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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동산. 꽃은 졌지만 초록이 무성하다.
내가 숲의 치유력에 관심을 가진 건 2007년 엄마가 췌장암 진단을 받았을 무렵이다.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손쓰기엔 너무 늦은 발견이었다. 몸도 마음도 벼랑 끝에 몰렸을 즈음 숲의 치유력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20세기 초 미국 뉴욕의 어느 한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폐결핵 환자가 너무 많아 병동이 모자라게 되자 뒤뜰 숲속에 텐트를 치고 숲속 병동을 운영하기로 했는데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숲속 병동 환자들의 회복이 일반 병동 환자들보다 더 빨랐다. 병원은 이러한 사실을 학계에 보고했고, 막연하게만 여겼던 숲의 치유력에 대해 과학계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내용이다.
가족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해를 넘기지 못하셨다. 숲의 치유력으로도 꺼져가는 촛불을 살려내진 못했지만, 대신 엄마와 함께 숲을 거닐던 추억이 남았다.
쌉싸름한 피톤치드 향,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 데크길, 숲속 공기를 모두 모아 엄마 숨에 불어넣어드리고 싶을 만큼 간절했던 내 마음, 숲에서 주고받은 이야기, 죽음이 당신 코앞에 내려앉았는데도 도리어 자식 건강을 챙기시던 엄마.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는 숲에 대한 기억이다.
불암산은 거대한 암벽만 보면 등산하기 힘든 산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능선이 완만해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특히 4월 철쭉이 만발한 철쭉 동산은 서울의 손꼽히는 명소 중 하나다. 혹시 남아 있는 철쭉이 있나 둘러봤지만 기간을 조금 놓쳤더니 지금은 다 지고 잎만 남았다.
하지만 전혀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초록이 무성해졌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흡사 보성 녹차 밭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 장관이다. 으레 꽃이 주인공이고 이파리는 조연쯤으로 여겼던 낡은 생각이 틀렸음을 이내 깨달았다. 초록의 싱그러움이 분홍의 화려함에 절대 눌리지 않는다는 것을. 분홍의 시대는 가고 초록의 시절이 오고 있음을. 영원한 주연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불암산 산림치유센터
불암산 산림치유센터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담하게 잘 가꾼 산책로와 평일부터 주말까지 알차게 구성된 힐링 프로그램이 있어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건강자세, 오감자극, 행복습관, 스트레스 관리, 활력증진 등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단련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주말에는 편백 휴식, 약초 족욕, 건강자세, 림프순환, 차 명상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집이 가까우면 이 보약 같은 숲을 매일 다닐 수 있으니 참 좋겠다.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힐링 산책로
내가 제일 좋았던 코스는 산림치유센터 건물 뒤로 난 산책로다.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꽃을 심어둔 코스인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향기를 내도록 식물을 심어두었나보다. 처음엔 부드럽고 달큰한 꽃향기가 나는가 싶더니, 조금 더 올라가면 맵싸한 나무 향기가 상쾌하게 몸을 휘감는다. 마치 향수를 뿌리면 첫인상과도 같은 톱 노트(top note)와 중간 향인 미들 노트(middle note), 마지막 잔향인 라스트 노트(last note)가 각기 향이 다른 것처럼, 이 숲속 산책로에서도 구간마다 서로 다른 향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향기는 단순히 기분만 좋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효과가 있다. 사람을 차분하게도 하고, 집중하게도 한다. 바람이 잘 통하는 편안한 옷을 입고 숲길을 걷노라면 살갗에 와닿는 바람이 상쾌하고, 초록 세상에 눈이 시원해지고, 숲의 향기를 맡으며 스트레스와 피로가 사라진다. 코스가 짧고 길이 험하지 않아 어린아이들도 충분히 걸으며 숲의 향기를 느끼기에 무리가 없다.
카페 포레스트 테라스 자리에서 바라본 불암산 전경
불암산에는 산림치유센터 외에도 ‘힐링 센터’를 조성해, 나비정원과 갤러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불암산의 오아시스 역할을 톡톡히 해줄 카페 ‘포레스트’는 아기자기한 정원에 유리 온실처럼 예쁘게 지어진 공간이다.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정하고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샌드위치를 테이블당 2개까지만 구매할 수 있다고 해서 처음엔 의아했다. 하지만 루콜라와 모차렐라치즈, 토마토가 기막히게 어울리는 맛을 보고나니 왜 2개 이상 못 사게 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만큼 찾는 이가 많다는 뜻이다.
숲도 좋고 커피도 좋은 불암산, 어쩐지 올여름 자주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