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셰프는 철학자…저마다 독특한 요리 이야기

권은중의 나이 쉰에 떠난 이탈리아 요리 유학기 ⑲ 미슐랭 셰프 요리가 일반 레스토랑 요리와 다른 점

등록 : 2019-12-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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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다음 미슐랭 레스토랑 많은 곳

개중엔 공장용 냉동음식 사용하거나

요리보단 영업활동 우선인 곳 있지만

미슐랭 셰프 대부분 지역서 존경받아

전통을 세련되게 현대적 재해석하고

동양 재료 쓰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아

손님에게 요리와 함께 정담도 건네며

이탈리아 음식 전통 새롭게 만들어가


이탈리아에는 프랑스 다음으로 많은 미슐랭 레스토랑이 있다. 지난 11월 발표한 2020년 미슐랭 가이드 이탈리아 편을 보면 이탈리아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은 모두 374곳에 이른다. 별 3개를 받은 곳도 11곳이다.

이탈리아는 길거리 음식도 평균 이상이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먹어본 가장 맛있는 빵은 1.8유로짜리 이리스였다. 생크림에 초콜릿을 넣은 빵 반죽을 굽거나 튀긴 시칠리아 길거리 음식이다. 한입 물면 입에서 폭풍 같은 향연이 일어난다. 길거리 음식이 이 정도니 레스토랑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미슐랭 레스토랑은 다른 일반 음식점보다 월등히 맛있을까?

맛만 놓고 본다면 미슐랭 레스토랑에 대한 견해는 엇갈릴 수 있다. 맛이 사람마다 달라지는 주관적인 요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슐랭 레스토랑이라 하더라도 그곳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다. 전통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실험을 강조하는 레스토랑에 간다면 ‘가벼운데 비싸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슐랭 셰프인 마시모 카미아가 ICIF에서 시연을 마치고 학생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4시간 동안 이어진 강의 내내 요리에 대한 열정을 강조하며 정열적으로 요리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서 미슐랭 셰프를 많이 만난 덕분이었다. 20명 넘는 셰프가 특강 수업을 했다. 이들 상당수가 미슐랭 셰프였다. 나는 그들에게서 요리는 물론이고 제빵·디저트를 배웠다. 미슐랭 셰프들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같은 생각, 같은 요리를 하는 셰프들은 없었다. 셰프가 달라지면 레스토랑이 달라지는 까닭이다. 그리고 아무리 미슐랭 셰프라도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미슐랭 셰프가 추구하는 요리가 일반 레스토랑 요리와 다른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전통을 세련되게 계승한다. 이들은 자기 지역의 전통 음식을 세련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이탈리아 요리의 정수를 배우러 갔던 나에게는 가장 귀감이 됐던 셰프들이다.

피에몬테에 있는 학교는 피에몬테의 전통 요리를 매우 강조했다. 이 음식들이 계속 시험에 나왔다. 그러니 레시피를 외우고 또 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외국인인 나에게 이 전통은 낯설었다. 우리로 치면 참치삼각김밥을 연상케 하는 비텔로 톤노(오븐에 구운 소고기를 참치와 멸치를 간 소스에 찍어 먹는 요리)는 들어가는 품에 견주면 맛은 떨어졌다. 또 피에몬테식 고기만두인 플린(아뇰로티라고도 한다)도 별로였다. 고기로만 만들어 부드러운 동양식 만두를 선호하는 나에게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하지만 미슐랭 레스토랑 셰프들의 전통 음식 요리는 차원이 달랐다. 비텔로 톤노를 쇠고기뿐 아니라 파프리카나 생선살로 혹은 토마토로 말아서 만들어냈다. 정말 조그만 공처럼 만들어낸 셰프도 있었다. 학교 수업에서 만들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전통을 해석하는 데는 노력과 창의가 필요한 거였다.

둘째는 소재를 강조하는 셰프다. 이들은 새로운 소재와 기법으로 고객에게 맛의 상상력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들은 일본이나 중국 등의 동양 재료를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분자요리 등의 전위적인 요리도 많이 쓴다. 주로 30대의 젊은 사람이 많았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가장 적합한 요리였다. 기억나는 요리는 참치회와 구운 푸아그라를 김과 함께 켜켜이 쌓아 올린 밀푀유였다. 진귀함의 극치였다. 그러나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마지막으로는 철학이었다. 요리사는 직업 특성상 사유보다는 실천을 앞세운다. 일 년 365일 매일같이 새로운 요리를 고민해야 하는 셰프가 자신의 요리를 관통하는 철학을 근사한 수사를 동원해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동양에서는 그래서 그들의 조리 과정에 ‘도’라는 말을 붙이기도 한다.

미슐랭 레스토랑 ‘알에노테카’의 셰프인 다비데 팔루다가 피에몬테의 전통 라비올리인 플린을 접시에 담고 있다. 소스 천국인 이탈리아에서 소스 없는 플린 요리를 보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의 조리복 역시 내가 이탈리아에서 본 셰프 복장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멋졌다.

하지만 ‘알에노테카’의 셰프 다비데 팔루다는 달랐다. 그는 내가 피에몬테 전통 요리 가운데 이해되지 않았던 플린을 이해시켜주었다. 피에몬테의 많은 레스토랑에서는 플린을 메인 요리로 내놓는다. 보통 플린은 세이지버터소스(버터에 허브인 세이지 잎을 넣어 만든 소스)를 곁들인다. 안 그래도 고기 함량이 높은 플린을 이 소스로 요리하면 고기 맛이 더 강조된다.

그러나 다비데는 이 플린을 삶은 뒤 아무 소스 없이 접시에 담아 내놓는다. 불과 20년 전까지 이렇게 먹는 게 전통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소박하기 그지없는 그의 플린은 다른 플린에 견줘 맛있었다. 고기와 피의 비율을 7 대 3으로 맞춘 그의 레시피 때문만이 아니었다. 소스 없는 이탈리아 요리를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다비데는 자신만의 철학을 내세워 기존 요리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혔다. 이야기가 소스 맛을 대신한 것이다. 내 눈에는 그가 요리사가 아니라 철학가로 보였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 직접 가보았고 현지에서 여러 음식을 먹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과 일본의 요리에는 심장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요리에는 나만의 개성이 담겨야 하며 음식이 손님의 손목을 잡아끌고 가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고기 스테이크를 천편일률적으로 메인 요리로 내놓는 한국 외식문화에 일침을 가하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모든 미슐랭 레스토랑이 다 맛있지는 않았다. 내가 가본 미슐랭 레스토랑의 가장 큰 단점은 코스 전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거였다. 특히 빵, 젤라토, 커피와 같은 음식 앞뒤의 코스가 부실한 곳이 제법 있었다. 이는 주방 인원이 충분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인 ‘마시모 카미아’의 라비올리 일종인 카펠레티 요리. 일반 레스토랑과는 차원이 다른 접시였다.

파인 다이닝은 셰프와 수셰프 그리고 전채-파스타-메인-디저트·제빵 부문장 3~4명 등 최소 4~5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작은 규모의 레스토랑은 이보다 훨씬 적은 인원이 일한다. 대신 비숙련된 가족이나 인턴들이 이 업무를 대신한다. 미슐랭 레스토랑 역시 이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공장에서 만든 냉동음식이나 간편식을 쓰는 경우가 있다. 가장 많이 대체하는 게 빵과 디저트 그리고 커피와 차다. 라비올리처럼 손이 많이 가는 품목에 기성품을 쓰기도 한다. 따라서 레스토랑을 가면 가장 먼저 체크할 일은 메뉴가 아니라 주방이다.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인 ‘카 비토리아’의 빵. 이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는 제빵이 주특기다. 빵이 맛있는 레스토랑은 가마솥밥을 내놓는 한식집 같은 느낌을 준다.

더 나쁜 경우도 있었다. 우리 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미슐랭 레스토랑에 인턴을 나가기 때문에 미슐랭의 실체를 직접 목격한다. 선후배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곳이 어떻게 미슐랭을 받았을까 의아한 집도 있었다. 가장 나쁜 레스토랑은 요리보다는 돈이 되는 연회 혹은 대외 영업 활동에만 신경을 쓰는 주객전도형 셰프가 있는 곳이다. 외부 활동 덕분에 오래전 받았던 원스타를 유지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런 레스토랑은 인턴을 가도 배울 게 없다. 그리고 연회 때에는 새벽 3~4시까지 정말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 이밖에 개들이 마음대로 주방에 들어오게 하는 위생 개념이 없는 미슐랭 레스토랑도 있었다. 또 셰프가 주방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요리하는 곳도 있었다.

분자요리는 미슐랭 스리스타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인 스페인 엘블리에서 시작해 주목받았다. 하지만 요리의 연출을 보조하는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사진은 분자요리로 만든 유사 계란. 맛은 진짜 계란보다 훨씬 못하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에서 이렇게 문제가 되는 레스토랑은 소수다. 대부분의 미슐랭 레스토랑 셰프는 지역의 유명 인사로 존경받는다는 게 선후배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내가 인턴으로 일했던 레스토랑의 셰프도 미슐랭 셰프는 아니었지만 지역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지역 명망가였다. 먹는 것을 중시하는 이탈리아에서 셰프들은 이처럼 오래전부터 지역 사회의 존경을 받아왔다. 그래서 대를 이어가는 레스토랑이 많은지도 모른다. 그들이 존경받는 이유는 이탈리아 음식의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2016년 처음 발행된 미슐랭 가이드(서울 편)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의 진위는 알 수 없다. 다만 한국의 미슐랭 레스토랑이 잘 차려진 음식을 과시하는 고전적인 오트 퀴진(프랑스 궁정문화에서 유래된 전통적인 고급 요리)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한국 레스토랑이 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실험’이라는 가치를 만들어가는지도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미슐랭 레스토랑을 가면 젊은 남녀뿐 아니라 노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온다. 또 가족 손님도 많다. 나이 지긋한 셰프는 이들에게 요리를 건네며 정담을 나눈다. 이런 그림 같은 장면에 레스토랑의 진짜 가치가 있다. 단순한 식욕이나 과시욕 같은 욕구를 충족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회적 네트워크로서의 가치 말이다. 미슐랭인지 아닌지는 그다음 문제다.

글·사진 권은중 <음식경제사> <독학파스타>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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