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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엄마’가 해주는 ‘책볶음밥’ 먹고 우리 아이 ‘생각 근육’ 쑥쑥

등록 : 2023-01-1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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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는 2021년 6월부터 구민들의 독서 활동을 돕기 위해 기반시설 확대와 다양한 독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18년 시작한 ‘엄마가 지어주는 책볶음밥’ 사업은 ‘책 읽어주는 엄마’(책엄마)를 양성해 엄마들의 역량 향상은 물론 아이들 독서 활동에도 큰 도움을 준다. 책엄마 손연옥씨가 13일 금천구 독산동 청개구리 작은도서관에 온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책읽는 도시’ 추진하는 금천구, 5년간 ‘책엄마’ 460명 양성

작지만 전문적인 11개 작은도서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바다는 푸른색이야, 나무는 초록색이야. 글씨 읽고 어떤 그림인지 알려주는 게 전부였죠.”

금천구 독산동 청개구리 작은도서관에서 만난 이미연(42)씨는 13일 ‘엄마가 지어주는 책볶음밥’(책볶음밥)에 참여하면서 아이와 책을 읽으며 전해주는 이야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이씨는 “책볶음밥을 통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질문을 유도한다든지 관련된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다른 책을 더 소개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많이 배우게 됐다”고 했다. “바다가 나오는 그림책을 보면서 아이에게 ‘저 바다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다 밖은 어떤 세상일까’ 하고 질문하죠. 그 뒤 공간까지 아이가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이씨는 이제 책을 보며 아이의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고 책 한 쪽을 펴놓고도 아이와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한다. “아이가 책을 읽는 시간은 상상하는 시간이라고 하더라고요. 엄마와 아이의 생각이 커 가는 것 같아 뿌듯하죠.”

2021년 6월 ‘책 읽는 도시 금천’을 선포한 금천구는 구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독서가 생활의 중심이 되며, 나아가 책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를 위해 금천의 대표 도서관 건립, 도서관 접근성 확대를 위한 스마트 기반 구축, 독서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문화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책엄마 이미연씨가 함께 도서관에 온 아들에게 책을 골라주고 있다.


책볶음밥 사업은 동 주민센터마다 있는 작은도서관에서 ‘책 읽어주는 엄마’(책엄마)를 양성해 마을, 학교, 도서관이 함께 지역의 독서문화를 활성화하는 정책이다. 학부모들은 1년 동안 그림책의 역사, 그림책을 읽어주는 이유, 그림책 선정 방법 등 책엄마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우리동네 도서관 활동가, 책마을 돌봄교사, 금천마을선생님 등으로 활동한다.

구는 2018년 시작한 책볶음밥으로 2022년까지 5년 동안 460명의 책엄마를 배출했다. 지난해에는 작은도서관 9곳에서 학부모 108명이 책엄마가 됐다. 김복숙 문화체육과 독서문화팀장은 “책볶음밥은 엄마들과 함께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고 마을의 독서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으로 엄마들도 많이 참여하고 반응도 좋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 청개구리 작은도서관(독산로 317)의 경우 문성초·영남초 학부모 16명이 책볶음밥에 참여해 이 중 12명이 책을 통해 질문하는 법 등을 가르치는 사고력논술지도사(2급) 자격을 취득했다. 이들은 올해 도서관 보조강사와 동네배움터 배움 플래너로 활동할 예정이다.

미래향기 작은도서관(독산로 179)은 신흥초 학부모 11명이 참여해 동화구연작가의 그림책 강연, 독서교육 특강, 그림책 작가와의 만남, 버려지는 그림책으로 팝업북 만들기, 그림책과 포슬린 페인팅(도자기에 그림 그리기) 등의 강의를 들었다. 결과물을 전시해 도서관 활성화와 이용률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책달샘 작은도서관(독산로54길 188)은 숲속에 있어 식물과 곤충 관련 서적을 구비한 환경특화도서관이다. 이곳에서는 금천초·문교초 학부모 11명이 생태환경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으로 책에 나온 숲속 식물과 곤충을 직접 살펴보고 아이들과 함께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책엄마 정미라씨가 직접 뜨게질해 만든 소품을 배경으로 아들과 함께 웃고 있다.

정미라(45)씨는 청개구리 작은도서관에서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면서 매월 북큐레이션을 한다. “우리 아이는 도서관과 거리가 멀었죠. 책을 펴보지도 않는 아이였습니다.” 정씨가 책볶음밥에 참여하면서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달라졌다. “하루는 ‘엄마, 청개구리에 가?’라고 묻고는, ‘나도 갈래’ 하며 따라가더라고요.” 정씨는 “굳이 아이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지 않더라도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책과 친해질 기회가 생긴 것 같다”며 “아이가 이제 도서관을 낯설어하지 않아 다행스럽다”고 했다. 뜨게질 동아리 ‘청개구리공방’도 운영하는 정씨는 다양한 모양의 열쇠고리, 장식품을 만들어 청개구리 작은도서관에서 행사할 때마다 참가자들에게 선물로 준다. 정씨는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이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하는 데 도움이 돼 기쁘다”며 웃었다.

“아이들은 책과 가까워지고 엄마는 사회 활동 역량 키우죠”

책엄마들은 아이들이 좀더 재밌고 익숙하게 책과 만나는 방법을 고민하다 지난해 12월 그림책 <김치가 최고야>를 인형극으로 만들어 공연했다. 왼쪽부터 책엄마 손연옥, 정미라, 이미연씨, 금천문화재단 기획팀에서 작은도서관 총괄지원을 맡고 있는 문세이씨.

‘책 읽기’ 배워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다양한 자격증 취득해 지역에서 활동

“문화도시 발돋움하기 위해 힘쓸 것”

손연옥(44)씨는 지난해 책볶음밥에 참여해 사고력논술지도사(2급) 자격증을 땄다. 아이를 키우느라 10년 전 직장을 그만둔 손씨는 하반기부터 초등돌봄 책마을 1호점인 청개구리 작은도서관에서 돌봄교사로 일하고 있다. “책볶음밥에 참여해 일자리까지 얻어 가장 큰 도움을 받았죠.”

손씨는 책을 읽을 때 책 속 글자만 읽는 게 아니라 책 표지나 주변 요소들을 살펴보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소리 내어 읽기가 의외로 책과 친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돌봄시간에 책 읽는 아이들을 방해하는 아이가 있었죠.” 손씨는 그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이 책 읽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게 소리 내어 책을 읽게 했다. “아이가 발음하기 힘들어하더라고요.” 손씨는 친구들과 책 읽기에 선뜻 참여하지 못한 이유를 직감하고 아이에게 계속 반복해서 소리 내 읽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아이가 ‘선생님 제가 한번 읽어볼게요’라고 하더라고요.” 손씨는 이런 아이의 변화를 경험하고 “무척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책엄마가 구 내 초등학교를 찾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게 목표였지만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여건이 좋지 않아 ‘책읽기 수업’을 하지 못했다. 대신 도서관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면서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이 원하면 책을 읽어줬다. 부모나 아이들이 책을 찾으면 읽을 만한 책을 추천도 한다. 또한 책엄마는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엄마들에게 도서관을 알리는 ‘도서관 알림이’ 역할도 톡톡히 한다.

금천문화재단 기획팀에서 작은도서관 총괄지원을 맡고 있는 문세이(50) 사서는 지난해 청개구리 작은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다. 문 사서는 책엄마들과 함께 아이들이 좀 더 재밌고 익숙하게 책과 만나는 방법을 고민하다 지난해 12월15일 그림책 <김치가 최고야>를 인형극으로 만들어 공연했다.

“마침 김장철이라 선택한 그림책이죠. 김장을 어떻게 하는지도 알려줬죠.” <김치가 최고야>에는 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 파김치, 동치미, 묵은지, 수육 등이 등장해 저마다 자기가 최고라며 자랑한다. 결국 아이들에게 김치마다 제각각 다양한 영양소가 들어 있으니 편식하지 말고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내용이다.

책엄마들은 그림책 내용을 바탕으로 대본과 인형을 만들어 역할극을 공연했다. “힘들었지만 아이들 호응이 좋아 뿌듯했고 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 사서는 “지난해 책볶음밥 활동 중에서 인형극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금천구는 문고 형태로 운영해 존재감이 미약했던 작은도서관을 마을 속에서 주민과 함께하는 작지만 전문성 있는 도서관으로 계속 활성화해갈 계획이다. 올해 책볶음밥 사업은 새로 책엄마 양성을 계속할지 기존 책엄마의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둘지 수요를 파악하고 있다. 김 독서문화팀장은 “올가을에는 책과 관련한 대규모 ‘책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며 “책읽는 금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문화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더욱 힘을 쏟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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