하다. 강 건너 여의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 어둠이 깔리면 여의도 전체가 커다란 보석처럼 빛나 야경 출사지로 인기가 많다. 실력은 없지만 나도 일몰 시각에 맞춰 어설프게 자리를 잡아봤다.

언제 해가 지려나 초조하게 기다리니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해가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일몰이 끝나버린다. 젊어서는 세월의 빠름을 느끼지 못하지만 40대의 속도와 50대의 속도, 60대의 속도가 갈수록 더욱 빨라지는 것처럼, 해도 그렇게 저물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의 시간도 그렇게 빠른 속도로 지나가겠지만, 시시각각 오묘하게 다른 빛을 뿜어내는 석양을 바라보며 나도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아름답게 물들이며 살리라 다짐해본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