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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급식 5년, 맛과 안전을 잡다

당진 배 12시간이면 마장초 급식판까지 단계별 깐깐한 검사, 염도까지 꼼꼼하게

등록 : 2016-11-17 13:38 수정 : 2016-11-2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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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도 안심하고 먹이는, 집밥처럼 맛있는 무상급식이다. 점심시간을 맞은 성동구 마장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급식실에 모여 친환경 재료로 만든 귀리밥과 감자맑은국에 오징어채무침, 돼지고기김치볶음 반찬과 후식인 배로 차린 점심을 먹고 있다.
서울시가 초·중학교 무상급식을 시행한 지 5년이 지났다. 무상급식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직접 계기가 됐던 뜨거운 이슈였지만, 이젠 이의를 다는 사람이 거의 없는 대세가 됐다. 단순한 무상 차원을 넘어 ‘친환경’과 결합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서울시 친환경 무상급식은 학부모가 안심할 만큼 잘 관리되고 있을까? <서울&>이 시골에서 키운 농산물이 아이들 밥상에 오르기까지를 시간대별로 추적했다.

글 정재권 선임기자, 윤지혜 기자 jjk@hani.co.kr

사진 장철규 기자, 장수선 기자 chang21@hani.co.kr

11월3일 새벽 00:45 입고

“왔다.”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시장 안에 있는 서울친환경유통센터의 김홍배 검품실장은 서둘러 1층 입고장으로 갔다. 평소 같으면 전날 밤 10시께 도착했을 충남 당진시 농협 해나루조합의 농산물 차량이 2시간이 넘게 늦었기 때문이다. 입고장에선 7.5t 트럭에 학교급식용 친환경 농산물 상자를 가득 싣고 온 해나루조합의 유형곤 주임이 지게차로 짐을 부지런히 옮기고 있다. 브로콜리, 깐 당근, 감자, 무, 사과, 배 등 여러 가지다. 이 중에 3일 낮 성동구 마장초등학교 급식에 쓰일 배 40㎏(3상자)과 깐 감자 20㎏이 포함돼 있다. 농산물은 각 학교의 영양교사들이 교육정보시스템(나이스)을 통해 한 달 단위로 주문한다.

농산물을 부린 뒤 유 주임은 검품장 벽의 운행일지표에 ‘타코미터'라고 하는 기록지를 붙였다. 농산물을 실었던 트럭 적재함의 온도가 10분 간격으로 찍혀 있다. 김 검품실장은 “당진에서 유통센터로 오는 동안 온도가 10도 아래여야 품질이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해나루조합 차량의 평균기온은 7도 정도였다. 센터는 이와 별도로 지피에스(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를 이용해 농산물 유통 차량의 위치와 온도 상태 등을 점검하고 있다. 모두 안전성을 위한 점검이다.

품질 관리는 해나루조합에서도 한다. 유 주임은 “이미 3~4일 전에 민간 검사기관에서 배의 농약 성분을 검사했다. 그 결과 문제가 없다는 ‘시험성적서'를 친환경유통센터로 보내 오케이를 받은 뒤 배를 실었다”고 말했다.


00:47 검사 1

해나루조합에서 온 배 세 상자는 바로 검품장으로 옮겨졌다. 이곳에서는 직원 16명이 전국에서 온 농산물을 검품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계약을 맺은 전국 11개 생산자단체에서는 밤마다, 주문받은 농산물을 친환경유통센터로 보낸다.

서울을 동서로 크게 나눠 동부권 389개 학교는 가락동 센터에서, 서부권 391개 학교는 강서구 강서농수산물시장 안에 있는 친환경유통센터에서 농산물을 공급 받는다.

생산자단체 차량은 가락센터를 거쳐 강서 센터로 가거나, 반대로 강서에 먼저 들린 뒤 가락으로 오기도 한다.

1차 관문은 육안 검사다. 센터의 이신교 대리는 먼저 상자 바깥에 붙어 있는 학교급식법과 친환경 농산물 표시 스티커가 틀림이 없는지 확인했다. 두 표시에는 이 배의 생산자가 충남 아산의 강정우 농부로 나와 있다. 이 대리는 상자를 열고 배 1개를 꺼내 모양을 살폈다. 벌레 먹은 흔적 등을 눈으로 가리는 ‘품위 검사’다. 진공 포장된 농산물은 그 상태로 전체를 육안 검사하고, 필요할 경우 금속탐지기로 이물질 투입 여부를 확인한다.

별다른 문제가 없자 이 대리는 배를 들고 당도측정실로 갔다. 2차 관문인 당도 확인을 위해서다. 빛을 쬐어 당도를 측정하는 비파괴검사를 했다. 배, 사과, 오렌지, 바나나 같은 껍질 과일의 당도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결과는 11.70브릭스(Brix·당도 단위). 이 대리는 “11브릭스 이상이면 합격”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농산물 종류에 따라 비파괴검사 외에도 디지털 당도 검사, 아날로그 당도 검사를 하고 있다.

01:15~03:15 검사 2

이제 가장 중요한 농약 검사 차례다. 당도 검사를 마친 배는 센터 3층 안전성 검사실로 옮겨졌다. 배 껍질을 벗기고 믹서기로 간 뒤 즙을 시험관에 넣고 시약으로 만들었다. ‘전처리’라고 하는 과정으로, 1시간쯤 걸린다. 시약으로 만든 배즙은 질량분석기에 들어갔다. 1대당 3억 원이 넘는 비싼 장비로, 가락동 센터에는 4대가 있다. 질량분석기는 332종의 농약이 허용기준치 이상 남아 있는지 검사한다. 허용치를 넘긴 농약이 한 가지라도 검출되면 그 농산물은 학교로 보내지 않는다. 대신 가락시장에서 같은 품목을 사서 안전성을 확인하고 배송한다.

장승욱 안전성검사실장은 “하루에 강서 센터를 더해 일반·친환경 농산물을 130~150건 정도 검사한다”며 “친환경농산물의 경우 기준치를 넘는 농약이 검출되는 사례가 평균 0.5%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질량분석기 테스트에서 해나루조합의 배는 기준치를 넘는 농약이 나오지 않았다. 4시30분께 “검사한 급식 농산물에 모두 문제가 없다”고 검품실에 통보했다.

지난 2일 밤에 서울친환경유통센터의 직원이 검품장으로 입고된 멜론을 꺼내, 벌레 먹은 흔적 등을 확인하는 품위 검사를 하고 있다.

01:30 피킹

안전성 검사가 이뤄지는 동안 검품장에서는 ‘피킹’을 했다. 동부권 389개 학교별로 롤컨테이너에 주문한 농산물을 쌓는 일이다. 직원이 마장초 롤콘테이너에 해나루조합이 보낸 배와 충남 당진의 깐 감자(생산자 손혜동)를 실었다. 이미 경북 영천의 깐 마늘(안대건) 1.5㎏, 경기 연천의 귀리쌀(김광수) 2㎏, 전북 완주의 찹쌀(석탄쌀작목반) 5㎏, 충북 진천의 쑥갓(이연순) 12㎏, 경남 창녕의 양파(김선녀) 6㎏, 전남 나주의 깐 대파(박경숙) 0.7㎏ 등이 실려 있다. 보통 피킹 작업은 전날 밤 10시부터 시작돼 새벽 2시 즈음에 끝난다.

친환경유통센터의 김이종 급식안전팀장은 “농산물은 센터에 입고되어 학교에 배송되지만, 축산물이나 수산물은 유통 과정이 복잡하면 변질 가능성이 있어서 업체에서 학교에 직접 배송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05: 00 배송

새벽 5시가 되자 친환경유통센터 주차장은 80대의 1t 트럭으로 가득 찼다. 검사를 마친 식재료를 학교로 실어나르는 냉장차들이다. 농산물 상자에는 친환경유통센터의 브랜드인 ‘올본’(올바른 먹거리의 근본) 마크가 붙어 있다.

마장초로 가는 안병덕 기사의 트럭은 5시가 넘자마자 출발했다. 마장초 외에도 강남구 압구정초, 광진구 중마초, 성동구 경동·금옥·행당초에 식재료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출발 전 안 기사는 피디에이(PDA·개인정보단말기)를 이용해 최종 검품을 잊지 않았다. 학교별로 영양교사들이 요구한 품목과 수량 등이 정확한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08:00 입고와 검수

안병덕 기사가 운전한 트럭이 마장초 주차장에 도착했다. ‘7시9분: 7도, 7시19분: 5도’, 가락동 친환경유통센터에서 학교로 올 때까지 차량의 온도가 10분 단위로 적힌 기록지를 정희선 영양교사가 전달받았다.

“감자 20㎏이요.” 정 영양교사와 조리실무사가 전자저울에 식재료를 올려놓고 주문서와 대조했다. 확인을 마친 농산물은 품질 상태를 점검받는다. 학교가 급식 모니터링단을 운영하고 있어, 품질 검수에 학부모가 날마다 참여한다. “이 배는 어디서 온 건가요?” 검수자로 참여한 학부모 유진영(42) 씨는 배의 상태를 살피며 원산지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유 씨는 “처음엔 친환경 급식이라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직접 살펴보니 집에서 먹는 것보다 좋은 재료들이라 안심이 된다. 마트에 가면 비싸서 사기 망설여지는데 학교에서 챙겨주니 좋다”며 웃었다.

09:30 조리

이날 급식 메뉴는 귀리밥에 감자맑은국, 어묵조림, 두부쑥갓무침, 오징어채무침, 돼지고기김치볶음 그리고 후식인 배다. 1인분 총열량은 628.5㎉로 권장량 555㎉보다 조금 높다. 정희선 영양교사는 “많은 아이들이 아침밥을 거르고 오는 점을 감안해 급식 영양량을 조절하고 있다. 학교급식은 메뉴 선택권이 없는 탓에 취향이 제각각인 아이들이 골라 먹을 수 있도록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김치볶음’의 주재료는 전북 김제에서 사육해 10월26일 도축한 무항생제 돼지 앞다릿살이다. 축산물 납품을 맡고 있는 (주)선진의 안성현 급식과장은 “무항생제 돈육은, 사료 관리는 물론이고 도축 후 1~3시간 안에 항생제 검사를 하는 등 안전성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급식에는 어묵(원양산)을 빼고 모두 국내산 재료들을 썼다. 친환경 쌀과 김치는 직거래와 G2B(정부 기업 간 거래)를 통해 안전한 식재료를 사고 있었다.

본격적인 조리에 앞서 영양교사와 조리실무사들이 모여 이날 식단의 특징과 조리 방법 등을 공유했다. 마침 6학년생들이 수학여행을 가 평소보다 적은 707명의 식사를 준비했다. 조리실무사 5명이 메뉴 하나씩을 맡은 뒤 식재료들을 씻고 다듬기 시작했다. 조리하다 생길 수 있는 교차 오염을 막기 위해 칼과 도마는 물론이고 고무장갑, 앞치마까지 용도별로 색을 구분해 쓴다.

위생과 함께 가장 신경을 쓰는 대목은 ‘염도’다. 마장초에서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국의 염도를 0.6% 이하로 맞추고 있다. 영양교사가 완성된 메뉴들의 간을 확인할 무렵, 조리실 옆 전처리실에서는 배를 씻기 시작했다. 유기농이라도 생으로 먹는 채소와 과일은 일정 농도의 소독액에 담갔다가 흐르는 물에 씻는 게 원칙이다. 배 67개는 껍질이 벗겨진 뒤 개당 14조각으로 나뉘었다. 밥과 국, 후식까지 조리를 마친 뒤에는 완성된 음식의 일부를 작은 보존식 용기에 덜어 담았다. 보존식은 식중독이 발생할 경우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되기 때문에 영하 18도 이하의 냉동고에 144시간 동안 보관한다.

12:10 배식

조리실이 얼추 정리될 즈음,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급식실에 모이기 시작했다. 날마다 아이들의 배식을 도와주는 지역 어르신들이다. 2년째 배식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는 윤상철(75) 씨는 “손주 같은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예쁘다”며 앞치마 끈을 동여맸다.

마장초의 배식은 식당에서 이뤄진다. 교실로 이동할 필요가 없어, 아이들이 먹기 좋은 온도의 음식을 원하는 만큼 덜어 먹는 장점이 있다. 다만 식당이 전교생을 수용할 수 없는 탓에 4교시 종료 후 낮 12시10분에 1·2·6학년이, 5교시 종료 후 오후 1시에 3·4·5학년이 각각 점심을 먹는다. 가장 어린 1학년생들이 제일 먼저 식당에 도착했다. 밥 먹을 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능숙한 젓가락질로 반찬을 가리지 않고 먹었다. 나물을 좋아한다는 최정윤(8) 양은 다른 반찬보다 두부쑥갓무침을 먼저 비웠다. 1학년 1반 아이들이 밥을 제일 잘 먹는 친구로 꼽은 김영우(8) 군은 “오늘은 돼지고기김치볶음이 제일 맛있다. 다른 반찬도 골고루 다 먹고 배는 후식으로 먹겠다”고 야무지게 말했다.

달콤하고 아삭한 배는 아이들에게 인기였다. 2학년 박준서(9) 군은 추가 배식대에서 배 조각들을 담으며 “벌써 5개나 먹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정 교사의 급식 철학은 ‘집밥처럼’이다. 친환경 재료에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통했던 걸까? 3학년 황아무개(10) 군은 “학교 밥이 엄마가 해준 밥보다 조금 더 맛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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