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가장 불편한 공간이 꿈꾸는 장소로

기고 | 이경선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꾸미고 꿈꾸는 학교 화장실’ 디자인 디렉터

등록 : 2017-05-1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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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시설·환경을 마련하면서 ‘사용자 참여’를 유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사용자 참여형 학교 공간 설계’를 통해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고, 변화하는 교육체제에 맞춰 학교시설을 새롭게 짤 때도 사용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시가 최근 3년 동안 하고 있는 ‘꾸미고 꿈꾸는 학교 화장실 만들기’ 사업은 참여형 디자인을 적극 적용한 대표 사례다.

아직도 대부분의 학교 화장실은 다른 교육 공간과 견줘 매우 낡았고 감성은 모자란, 최소한의 기능만 하는 공간이다. 단순히 배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자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며,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인 것이 현실이다.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학교 시설 가운데 학생이 가장 불편하게 느끼는 곳은 화장실이다. 학생에게 학교 화장실은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어둡고, 획일화된, 밀폐되고, 부정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화장실은 동시에 누구나 가는 곳, 반드시 가는 곳, 가장 많이 가는 곳이다. 폐회로텔레비전(감시카메라) 사각지대인 학교 화장실은 불행하게도 학교 폭력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다. 아울러 거친 욕과 낙서가 있는, 언어적 폭력이 표출된 곳으로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공간에 감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뒤집어 생각해 학업에 지친 아이들이 화장실에 들르는 동안 치유와 쉼이 이루어진다면, 화장실은 잠시만이라도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또 대화와 소통이 이뤄지는 공용 공간 구실도 가능하다.

‘꾸미고 꿈꾸는 학교 화장실’ 사업은, 꼭 필요한 공간이지만 가장 불편하고 지저분한 학교 화장실 공간을 ‘아름다운 화장실’로 바꾸고, 아이들의 감성을 고려해 아름답고 편안한 화장실을 만들고 있다.

주 사용자인 학생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 교육청, 디자인 디렉터, 건축사가 함께 ‘화장실 디자인 태스크포스(전담)팀’을 꾸려 사용자 참여형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획 준비 단계에서 계획 설계를 거쳐 입찰 시공 단계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태스크포스팀이 직접 참여하고 결과에 대한 의견을 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용자인 학생들은 공간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갖고, 냄새나고 비좁던 학교 화장실을 쉼과 치유, 재미의 공간으로 새롭게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 환경은 몸과 마음의 행복을 결정짓는 데 큰 몫을 한다. 공간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공간이 바뀌면 우리를 둘러싼 외부 환경과 몸속, 감정과 기억 사이에는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오간다. 특히 정신적인 발달과 신체적인 성장이 한창 이뤄지는 유·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공간이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크다.

인성과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학교 공간이 바뀌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 미래 교육 공간의 혁신과 변화를 위해 학생들의 감성 발달을 지원하는 공간이자 또래 친구, 어른, 교사와 소통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바로 ‘꾸미고 꿈꾸는 화장실’ 사업과 같은 작은 시작이 교육 공간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낼 튼튼한 토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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