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제멋대로 자란 키 작은 소나무, 숲을 이루니 아름답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㉗ 서울시 광진구

등록 : 2021-06-1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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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바위틈에 뿌리내린 소나무들

가지는 눈높이에서 구불대며 자라고

뿌리는 발치에서 구불거리며 뻗는다

그 언저리에 놓은 돌무더기 소원탑은

행인도 숲의 아름다움에 반한 증거물

아차산 능선길은 키 작은 소나무 숲길이다.

700년 동안 살고 있는 광진구 화양동 느티나무는 조선 태조 이성계부터 조선 말 명성황후의 이야기까지 품었다. 마을 작은 공원의 향나무 고목은 예나 지금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위안이 된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나무와 숲도 이제는 우거져 사람들을 쉬게 하고, 아차산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쉬어가게 한다.

700년 정도 된 화양동 느티나무.


살곶이벌에 우뚝 선 화양정 느티나무

화양동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세 그루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화양동 느티나무공원에 있는 이른바 ‘화양정 느티나무’로 수령이 700년 정도 됐으며 서울시 기념물 제2호다. 그 공원에 300년 넘은 느티나무도 있는데, ‘화양정 느티나무’에 비하면 왜소하다.

조선 건국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화양정 느티나무’에 조선 태조 이성계 이후 여러 임금과 연관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공원 한쪽에 마련된 쉼터에서 그 이야기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군사용 말을 기르기 위해 살곶이 벌에 목장을 만들었다. 세종 임금은 그곳에 목장을 바라볼 수 있는 정자를 짓고 화양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화양정이라는 이름은 <서경>에 나오는 ‘말은 화산의 남쪽으로 돌려보내고 소는 도림의 숲으로 풀어놓았다’라는 고사의 ‘귀마우화산지양’(歸馬于華山之陽)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은 또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 임금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 가던 중 하룻밤 묵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주변 마을 사람들은 단종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회행정’(回行亭)이라는 별칭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연산군은 화양정에서 신하들과 시를 짓기도 했고, 정조 임금이 이곳을 지날 때 가랑비가 내렸다는 기록도있다. 1882년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을 피해 장호원으로 피신할 때 화양정에서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화양정은 원래 100간 이상 규모로 웅장했는데, 1911년 벼락을 맞아 무너졌다. 살곶이 목장을 그린 <진헌마정색도>에 화양정이 나온다.

조선의 여러 임금이 다녀간 그 자리는 지금은 마을 사람들 차지다. 정자는 없어졌으나, 나무 주변에 쉼터가 있다. 70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는 ‘화양정 느티나무’ 옆에 화양정 정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푯돌이 보인다. 나무 주변을 계속 돌면서 700년 느티나무의 세월과 옛이야기를 가늠해보는데, 나무 앞 풀밭에서 자라난 민들레 씨앗으로 나비 한 마리 날아든다. 나비의 날갯짓에 씨앗이 흩어진다. 그 뒤 700년 고목의 밑동이 배경이다.

화양동의 세 번째 느티나무 고목은 화양동 느티나무공원에서 동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다. 대성빌라로 올라가는 길에서 보면 언덕 위에 우뚝 선 나무의 기세가 늠름하다. 65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능동 향나무. 한 줄기 밑동에서 가지가 뻗어 자란다.

능동 향나무를 보고 서울 어린이대공원 숲길을 거닐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서문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능동 향나무’라고 불리는 470여년 된 향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나무 옆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의 안녕을 빌며 제사를 지내던 서낭당 옆에 있었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 나무를 당산목으로 여긴다.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쉬는 공간이다. 향나무 주변 나무 그늘 아래서 쉬는 할머니 몇 분은 여기가 아니면 우리 쉴 곳이 마땅찮다고 하신다. 나무 그늘이 시원해서 시간 보내기 좋다는 말도 덧붙인다.

할머니들께 인사를 남기고 돌아선다. 어린이대공원 서문으로 들어서는데, 마을 주민들이 감나무를 관리하며 해마다 감을 수확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안내 글을 보았다. 어떤 가수의 노래가 생각났다.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어보자 감이 익을 무렵 사랑도 익어가리라’라는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키 큰 나무가 터널을 이룬 길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인근 직장 사람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공원 이곳저곳을 거닌다. 줄기 굵은 침엽수 뒤 숲이 어두컴컴하다.

1973년에 어린이대공원 문을 열었으니, 50년 가까운 세월에 나무는 자라고 숲도 우거졌다. 이곳은 원래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황후 순명효황후 민씨의 능인 유강원(유릉)이 있었던 자리이니 당시 능역의 역사까지 이 숲길에 남아 있는 것이다.

들꽃 피어난 ‘들꽃&허브나라’는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양산을 받치고 걷던 아줌마들이 들꽃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양산을 걷는다. 추억 속 열일곱 살로 돌아간 양 친구들끼리 그렇게 꽃밭에서 시간을 보낸다. 풀밭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보인다. 꽃밭을 떠나지 못하는 나비떼가 꽃에 앉았다 날기를 계속한다. 커다란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밖은 포장된 큰길이다. 숲에 난 오솔길이 좋아 숲길로 걷는다.

유강원 석물이 있는 곳을 지나 키 큰 나무들이 울타리를 이룬 전래동화마을로 들어선다. <해님 달님> <혹부리 영감> <콩쥐팥쥐> <흥부 놀부> <선녀와 나무꾼> 등 옛 동화에 나오는 인물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간단하게 추린 이야기를 숲길을 거닐며 보고 읽는다. 인위적인 간섭 없이 자연의 생명력으로 생태계가 유지된다는 ‘생태습지’를 지나 공원 후문으로 향한다.

아차산 고구려정으로 가는 바위산 비탈길.

아차산 등산길은 키 작은 소나무 길

어린이대공원 후문에서 아차산으로 향했다. 아차산 산행은 언제나 아차산 생태공원에서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영화사부터 들르기로 했다. 400년을 훌쩍 넘긴 느티나무가 절 마당 한쪽에 있다. 영화사를 뒤로하고 아차산 생태공원에 들러 이맘때 무리 지어 피어나는 수레국화꽃과 수련을 보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아차산 등산길은 소나무 길이다. 키 큰 소나무 군락이 산을 찾은 사람들을 반긴다. 고구려정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르다 보면 실개천을 만난다. 비탈진 절벽 바위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듯 흐르는 인공폭포가 볼만한데, 폭포 가동 시간이 아니라 그냥 지나친다.

고구려정으로 가는 길, 실개천을 건너 바위 비탈 경사면을 오른다. 산 하나가 바윗덩어리다. 그곳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자란 소나무는 키가 작다. 바위 비탈 경사면에 낮게 엎드려 가지를 퍼뜨렸다. 가지도 넓게 펴지 못하고 구불거리고 꼬이며 자란다. 아차산 초

입에서 본 커다란 소나무와는 영 딴판이다.

고구려정을 지나 해맞이 광장 쪽으로 간다. 해맞이 광장에 오르면 시야가 넓게 트인다. 조금 전 거닐었던 어린이대공원 숲이 회색빛 도시의 오아시스처럼 녹색지대를 이루는 모습을 한눈에 넣는다. 다른 쪽 전망대에 서면 한강의 동쪽 풍경이 보인다. 멀리 경기도 검단산, 예봉산, 남한산 줄기까지 눈길이 닿는다.

해맞이 광장부터 이어지는 아차산 능선길은 전망 좋은 길로 알려졌지만, 구불거리며 제멋대로 자란 키 작은 소나무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소나무 길이기도 하다. 능선 곳곳에 옛 고구려군의 보루가 있고, 그 보루와 보루 사이를 소나무 길이 잇는다. 바위틈에 뿌리내린 소나무들이 더러는 뿌리를 드러냈다. 가지는 눈높이에서 구불거리며 자라고 뿌리는 발치에서 구불거리며 뻗는다. 그 뿌리 언저리에 쌓인 돌무더기는 이 소나무 길을 찾는 이들의 소원탑이 됐다. 아차산 정상인 제3보루는 넓은 풀밭이다. 그곳에서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들꽃&허브나라. 나비가 꽃을 찾아 날아든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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