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노무사와 ‘함께 푸는’ 노동문제

‘업무시간 외엔 일 안 하기’ 스마트 시대 시급한 권리

⑥ 노동시간2 : ‘연결되지 않을 권리’

등록 : 2023-05-0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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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본·독일 등에선 ‘근무시간 철저 기록’

‘노동시간 초과한 노동’ 막기 위한 조처

‘업무시간 외 업무지시’에 자주 노출된

한국 노동자, 스마트환경에서 ‘더 악화’


‘지시받는 업무, PC로 수행 노동자’ 늘어

‘시공간 제약 없는 노동’ 대책 필요 공감


“원격근무 노동자, 일 중독자 돼선 안 돼”

유럽 노동자의 목소리 귀담아들어야

일하는 사람이 자신이 실제로 일한 시간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회사는 임금 대장에 직원 각자의 노동시간과 연장·야간·휴일 노동시간을 기재해야 할 의무가 있고, 매월 노동자에게 발행하는 급여명세서에 노동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임금항목(주로 시간외수당)에 대해서 연장노동, 야간노동 또는 휴일노동의 시간 수를 포함해 계산방법을 기재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48조 ‘임금 대장 및 임금명세서’). 그러나 임금대장이나 급여명세서에 적힌 정보만으로는 ‘월’ 단위의 총 노동시간과 ‘월’ 단위의 연장·야간·휴일 노동시간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매일 실제로 업무를 시작했던 시각과 종료했던 시각까지 확인할 수는 없다.


노동시간을 관리하고 기록하는 나라들

일본에서는 2017년부터 ‘노동시간의 적정한 파악을 위하여 사용자가 강구해야 할 조치에 관한 기준’을 시행하고 있다. 회사가 일자별로 노동자마다 업무 시작 시각과 종료 시각을 기록해야 하고, 아이디(ID)카드 태깅 기록이나 개인 컴퓨터(PC) 사용기록 등 객관적인 데이터로 확인해야 하는데 만약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한 확인이 어려운 경우에는 노동자 스스로 노동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자기신고제’를 운영한다. 이때 노동자가 신고한 노동시간보다 긴 시간 동안 사무실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면 회사는 그 이유를 보고하게 하고 혹시 노동시간인데 신고가 누락된 것이 아닌지 조사해야 한다. 회사에 시간외노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의 상한을 정해두는 제도가 있다면 혹시 그 상한 때문에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신고하지 못하는지 확인하고 개선하는 조치도 취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하루 노동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면 회사가 그 노동시간에 대해 기재해야 할 의무가 있고, 노동시간 연장에 동의하는 의사표시를 한 노동자의 목록도 작성해야 한다. 회사에 노동시간 기록 의무가 있긴 하지만, 노동자에게 본인의 노동시간을 기록하게 하는 관리 방법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임금노동자 87.8%, “노동시간이 아닌 시간에 업무지시”

경기연구원이 2021년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최근 언론에 회자됐다. 87.8%가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고 노동시간이 아닌 시간에 상사가 연락하는 이유를 보면, ①외부기관·상사 등의 갑작스러운 업무 처리 요청 때문(70%) ②생각난 김에 지시하려고(20%) ③시간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아서(5%) ④상대방이 이해해줄 것으로 생각해서(4%)였다. 실제로 긴박한 상황도 있었겠지만 상사(또는 그 상사의 상사)가 평소 업무를 지시하는 태도나 습관이 원인인 경우도 많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으로 이제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일할 수 있는 스마트 환경이므로 노동시간이 아닌 시간에 업무지시를 받아도 즉시 그 업무를 하게 되는 경우가 과거보다 훨씬 늘어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회사 메신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 채팅방에서 상시적으로 알림음이 울리고 이것을 확인해야 하는 압박감도 크다. 24시간 연결돼 있다는 감각은 지나친 피로감으로 연결된다. 이제 일로부터 분리되어 휴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하는 장소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퇴근 뒤 업무와 관련한 전화, 메일 등을 하지 않고 업무와 관련한 정서적 활동도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됐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으로 유럽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법으로 만들거나 회사 차원의 시스템 또는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으로 현실화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아래에서 그 상황을 살펴보자.


1)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정한 나라: 프랑스는 노동시간이 아닌 시간에 이루어지는 업무 연락에 대해서 2016년 ‘연결되지 않을 권리’로 법제화했다. 그러나 이 법에 어떤 구체적인 방법까지 정해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연결차단권’의 행사 방법과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규제하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회사가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하는 것을 의무로 규정했고, 만약 단체협약이 없다면 회사가 종업원대표기구와 협의해 지침을 만드는 것을 의무로 정해두었다.

이탈리아에서도 프랑스의 ‘연결차단권’에 영향을 받아 2017년 법률이 제정됐다. 원격근무 등 스마트워킹을 할 때 노동자와 회사가 ‘서면합의’로 휴식시간과 연결차단권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규정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스페인도 2018년부터 연결차단권을 포함하는 개인정보 보호와 디지털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는데 “노동시간 외에는 디지털 ‘연결차단권’을 가지고, 그 실행방법은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으로 정하되 단체협약이 없는 경우 사용자와 노동자대표의 합의로 정한다. 사용자는 또한 노동자대표의 의견을 들은 뒤 연결차단권과 스마트기기 사용에 관한 교육 및 주의 환기에 관한 내부 규정을 제정하고 재택근무의 경우에도 연결차단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내용으로 유사하다.

2)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기업별로 정하는 나라: 독일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법률은 없지만 기업들이 사업장 특성에 맞게 개별적으로 노동시간 외에 디지털 연락을 금지하거나 연락 횟수를 제한하는 정책을 운영한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원격근무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나라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 노조연맹은 “원격근무를 하는 노동자는 일 중독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개인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24시간 업무를 강요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개별 기업이 노사협의회에서 원격근무 도입·운영 방법을 합의한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디지털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해왔고 생활이 편리해졌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일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업무지시 때문에 압박을 받아야 하고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것이라면 적절한 제한과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은 노동시간의 관리와 기록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인데 노동시간이 아닌 시간에 상시적인 업무지시도 받아야 하고 정서적 연결감까지 추가되니 노동자의 건강과 업무 몰입도에 큰 영향을 줄 것 아닌가. 한국은 드러내지 못하는 노동시간이 이미 너무 길다는 것을 인식하고 노동정책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이남훈, ‘디지털 전환 시대의 근로시간 규율’, 2021.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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