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도쿄라이프

죽음을 공포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

등록 : 2016-05-26 14:50 수정 : 2016-05-2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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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묘지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죽음을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자료사진
80년대 초반 취재차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때 받았던 가장 큰 문화 충격이바로 이 공동묘지였다. 당시 나는 마을 한가운데에 공동묘지가 있는 것이 무서워 밤에는 일부러 택시를 타고 먼 길을 돌아 다녔다. 그때까지 공동묘지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란, 어렸을 적 어른들이 겁을 줄 때마다 ‘귀신 나오는 곳’이라고 윽박질렀던 공포의 기억뿐이라서 일본의 그런 주거 환경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20년 이상 살다 보니 나 또한 공동묘지가 그냥 동네 공원 같다. 실제로 해마다 봄만 되면 아오야마 근처의 공동묘지는 벚나무로 둘러 싸여 있어 인근 주민들과 도쿄대학 이공학부 학생들의 ‘하나미’(벚꽃놀이) 장소로 애용된다.

어느 해인가 나도 그곳에 초대를 받아 하나미를 즐긴 적이 있다. 그런데 장소가 장소인지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그야말로 한없이 아름다운데, 주변이 온통 공동묘지이다 보니 마치 이승이 아닌 저승에 와 앉아 있는 것 같아 정말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렇듯 일본인들은 ‘죽음’에 관한 한 우리처럼 그리 큰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때문에 주거 공간과 공동묘지가 한마을이 되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고, 주민들 또한 언젠가는 자신들도 한 줌의 재가 되어 그곳에 안치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다.


그래서일까. 일본인들은 위기, 특히 죽음 앞에서 대처하는 자세가 참으로 경이롭다. 1985년 8월12일, 509명의 승객과 15명의 승무원이 탄 JAL 항공 123편이 일본 중부지방 산악지대에 추락했다. 정비 불량으로 폭발돼 추락한 이 여객기가 상공에 머물렀던 시간은 총 32분. 524명 중 4명이 살아남았고 무려 520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상공에 떠 있던 32분 동안 산소마스크를 쓴 승객 모두가 곧 추락할지 모른다는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는 있었지만, 그로 인한 혼란이나 소동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생존자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직감하고 가족이나 친지에게 보내는 유서를 추락 직전까지 썼던 사실이 밝혀져 일본 열도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1995년 1월 한신 대지진, 2011년 3월 동북대지진, 그리고 지난 4월 구마모토 지진 발생 때 일본인들의 대처 모습을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내가 일본에 사는 동안 단 한번도 대규모 지진이나 대형 사고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일본인들을 본 적이 없다. 일본인들이라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건만,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차분함은 우리의 상식 수준을 뛰어넘는다.

이에 대해 30년 지기 일본인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에게 있어 ‘죽음’은 일상생활의 동반자와 같은 것이다. 언제 지진이 일어나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늘 죽음에 대비하며 살아간다. 생과 사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우리가 보육원 시절부터 지진 대피 훈련을 받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반면, 죽음에 대비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그만큼 일본인에게 죽음은 늘 곁에 있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또 나만 당하는 피해가 아니고 누가 언제 어디서 조우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특별한 원망도 없다. 죽음에 대한 해탈이라고나 할까, 우리 일본인에게는 죽음에 대한 미학 같은 것이 있다.”

나 또한 실제로 20년 넘게 일본에서 살다보니 이 친구의 말에 완전히 수긍이 간다. 하루에도 몇번씩 되풀이되는 지진을 겪을 때마다 나 역시 이 생의 마지막 정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30년 이내에 진도9에 버금가는 대지진이 일어나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지않은가.

그렇다면 생명을 앗아갈 정도의 대규모 지진이 만약 내 앞에서 난다면, 그럼 나는 일본인들처럼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그에 대한 대답은 역시 ‘노’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직은 더 클뿐더러 위기에 대처하는 훈련마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구청에서 발행한 지진안내서를 아주 열심히 보고 있다.

글 유재순 일본 전문 온라인매체 <제이피뉴스>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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