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노무사와 ‘함께 푸는’ 노동문제

‘건폭’ 아닌 ‘건설노동자를 위해 일한 사람’ 양회동!

⑦ 건설현장의 ‘19세기 노동 관행’과 건설노조

등록 : 2023-06-0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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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2006년 노무사 된 뒤 첫 직장 건설노조

12시간 고강도 노동, 현장 근처 대기 등

그곳에서 본 너무나도 가혹한 건설현장

누가 진짜 사장인지 밝히는 데 몇 개월


‘한 주에 하루 쉬기’ 위한 건설노조 노력

‘가족과 저녁’ 하는 노동자의 작은 꿈들


‘건폭’ 몰리면서 무더기 소환에 ‘산산조각’

“정부, 탄압하기 전 불법 온상 제거부터”

이 세상에 노동법도 노동조합도 없었던 적이 있다. 일하는 사람은 하루에 10시간이건 12시간이건 물량을 맞추는 데 필요한 시간만큼 강도 높게 일해야 했고 공정이 돌아갈 때 언제든지 일할 수 있도록 현장 근처에서 먹고 자며 대기 상태로 살아야 했다. 휴일도 휴가도 없다가 현장 사정으로 한 번씩 쉬라고 하면 그제야 갑자기 쉴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돈은 많이 벌었을까? 이상하게 일하면 할수록 더 가난해졌다. 노동시간은 길어졌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 일자리를 소개해준 데서 임금을 떼가고 남은 돈은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아무런 예고 없이 제때 못 받을 때가 많았다. 두세 달씩 임금을 받지 못해도 혹시 그동안 밀린 임금조차 받지 못할까봐 그만둘 수도 없었다.

이렇게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프면 참다 참다가 자기 돈으로 치료받고 그러다가 일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되면 쫓겨났다. 부당해고를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보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혹시 안전하지 않은 현장에서 누가 일하다가 죽었다고 소문이라도 날까봐, 일하는 사람들이 체불되는 임금에 대한 불만이라도 이야기할까봐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먼 나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가 막 시작됐을 무렵인 200년 전쯤의 노동자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 상황은 2000년대까지 존재해온 대한민국 건설현장의 모습이다.

필자가 2006년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하고 처음 일했던 직장이 바로 건설노조(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였다.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그동안 공부했던 노동법(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산업안전법 등)이 건설현장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매일매일 커다란 물음표를 안고 목격해야만 했던 시기였다.

임금을 60일 이상 깔아두면서 지급하지 않는 불법적인 관행도 잊히지 않는다. 이에 따라 설이나 추석 즈음이면 명절을 보내기 위해 그동안 밀렸던 임금을 달라는 요구를 준비해야 했다.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인 임금체불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려고 할 때면, 누가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사장인지 밝혀내는 데만 몇 달씩 걸렸다. 그러나 찾아낸다 해도 이미 건설현장이 없어졌거나, 그 사장은 멀리 도망간 상태일 때가 많았다.

건설현장은 다단계로 사람을 데려다 쓰는 구조(‘다단계 하도급’이라고 한다)라서 일하는 사람이 어떤 고용형태인지 알기도 어려웠다. 소개업체를 통해 건설현장에 들어왔는지, ‘오야지’라고 불리는 팀장의 팀원인지 확인하는 것마저 어려웠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근로계약서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소개업체를 통해 건설현장에 들어온 경우에는 소개비만큼 임금이 줄어들어야 했고, 팀장(오야지)의 팀원으로 건설현장에 들어온 경우에는 팀장인 오야지가 주는 대로 받아야 했으므로 임금에서 월 100만원씩 공제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야지는 팀원의 임금이 얼마인지 구분돼 있지 않은 상태로, 소위 ‘통으로’ 돈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건설노조는 이렇게 다단계로 사람을 데려다 쓰는 구조를 금지하고 건설업체가 임금을 직접 지급하는 법을 요구했고, 결국 그 법이 만들어졌다. 물론 여전히 건설현장에서는 소개업체나 팀장을 통해 일하는 경우도 많지만 적어도 건설노조의 조합원들은 달랐다. 건설업체와 근로계약서를 투명하게 쓰고, 중간에 소개업체나 팀장이 임금을 가져가는 일도 줄어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건물을 짓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서(그렇게 함으로써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기 위해서), 일주일 내내 휴일 없이 새벽부터 일을 시켰던 건설회사에 건설노조는 일주일에 ‘하루’는 건설노동자들이 쉴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건설노조는 또 건설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구했다. 일하다가 사람이 다쳐서 죽으면 입찰 점수에 영향을 받을까봐 쉬쉬하면서 안전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던 것을 은폐하는 데만 급급했던 건설업체들에 “산업안전법 위반!”이라며 강하게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그 덕에 지금은 건설현장에서도 일주일에 하루는 쉴 수 있고, 그동안 지급하지 않았던 안전장비도 지급받는다.

건설노조가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좋아진 점’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의 조합원은 “가족과 저녁식사를 할 수 있게 된 점”을 꼽는다고 한다. 이전에 건설노동자들은 오야지를 따라 전국을 떠돌며 가족과 떨어져서 일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왔다. 건설노조는 거주지와 멀지 않은 장소의 건설현장에서, 소개업자나 오야지의 중간착취 없이 일할 수 있도록 고용을 요구해왔다. 그리고 노동조합을 통해 이제야 떠돌지 않고 정주하며 일하는 삶을 시작하게 됐다.

정부가 노동조합을 혐오하면 지지율이 오른다고 한다. 선진국은커녕 문명화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기도 민망하다. 정부와 언론은 갑자기 건설노조를 ‘건폭’(건설업 폭력배)이라 호명하고, 그동안 교섭으로 이루어지던 요구와 협상 과정을 ‘공갈죄’ ‘협박죄’라며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심지어 경찰은 고발 건수를 높이는 것에 특진이 걸려 있어 ‘민주노총 교섭위원 ○○○’을 고발한다고 적어둔 고발장 양식을 건설업체들에 배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건설노조 조합원 1천여 명이 무더기로 소환됐고 이렇게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난 5월1일 강원지역의 건설노동자 양회동님이 검찰에 항의하며 돌아가셨다. 오히려 건설현장의 소장들이 탄원서를 쓰고, “건설노조의 협박이나 강요가 없었다고 했는데 왜 자꾸 사람을 몰아가느냐”고 이야기할 정도였다니 수사 압박이 엄청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 양회동님은 최근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셨던 분이라고 한다. 건설현장에서 당연한 줄 알았던 불법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변화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건설노동자도 사람처럼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리고 처음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활동했을 그를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다.

정부는 노동조합을 혐오하고 탄압하는 정책을 당장 중단하고 강압수사 책임자를 처벌하기 바란다. 그동안 정부가 방치했기 때문에 건설노조가 해왔던 일들, 건설현장에 셀 수 없이 많은 불법의 온상을 제거해온 그 일들을 이제 스스로 하나하나 해결하기를 바란다.

건설노동자가 “법대로” 고용되고 “법대로” 안전하게 일하며 “법대로” 임금을 받고 “법대로” 노동시간을 지킬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할 “법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법을 좋아하는 정부가 먼저 나서기 바란다. 건설노동자 양회동님의 명복을 빕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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