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학교 화장실 앞이 문화공간으로 변신”

서울시 ‘꾸미고 꿈꾸는 학교 화장실, ‘함께 꿈’ 사진전’ 학교에 미리 가보니

등록 : 2017-05-11 16:07 수정 : 2017-05-11 16:09

크게 작게

마포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화장실 앞에서 놀고 있다. 달라진 학교 화장실 모습이 오는 15~31일 서울시청 1층 로비에서 열리는 사진전에 전시된다. 김광천 더스타일I&P스튜디오 실장 제공
지난 4월25일 오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마포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은 화장실 앞으로 모여들었다. 두 개의 단으로 이뤄진 공간에 조명까지 설치돼 마치 무대처럼 느껴졌다. 화장실 앞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가인 김광천 더스타일I&P스튜디오 실장이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오는 15~31일 서울시청 1층 로비에서 열리는 <꾸미고 꿈꾸는 학교 화장실, ‘함께 꿈' 사진전>에 전시할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김수정 교감은 “아이들이 바닥에 넓게 펼쳐야 할 수 있는 보드게임 등 교실에서는 할 수 없었던 활동을 여기서 하기 시작했다. 교사들도 수업시간에 역할극을 할 때 이 공간을 활용한다. 화장실 앞이 문화공간 구실을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마포초는 지난해 초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16개 화장실 가운데 4개 화장실을 전면 보수했다.

“화장실이 어떻게 달라졌냐”고 묻자 4학년 이찬희군은 앞장서서 화장실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변기 뒤에 받침대가 생겨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지 않아서 좋다. 그런데 이걸 밟고 올라가서 옆 칸을 보는 애들도 있다”며 시범까지 보였다. 김 교감은 “예산 문제로 먼저 2, 3층만 공사를 했는데, 4층에 있는 6학년생들이 ‘자기들은 왜 안 바꿔주느냐'고 항의할 정도로 부러워한다. 나머지 12개는 연말에 고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마포초는 화장실을 개선하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 교사, 디자인 디렉터가 함께 모여 ‘화장실 디자인 태스크포스(전담)팀'을 구성했다. 변기와 세면대 등 시설 개선은 물론, 실제 사용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새 화장실의 디자인을 결정했다. 각 학년의 취향과 연령에 맞게 색깔과 세면대 높이까지 달리했다.

김 교감은 “요즘 아이들은 자기 의견이 분명해요. 어떤 아이는 자기 다리가 짧아 옛날식 화변기에서는 쭈그려 앉을 수가 없다고, 서서 ‘볼일’을 보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제출하기도 했어요. 사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는 아이들이 가장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데가 화장실입니다. 학교 화장실이 집만큼 좋지 않고 불편하면, 등교 자체를 꺼릴 수 있어요.” 했고, 김 실장도 “어릴 때 학교 화장실이 불편해 일주일씩 참다가 변비에 걸린 적이 있다”며 “지난해 첫번째 전시회 사진도 찍었는데, 학교마다 콘셉트가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사용한 자재는 엇비슷한데 공간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랐다”고 말했다.

서울여고 3학년 학생들이 화장실 문에 적힌 시를 읽고 있다.
마포구 서울여고의 콘셉트는 ‘시'였다. 층별로 색깔이 달랐고, 그 색깔에 맞는 분위기의 시가 문마다 적혀 있었다. 노란색을 주로 사용한 2층 화장실에는 낙엽과 함께 ‘숲 속의 나뭇가지 금빛에 타오르는/ 내 사랑스런 그이와/ 몇 번이나 거닐던 길을/ 이렇게 나 홀로 거닌다’로 시작하는 헤르만 헤세의 ‘가을날’이라는 시가 눈에 띄었다.

3학년 송민진양은 “화장실에서 기다릴 때 안에 있는 친구한테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는 대신, 문에 적혀 있는 시를 읽어준다. 그러면 그 친구도 웃기니까 빨리 나오려고 노력한다”며 웃었다. 김 실장은 “그림을 그려놓은 화장실은 많이 봤는데, 시를 콘셉트로 잡은 학교는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3학년 노정양은 “1학년 때는 화장실을 고치기 전이라, 화장실이 좁고 지저분하다며 집에 갈 때까지 용변을 참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화장실이 밝고 깨끗해지니까 그 친구들도 편하게 이용하는 것 같다. 지금은 화장실에서 수다를 떨 때도 있다”고 말했다.

화장실 밖 벽에는 학생들이 직접 고른 문구가 크게 인쇄돼 있었다.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열심히 살아라. 그리고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가져라.’ 학교 화장실이 ‘함께 꿈꾸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진전에는 서울시내 26개 초·중·고의 변화된 화장실 사진과 함께 화장실 개선 과정에서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현황 조사지와 작성 도면 등도 함께 전시된다. 김용복 서울시 평생교육정책관은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이 이용할 학교 화장실에 대한 개선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해 학교 화장실 때문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