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중의 쿠킹 허니

새우 한번 믿어봐

등록 : 2016-05-26 14:16 수정 : 2016-05-2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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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시간이다. 대체로 주부들이 요리를 잘하는 것은 가족을 위해 주방에서 오래 일한 관록이 있기 때문이다. 무술영화에서 몇 년 동안 물 긷고 장작 패고 밥 하기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비유가 아닐까? 즉 요리 내공의 y값은 시간 변수 x에 의해서 결정된다. 고기도 양념에 하룻밤 재워 놓으면 맛이 달라진다. 늘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이 요리를 잘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요리가 시간이라는 하나의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2차함수는 아니다. 시간의 한계를 단숨에 뛰어넘게 해 주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MSG? 인공조미료로 맛을 낼 수는 있지만 가족 존중의 원칙과는 위배된다. ‘소리 없는 아우성’과 비슷한 모순형용이다.) 조리는 간단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재료가 요리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을 돌파하게 만드는 주인공이다.

육수 편에서 설명한 조개도 요리의 y값을 높여 주는 꽤 괜찮은 친구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개는 화려하지는 않다. 조개를 헬스에 비유한다면 몸을 꼿꼿하게 만드는 탄탄한 하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딱 벌어진 어깨’나 ‘식스팩’처럼 오랜 시간의 내공을 보여 줄 요리 재료는 무엇일까?

새우(대하·사진)를 추천한다. 새우는 머리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껍질 부분만 까서 내장만 발라 내면 손질이 끝난다. 내장도 5㎝ 길이의 검은 실 정도다. 남의 살 가운데 이렇게 손질이 쉬운 재료는 거의 없다. 갯것 특유의 비린내도 없다. 게다가 새우는 조리법도 간단하다. 새우는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과 함께 몸에 당을 함유하고 있다. 높은 온도로 구우면 이들이 화학반응을 하면서 다양한 풍미가 난다. 양파나 파 같은 향채와 함께 구우면 향은 더 진해진다. 좀 더 고급스러운 요리를 내놓고 싶다면 아스파라거스와 함께 구워 보면 어떨까? 구울 때 버터와 흰 포도주를 함께 넣어 주면 풍미가 훨씬 살아난다. 또 생새우살을 참나물·시금치 같은 푸른 채소와 함께 갈아 녹말에 굴려 완자로 만들어 쪄 먹으면 웬만한 딤섬이 부럽지 않다.


심지어 껍질과 머리도 요긴하다. 새우 머리와 껍질을 마늘과 함께 볶은 뒤 물을 부어 끓이면 새우 육수가 된다. 새우 껍질의 아미노산은 기름에서 잘 녹기 때문에 한번 볶아 준다. 파·당근·양파와 같은 향채와 피쉬소스나 국간장같이 쿰쿰한 소스로 간을 맞춰 20~30분 끓인다.

새우 육수로는 다국적 요리를 할 수 있다. 동남아 스타일에는 코코넛 오일을, 인도 스타일에는 카레를, 한식에는 된장이나 고춧가루를 넣으면 된다. 토마토소스를 넣고 걸쭉하게 끓이면 파스타가 된다. 궁합이 다 맞는다. 육수를 약한 불에 오래 끓여 버터를 넣고 졸이면 서양식 소스로도 손색이 없다.

장점이 많은 새우는 1만원이면 2인분이 충분히 나올 만큼 값마저 착하다. 장볼 때 새우에 자꾸 손이 가는 이유다.

글·사진 권은중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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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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