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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생활·놀이·배움’ 하나로…부모·교사가 함께 일군다

등록 : 2023-01-12 14:59 수정 : 2023-01-1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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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도토리마을방과후’는 전국 첫 공동육아 초등 방과후로 23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부모와 교사가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형이다. 아이들은 생활교육을 통해 일상에 기본이 되는 자립성을 기르고, 관계 맺기와 공동체 놀이 등으로 사회성을 키우고 있다. 지난 12월27일 도토리마을방과후 생활 공간 ‘터전’에서 아이들이 책장과 연필 등을 정리하며 청소하고 있다.

도토리마을방과후, 전국 첫 협동조합형 초등 돌봄으로 23년간 운영

초등 60명, 청소·설거지 등 일상 함께하며 관계 맺고 놀이·나눔 활동

교육부가 지난 9일 초등 전일제 ‘늘봄학교’를 올해 시범 운영한 뒤 2025년엔 모든 학교로 넓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상을 전 학년으로 확대하고 운영시간을 오후 8시까지 단계적으로 늘리며,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의견 수렴 과정에서 학교를 벗어나 더 다양한 형태의 방과후도 제공해야 한다는 교육 단체들의 지적도 있었다. 지역에는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학부모 등이 나서 운영하는 다양한 초등 돌봄기관들이 이미 있다. 부모와 교사가 마을방과후를 운영하는 협동조합형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이들은 정식 초등 돌봄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국 첫 공동육아 초등 방과후로 23년째 운영해온 마포구 ‘도토리마을방과후’를 찾아가봤다. 편집자 주

지난 12월27일 오전 성산동 ‘도토리마을방과후’(도마방)에는 초등생 30여 명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방학식 뒤라 절반 정도의 아이들만 나왔다. 아이들은 핸드폰을 집이나 사물함에 두고 그림 그리기, 십자수 놓기 등을 자유롭게 하고 있었다. 12시가 다가오자 도마방 교사 3명이 ‘얘들아, 점심 먹자’라고 하니 아이들은 놀잇감을 정리했다. 몇몇은 행주를 챙겨 밥상을 닦고, 각자 이름이 적힌 가림막을 찾아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점심 메뉴는 현미밥, 어묵버섯볶음, 멸치아몬드볶음, 동그랑땡이다. 밥은 교사가 퍼주고 반찬은 아이들이 직접 먹고 싶은 만큼 그릇에 담았다. 먼저 시(詩) ‘밥 먹는 자식에게’를 함께 암송한다. 천천히 꼭꼭 씹으며 농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자는 내용이다. 다 먹은 뒤에는 저학년, 고학년 없이 모두 자기 그릇과 수저를 씻어 건조대에 올려놓았다. 교사 박상민씨는 “생활교육의 공간으로 아이들은 쉬고, 먹고, 놀며 일상에 기본이 되는 자립성을 기른다”고 했다.


간식을 먹기 위해 밥상을 닦고 각자 이름이 적힌 가림막을 펼쳐놓았다.

도마방의 시작은 전국 첫 공동육아 어린이집(우리어린이집)의 방과후 방에서 비롯됐다. 뜻 맞는 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1999년 초등 저학년의 ‘도토리방과후’를 만들었다. 2017년에 고학년 방과후 ‘성미산 마을방과후’와 통합해 새롭게 출발했다. 지난해엔 사회적협동조합 인가도 받았다. 공간은 사회주택 소행주 1, 4호에 마련했다. 4호는 큰 터전, 1호는 작은 터전이다. 작은 터전에서는 두 학년이 돌아가며 직접 일과를 짜 한 달씩 지내는 실험을 해본다.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적, 자율적, 자연 친화적 인간으로 성장하는 공동육아 초등 방과후 정신은 도마방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아이들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처럼 교사를 별명으로 부르고, 교사에게 존대 대신 평어를 쓴다. 수평적인 문화로 교사는 아이들에게 친구처럼 다가간다.

아이들이 청소 구역을 정하기 위해 제비뽑기한 표를 서로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터전에 모이면 가방을 정리하고 손을 씻고 숙제 등 할 일을 스스로 한다. 먼저 마친 아이들은 좋아하는 책을 골라 보거나 바깥 놀이, 그림 그리기, 수다 떨기 등 편하게 지낸다. 요일 따라 공동체 놀이, 모둠, 나들이 등을 한다. 나들이는 계절별 산, 공원 가기나 지하철 타보기 등 미션 형태로 이뤄진다. 자연 흐름에 맞춰 세시 절기와 전래놀이도 한다. 외동아이인 준우(초5)는 “학교 끝난 뒤 여기 와서 친구, 동생들과 놀고 이것저것 경험할 수 있어 심심하지 않아 좋다”고 했다.

새 모이 만들기 동아리 활동을 하는 아이들이 모이 재료를 모으기 위해 교사와 함께 뒷산에 가고 있다.

도마방에서 아이들은 돌봄과 교육의 대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체가 된다. 주마다 자신들이 지내는 공간을 살리는 청소 ‘살림’을 하고, 모둠에서는 일주일의 계획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주제를 정해 토론도 한다. 외부 숙박활동 ‘들살이’는 아이들이 서로 더 가까워지는 활동이다. 여름·겨울방학 때 2~3일 정도 이뤄진다. 들살이 계획과 준비도 아이들이 한다. 6년째 방과후를 다니고 있는 지원·지인이는 “우리 스스로 계획을 세워 직접 해보면 뿌듯하고 자신감도 생긴다”고 했다.

아이들이 홀로 사는 동네 어르신 집을 찾아 간식 꾸러미를 전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날 오후 시간엔 모둠과 살림, 나눔 활동이 있었다. 모둠에서는 학년 구분 없이 다 같이 둥그렇게 앉았다. 다음주 방과후 방학 때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이어 각자 청소할 구역을 제비뽑기로 정했다. 터전의 각 공간은 아이들이 붙인 대륙 이름이 있다. 북아메리카 쪽에서는 준우와 이겸(초2)이가 문구 정리를 맡았다. 유럽·아시아 쪽은 이로(초1)와 현우(초5)가 책장을 정리했다. 신발장 청소를 맡은 아이들은 신발을 다 꺼내 칸마다 꼼꼼하게 닦고 걸레를 빨아 밖에 널어놓았다. 청소를 일찍 끝낸 아이들은 간식 선생님이 고구마 샌드위치를 만드는 근처에서 미끄럼틀을 타며 놀았다. 도마방 졸업생 엄마인 간식 선생님은 “아이들 소리 들으며 간식 만드는 게 즐겁다”고 했다.

“다양한 초등 돌봄기관, 법으로 인정하고 제도로 지원되길”

도토리마을방과후에서 1~2학년 아이들이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있다. 도토리마을방과후 제공

아이들, 돌봄·교육 대상 넘어 주체 돼

교사, 관찰하고 기다리며 이끄는 역할

비인가로 교사는 경력 인정 못 받고

학부모는 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 커

도마방 아이들은 간식을 마을의 혼자 사는 어르신들 댁에 가져다주는 나눔 활동도 한다. 마포희망나눔 사업 연계로 코로나19 이전엔 반찬 나눔으로 해왔던 활동이다. 이날 작은 터전에 있던 3, 4학년 아이들이 동네 홀몸 어르신 집 3곳에 간식을 가져다줬다. 로윤(초3)이와 가현(초4)이가 한은혜 선생님과 길을 나섰다. 꾸러미 안에는 사과 2개, 유과 한 봉지, 고구마 샌드위치 2개, 커피믹스 3개가 들었고, 손으로 쓴 편지가 함께 있었다. 꾸러미를 받은 어르신이 ‘고맙다’고 인사하자, 아이들은 “다음주 (도마방) 방학이어서 그 다음 주에 올게요”라고 약속했다.

도마방 교사 5명은 삼삼오오 모여 노는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적절하게 도움을 준다. 한은혜 선생님은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아이들 간 갈등을 관찰하고 풀어가는 데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날 신성지 선생님은 청소 시간에 오빠들이 밀쳐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1학년 아이의 손을 잡아주며 얘기를 들어줬다. 칼을 들고 연필을 깎는 아이들을 보고 한은혜 선생님은 곁에 가서 다치지 않는 방법을 얘기한다. 김익희 선생님은 책장 정리를 하는 아이들의 질문에 답해준다. 박상민 선생님은 새 모이 만들기 모임 회의에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활동하는 게 좋은지 의견을 물어봤다.

교사들은 아이들 특성과 발달 단계에 맞춰 눈높이 교육도 한다. 예를 들어 성교육은 해마다 일정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교사들이 직접 준비하며, 그해 아이들의 관심사나 궁금증을 고려해 더 깊이 다뤄야 할 것을 더한다. 박 선생님은 “생활하며 아이들을 만나기에 가능한 교육활동이다”라고 했다.

학부모 재능기부로 제작한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의 포스터는 아이들의 그림과 사진을 모아 만들었다. 도토리마을방과후 제공

학부모들은 도마방의 장점으로 아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며 성장하는 점과 안정적인 돌봄을 꼽는다. 학부모 남보라씨는 “관계가 이어지고 깊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며 “이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로 커간다”고 했다. 안정적인 돌봄도 학부모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도마방은 학기 중에는 저녁 7시, 방학 동안 전일 운영한다. 코로나19로 학교가 휴교나 원격수업을 하던 시기에 전일 운영했다.

고민도 있다. 특히 중학교 진학이 가까운 고학년 부모들은 불안감이 없지 않다. 성적이 잘 안 나올까 하는 걱정이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에 쫓기면서 불안해하는 마음을 걱정한다. 그래서 졸업생 아이들, 부모들과 고민과 경험을 나눈다. 학부모 신태중씨는 “중학교에 가서도 부모들과 아이들은 함께 고민을 공유하고 나누며 새로운 대안들을 찾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부담도 있다. 처음 들어갈 때 출자금 360만원, 가입비 41만원을 낸다. 출자금은 졸업 때 돌려받는다. 한 달 교육비는 41만원이다. 학부모 대부분은 부담을 느끼면서도, 사교육에 드는 비용에 견줘 크게 과하지 않다고 여긴다. 학부모 진수현씨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이 정부 지원을 받는 것처럼 협동조합 마을방과후도 돌봄기관으로 인정받아 부모는 교육비 부담을 덜고 교사들은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최근 도마방 아이들과 교사들,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와 책이 나왔다. 학부모 박홍열·황다은 감독이 재능기부로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를 공동연출했다. 영화는 11일부터 전국 개봉관 38곳에서 상영하고 있다. 책 <아이들 나라의 어른들 세계>(베르단디 펴냄)엔 전·현직 교사들이 도마방 일상의 기록을 담았다. 학부모 박홍열씨는 “아이들을 키우는 가치를 믿고 일하는 돌봄 선생님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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