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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동행숲길
긴 연휴가 지나갔다. 방학보다 방학식 전날 들뜨는 것처럼 연휴를 앞두고는 기대와 계획이 있었다. 하루쯤은 해가 중천에 뜨도록 누워 있을 작정이었고, 하루쯤은 산행도 하고, 가족들과 밤새워 술잔도 기울이고 싶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변변히 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잘 놀지도 잘 쉬지도 못한 채 연휴가 증발했다. 당분간은 이런 황금연휴가 또 없을 텐데 아쉽다. 그나마 아차산 산행을 다녀온 게 긴 연휴의 유일한 업적(?)이 되고 말았다.
아차산은 정상까지 높이가 300m도 안 되지만 서울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한강 조망 덕분에 산행코스로 인기가 많다. 한강이 내려다보인다는 점은 역사적 관점에서 아차산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나라는 한강을 손에 넣은 나라였고, 그런 점에서 아차산은 삼국시대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바질잎이 싱싱하게 자랐다.
맨 처음 아차산에 산성을 쌓은 것은 백제였다. 백제는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이곳에 아차산성을 쌓았지만, 북으로 남으로 영역을 넓히는 고구려 기세를 당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영광도 영원하진 않았다. 누군가의 승리는 누군가의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백제의 개로왕이 고구려군에 의해 죽음을 맞은 곳이 아차산이었고, 바보 온달로 유명한 고구려의 온달 장군도 신라군의 화살을 맞고 이곳에서 전사했다. 그렇게 한강의 패권은 백제에서 고구려로, 고구려에서 신라로 넘어갔다. 방어하겠다고 세운 성이 내 목을 겨눌 수 있음을, 전성기가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음을,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운다.
아차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한강의 모습
아차산은 삼국이 서로 뺏고 빼앗기며 치열하게 싸운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는 삼국의 군사시설과 생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아차산 일대 보루군이 더욱 주목받은 건 백제나 신라에 비해 남한 내 상대적으로 귀한 고구려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보루는 국경 지역을 지키기 위해 만든 군사시설을 말한다. 아차산, 망우산, 용마산 일대에서 발견된 보루에서는 온돌의 흔적과 저수시설, 당시 고구려군이 사용했던 무기 등이 대거 출토됐다.
고구려 유적지 발굴과 복원은 현재진행형이다. 실은 아차산에서 생생한 발굴 현장을 볼 수 있길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펜스로 가려져 발굴 과정을 사진 자료로만 볼 수 있었다. 복원이 완성되길 손꼽아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파면 무언가 계속 나온다는 사실이,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 옛사람의 흔적이 공존한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다. 아차산에서 고구려 유적이 발견됐다는 사실은 고구려가 우리 민족이었음을 밝히는 매우 중요한 증거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며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조작하려 하지만, 아차산에서 발견된 고구려 유적이 중국의 억지 주장을 물리칠 확실한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긴 만큼 아차산은 품고 있는 이야기도 많다. 아차산이라는 지명도 유래가 분분하지만 그중 조선 명종 때 홍계관이라는 점쟁이를 사형시키고 명종이 “아차” 했다는 이야기가 제일 유명하다. 명종은 홍계관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상자를 내밀며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물었고, 홍계관은 쥐가 들어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홍계관이 쥐 세 마리가 들어 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그는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암놈의 배 속에 새끼가 들어 있음을 확인한 명종이 뒤늦게 신하를 사형장으로 보냈지만 홍계관은 이미 죽은 뒤였다는 이야기다.
발굴 현장에 사진과 설명이 있다.
역사가 깊고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아차산은 우리가 이렇게 유구한 역사 위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고도가 높지 않고 무장애 길로 정상 근처까지 접근이 가능해 아이들과 함께 등반하기에도 적당하다.
긴 연휴의 뒤끝이 못내 씁쓸했던 건 가족에게 받은 해묵은 서운함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부모님 돌아가신 뒤 남매들 만나는 횟수가 자꾸 줄어드는 게 나는 좀 서운하다. 아차산 정상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꽁했던 마음을 풀어놓는다. 1500년 전에도 이곳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치열하게 싸웠고, 승리의 기쁨에도 취했으며, 망국의 설움도 느꼈을 것이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 앞에 지금 나의 근심은 한 점 티끌일 뿐이다. 산행하기에 그지없이 좋은 계절이다. 이번 주말 다시 한번 다녀가는 것도 좋겠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