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맞는 사람들 모여 서로의 안전망이 되다

행복둥지 공모전 일반 공동체 부문 대상 후보 성북구 삼선동 ‘이웃집주거협동조합’

등록 : 2022-12-08 15:56 수정 : 2022-12-0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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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교회에서 청년부 활동을 함께 한 동료들이 오랜 꿈이었던 주거공동체의 꿈을 이뤘다. 이들은 부동산으로 대박이 날 일은 없지만,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일상이 훨씬 더 대박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음식을 만드는 모습.

대학 때부터 공동체 생활 꿈꾸던 이들

전셋값 치솟자 구옥 매입해 리모델링

동네에 활력 주고 사랑방 구실 톡톡히

‘독박 육아’에서 ‘커피 나누는 생활’ 변신


전월세 살던 가구 모여 2호 건립·입주

텃밭농사·육아·손님맞이 함께 해나가


이율 높아진 요즘, 이자 액수 늘었지만

‘부동산 대박’ 없어도 ‘일상 대박’ 이어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살면 재밌지 않을까?’

대학 시절부터 막연하게 품어오던 소망이었다. 친구나 선후배와 함께하는 순간이 더없이 좋을 때 그런 생각이 더 간절했다. 번거로운 약속이 필요 없는 사이, 슬리퍼에 추리닝 차림으로도 만날 수 있는 관계, 하루에도 여러 번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공동체가 인생에는 필요한 법이다.

마음이 가장 잘 맞는 이와 가정을 꾸리기도 했지만, 한 가족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같은 가치를 지향하고 서로가 그 가치대로 살도록 돕고 무엇보다 즐거운 일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했다. 결혼하고도 가까운 곳에 전세를 얻어 살며 삼삼오오 모였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한동안은 이렇게 전세나 월세로도 마을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3년 동안 세 번의 이사를 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집을 구하는 난이도는 높아졌지만 매번 운이 좋았다. 전셋값은 치솟았고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작아졌다. 적당히 살 만한 집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웠다.

언제까지 운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 계약이 다가오면 작은 집마저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집값 때문에 외곽으로 밀려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다른 곳으로 떠밀려가지 않고 공동체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자산, 부동산이 필요했다.

마을살이를 위해 집이 있어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비슷한 꿈을 가진 이들이 동네에 공동주택을 지었다. 오래된 구옥을 사 세 가구가 살 수 있도록 리모델링을 했다. 1층엔 싱글 세대, 2, 3층엔 아이를 키우는 두 가정이 들어갔다. 집의 번지수를 따 1717이라 부르는 ‘이웃집 1호’가 탄생한 것이다.

공동주택이 지닌 힘은 대단했다. 1717이 생기자 동네에 활력이 더해졌다. 주변 가정들이 모일 수 있도록 1717이 사랑방 구실을 한 셈이었다. 꼭대기 층에 마련한 공용공간에서 아이들이 함께 모였다. 여름이면 옥상 수영장이 열렸고 날씨가 좋은 날엔 바비큐 파티가 벌어졌다.

1717의 등장은 독박 육아에 한 줄기 빛이었다. 싱글 세대를 제외하곤 모두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고, 아이들을 핑계 삼아 우리는 더 자주 모였다. 아이 한 명을 어른 한 명이 돌보는 것보다 아이 다섯 명을 어른 다섯 명이 돌보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아이들은 함께 놀았고, 어른들은 돌아가며 아이를 돌보았다. 숨을 돌릴 여유도 없던 육아에서 함께 커피를 나누는 생활이 펼쳐졌다.

어울려 노는 아이들. 아이들은 더 많은 형제자매를 경험하고 부모들은 커피 한잔의 여유를 얻는다.

재작년 12월, 동네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어린이집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며칠 휴원을 한 일이 있었다. 맞벌이 가정부터 모두가 비상이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었고 어디를 갈 수도, 아무 데나 맡길 수도 없었다. 그때 함께 머리를 맞댔다.

1717의 공용공간이 작은 어린이집이 됐다. 함께 프로그램을 짜고 시간을 정해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보았다. 아이들은 함께 모여 체조도 하고 산책도 했다. 위기 상황에 서로서로 지켜준 셈이었다.

함께하는 육아의 유익을 알게 된 우리는 더 신나게 모였다. 서로의 생일에 모였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함께 보냈다. 동네 생활이 재미있어지니 이 동네를 떠나기가 더 싫었다. 주변에 전세로, 월세로 살던 가정들이 함께 모여 집을 짓자고 목소리를 모았다.

또 하나의 집을 짓기 전, 동네 생활과 공동주택을 지원하기 위한 협동조합도 함께 만들었다. 이름하여 ‘이웃집주거협동조합’. 고향을 떠나 집값을 따라, 직장을 따라 거처 없이 사는 세대, 누가 옆에 사는지, 내 이웃은 누구인지 알기 어려운 세상에서 서로의 이웃이 되겠다는 소망을 담았다.

조합도 설립하고 의지를 단단히 다졌지만 이웃집 2호의 탄생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누구는 만삭인 채로, 어떤 이는 유아차를 끌고서 동네 곳곳, 나온 매물이란 매물은 다 섭렵했다. 눈을 낮추고 또 낮췄지만 조건에 맞는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없이 많은 매물 중 대부분은 가격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아니, 실은 우리의 지갑 사정이 낙제점이었다. 우리 수중에 있는 돈으로 서울에 있는 땅을 사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무엇보다 땅을 계약할 목돈이 필요했는데 이미 각 가정이 가진 제일 큰 돈은 전세금으로 묶인 탓에 목돈을 마련할 재간이 없었다. 돈을 빌리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아무에게나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걸, ‘빚도 능력’이라는 걸 그때야 알았다. 로또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마당 텃밭 활동.

그때 1717의 식구들이 나섰다. 선뜻 돈을 빌려주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목돈이 생기자 일이 진척되기 시작했다. 부동산중개소에 들어가는 발걸음도 훨씬 당당해졌다. 1717 식구들은 그야말로 우리에게 비빌 언덕이었다. 물질적으로도 잊지 못할 빚을 졌지만, 땅을 보고 집을 짓는 내내 보내주었던 끊임없는 지지는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모두의 힘을 모아 이웃집 2호, 3031이 2021년 10월 탄생했다. 그리고 다시 1년 남짓 지난 지금, 우리의 삶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신발을 신지 않고 외투를 입지 않아도 들를 수 있는 이웃집이 생겼다. 아이들은 잠옷을 입고 이 집, 저 집을 뛰어다니며 논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우리 첫째는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옆집 언니를 ‘우리 언니’라 부른다. 손이 필요할 때는 옆집에 잠깐 아이를 맡길 수도 있고 등하원을 부탁하기에도 부담스럽지가 않다. 주말에는 돌아가며 식사 준비를 하고 함께 손님을 맞기도 한다.

올봄엔 작은 마당에서 함께 농사도 지었다. 초보 농사꾼들이라 벌레에게 내준 양이 더 많지만 적게나마 결실의 기쁨도 맛보았다. 아이를 돌보고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 함께라 더욱 수월했다.

언제까지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구성원 대부분 30년 정도는 기본으로 여기는 듯하다. 우선 30년 동안 함께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빚으로 묶인 경제 공동체라 함부로 탈퇴하기가 힘들다. 농담 반 진담 반인 말이지만, 20~30년 뒤 나의 주름진 얼굴 곁에 한 동네의 언니, 동생, 친구, 오빠들의 얼굴도 자연스레 그린다. 그 풍경에는 비단 우리만 있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동네에 3호집, 4호집도 지어져 더욱 많은 식구가 함께하기를 꿈꾸고 있다. 서울에서 내 집 한 채 갖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마중물이 되어주고 비빌 언덕이 돼주는 관계가 있다면 어떻게든 해내지 않을까 싶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율이 높아진 요즘, 매달 나가는 이자만 봐도 한숨이 팍팍 는다. 현재 한국은 가계부채 비율이 200%가 넘은 나라다. 부채는 증가했고 상환 능력은 악화했다. 반면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탄탄하지 않다. 2030 영끌족에게 닥친 위기에 우리라고 자유로울 수 있을까. 다행스러운 건 우리에겐 ‘우리’라는 안전망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서로의 안전망이 되어 새로운 삶을 조직하는 중이다. 부자는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동산으로 대박이 날 일은 없지만, 이곳에서 나의 사람들과 만들어갈 일상이 훨씬 더 대박인 것을 나는 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이웃집주거협동조합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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