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도쿄라이프

바람 빠진 골든 위크

등록 : 2017-05-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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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가 되면 일본 열도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된다. 4월 말부터 5월 초순까지 이어지는 ‘골든 위크’ 때문이다. 이 기간에는 도쿄 시내가 휑할 정도로 텅텅 비고 오피스 타운가의 식당들도 이때만은 쉰다.

일본인들은 이 골든 위크를 연중행사로 여겨 1년 전부터 미리 스케줄을 짜 연휴를 즐긴다. 게다가 연휴 기간이 워낙 길어서인지 대개 일본인들은 국내가 아닌 해외여행을 선호한다. 그럼 올해 일본인들의 골든 위크는 어떠했을까?

1980~1990년대만 해도 일본은 참으로 풍요로웠다. 경제면에서만 그랬던 게 아니라 일본인들의 마음도 그랬다. 누구에게나 매우 친절했고 매사에 여유가 넘쳐흘렀다. 그런 만큼 일본 사회는 활기찼고 대중문화 또한 애니메이션 등이 세계를 선도했다. 그랬던 일본이 장기간의 불황으로 ‘잃어버린 10년'에서 20년으로 넘어가더니 어느 사이 사회 전체가 팍 늙어버린 느낌이다. 특히 중장년층의 변화가 심하다. 과거 일본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었던 이들이 경제력을 잃어버리자 너무 의기소침해져버린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들을 가리켜 일본인들이 소심해서 과감한 도전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얘기를 하지만, 80~90년대의 그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길 즐겼고 좀 더 완벽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그래서 80년대의 일본은 경제대국이 됐고 문화대국이 됐다. 그 연장선에서 일본인들은 틈만 나면 해외여행을 즐겼으며, 개발도상국들을 원조하는 것에서 경제대국의 위상을 확인했고, 자부심을 찾았다.

그랬던 일본이 90년대 초반 버블경제 붕괴 후 극심한 불황, 끝 모르는 물가 하락의 디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되면서 어느 사이 폭삭 늙어버렸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꿈의 연휴인 골든 위크, 황금연휴라고 해서 이런 급격한 변화의 바람을 피해 갈 순 없다. 우선 해외여행객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올해 골든 위크에는 도쿄 시내가 사람들로 붐볐다. 게임과 각종 캐릭터 마니아들이 몰려드는 전자상가 아키하바라와 젊은이들의 성지 시부야는 해외에 나가지 못한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그런가 하면 시내 식당가에선 삼삼오오 가족 단위로 외식을 즐기는 광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중 유독 시선이 가는 것은 개인 저금액이 가장 많다는 고령층의 노인들. 예전 같으면 골든 위크에 해외 휴양지에서 우아하게 여가를 만끽했을 텐데 올해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유는 그럴 정신적·물질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란다.

연휴 기간 중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하루걸러 비빔밥을 먹으러 오던 40대 후반의 여성이 와서 작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설명해주었다.


“골든 위크는 마음이 풍요로웠을 때 해당하는 말이지요. 지금은 사방이 깜깜하게 막혀 있어요. 부모님은 연로해 요양원에 계시고, 회사 잔업이 없어져 수입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일본 경제는 언제 좋아질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벌써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어요.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골든 위크라고 해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어디론가 떠날 용기가 나질 않지요. 유일한 낙이라면 이렇게 소박하게 비빔밥을 맛있게 비벼 먹는 것이 전부랍니다.”

손님의 말인즉,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생활도 자기와 대동소이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대부분의 지인들이 꼭 경제적으로 궁핍해서라기보다 정신적으로 움츠러들어 옴짝달싹 못 하는 정체 생활을 10여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65살 이상 고령자들이 일본 전체 인구 중 3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불경기가 계속되다 보니 일본인만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일본 사회도 덩달아 노화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골든 위크 중의 도쿄 시내 패밀리 레스토랑은 해외로 나가지 못한 일본인들이 가족 단위로 외식을 즐기고 있었고, 특히 코리아타운으로 알려진 신주쿠 신오쿠보 거리는 한류를 즐기러 나온 일본인들로 오랜만에 인산인해를 이뤄, 재일동포 상인이 활짝 웃었다.

글 유재순 <제이피뉴스>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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