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대방동 옛 공군본부 지하벙커, 청소년 ‘비밀 아지트’로 변신하다

1일 개관한 동작구 대방동 ‘대방청소년문화의집’

등록 : 2022-12-15 15:43 수정 : 2022-12-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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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초 어린이들이 8일 대방청소년문화의집 1층 플레이그라운드에서 증강현실(AR) 게임 디딤이를 하고 있다.

벙커에 정보통신기술 접목한 첫 사례

가상·증강현실 활용 스포츠·놀이 게임

영상 제작 가능한 메이커스 공간 갖춰

“청소년·주민 위한 거점 문화시설 활용”

한 무리의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대방청소년문화의집으로 들어왔다. 인근에 있는 신길초 5학년 어린이들이다.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에서 순번 용지를 뽑아 증강현실(AR) 게임을 할 수 있는 ‘플레이그라운드’ 앞에 있는 번호판에 차례대로 붙였다.

두 명이 먼저 플레이그라운드에 올라 경쾌한 음악에 맞춰 비트점프 게임을 시작했다. 위아래나 좌우로 움직이는 직선, 커지거나 작아지는 둥근 고리 모양의 레이저 불빛을 뜀뛰기로 피하는 게임이다. 8일 오후, 지하벙커를 개조해 만든 대방청소년문화의집에서 마음껏 게임을 하는 아이들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여기 있는 게임 다 해봤어요. 이게 제일 재밌어요.” 아이들은 이곳에서 1시간가량 신나게 놀다가 하나둘 시간에 맞춰 학원에 가거나 집에 간다. “거의 매일 와요.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놀았으니 이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이들은 대방청소년문화의집이 생기기 전에는 놀이터에서 술래잡기하며 놀았다고 했다. “밖에서 놀면 춥잖아요. 지하벙커에 놀 수 있는 곳이 생겨 너무 좋아요.”


혼자 온 곽유찬(신길초 4)군도 역시 대방청소년문화의집이 생기기 전에는 놀이터에서 놀았다. 곽군은 “대방청소년문화의집이 생긴 이후부터 매일 온다”며 “비트점프도 재밌지만, 3층에서 보드게임을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내년 1월께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동안 여기서 친구들 많이 만들 거예요.” 일본 홋카이도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양민서(12)군은 코로나19로 지난 11월 서울에 와서 지낸다. 양군은 할아버지와 함께 자주 대방청소년문화의집에 오는데, 할아버지가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간 사이 혼자 열심히 게임을 했다. 양군은 “친구가 없지만 이곳은 큰 게임도 있어 심심하지 않고 재밌다”고 했다.

대방청소년문화의집 입구 모습.

동작구 대방동에 청소년 ‘비밀 아지트’가 생겼다. 지난 1일 대방동 노량진근린공원 지하에 문을 연 대방청소년문화의집이다. 그동안 방치됐던 지하벙커를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청소년 공간으로 바꿨다. 동작청소년문화의집, 사당청소년문화의집에 이은 동작구에 만든 세 번째 청소년문화의집으로 2017년 12월 공사를 시작해 꼬박 5년이 걸렸다. 앞으로 대방동 일대 청소년과 주민을 위한 놀이·교육·체험·커뮤니티 거점 공간 역할을 맡는다.

원래 대방동 대림아파트와 노량진근린공원 일대는 공군본부가 있던 자리다. 대방동 지하벙커는 공군본부가 1956년 7월3일 준공해 1989년 충남 계룡대로 이전하기 전까지 33년 동안 청사의 일부로 사용했다. 한때 와인 저장고로 사용되다 2009년부터 공원의 자재 창고로 사용됐다. 지하벙커 주변에는 초·중·고 11개교가 밀집해 있지만 청소년을 위한 마땅한 공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서울시와 동작구가 지하벙커 활용 방안에 대해 수차례 논의한 결과,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숲속 비밀 기지’로 다시 태어났다.

1층 아이시티(ICT)스포츠실에서 증강현실을 접목한 농구를 하는 모습.

국내에는 벙커를 활용한 시설이 몇 있다. 제주도 빛의 벙커, 여의도 지하벙커 전시장이 대표적이다. 이들 공간이 모두 정적이고 일방향 소통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과 달리 대방동 지하벙커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공동체의 동적인 소통 공간으로 변신한 첫 사례가 됐다.

“벙커는 일상에서 쉽게 보기 힘든 공간이죠. 낡은 군사시설인 벙커가 청소년과 지역주민의 커뮤니티 거점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최정용 대방청소년문화의집 관장은 “벙커는 그 자체로 호기심이 왕성한 청소년들에게 안전하고 비밀스러운 자신들만의 공간이 될 수 있다”며 “벙커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공간을 만들어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방청소년문화의집은 면적 1491㎡, 가로 45m, 세로 12m, 높이 10m 규모다. 지하벙커 원형을 그대로 살려 다락 형태의 2층과 3층을 만들었다.

아이시티(ICT)스포츠실에서 한 청소년이 암벽 등반 게임을 하고 있다.
가상현실 체험을 하는 모습.

1층 아이시티 스포츠존에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 등을 활용한 스포츠와 놀이 시설을 만들었다. 메인홀은 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한 플레이그라운드를 설치해 각종 게임을 즐길 수 있고, 대형 전동스크린(250인치)으로 영화 관람도 할 수 있다. 문솔민 대방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사업팀장은 “가상현실 어트랙션은 한번 타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만큼 가장 인기 있다”고 했다. 또한 “플레이그라운드에서 하는 비트점프 게임은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놀이 프로그램인데 땀을 많이 흘릴 정도로 운동량도 많고 기록 달성 놀이라서 한번 시작하면 쉽게 그만두기 어렵다”고 소개했다.

바이크 레이싱은 실제 자전거를 타면 바로 앞에 다양한 도로와 풍경 화면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스마트 클라이밍은 암벽 등반장에 가상 화면이 겹쳐진다. 암벽을 타면서 레이저 빔을 피해 보석을 터치하거나 과일을 따는 등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구기 스포츠장에서는 축구, 농구, 핸드볼, 피구 등을 즐길 수 있다. 선택 종목에 따라 가상 골대와 경기장 라인 등이 바뀌고 공은 실제 축구공이나 농구공 등 종목에 맞는 공을 사용한다. 문 팀장은 “3 대 3 풋살이나 길거리 농구도 일반 경기장에서처럼 충분히 현실감 있게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들이 2층 네트워크 라운지에서 쉬고 있다.

2층은 청소년과 지역주민이 다양한 모임과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영상콘텐츠 기획과 편집을 할 수 있고, 코딩 활동이나 웹툰 제작 등을 할 수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가 있다. 동아리실, 세미나실, 북라운지, 농구 반코트도 있다. 3층은 청소년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아늑한 휴식 공간이다.

최 관장은 “대방청소년문화의집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개방해 지역 거점 문화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내년에는 대방청소년문화의집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내실을 다져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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