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 음악회·정원 가꾸기…코로나 블루도 함께 이겨낸다

행복둥지 이야기 공모전 우수상 ㅣ 은평구 북한산힐스테이트1차 아파트

등록 : 2020-12-10 15:38 수정 : 2020-12-11 15:59

크게 작게

코로나19로 서먹해진 분위기 바꾸려

주민 재능기부 ‘발코니 음악회’ 열어

감사와 응원의 손편지·꽃 주고받고

사연 담은 대형 펼침막, 단지에 걸어

이웃과 소통하며 코로나 블루 치유


2014년 주민 나서 작은도서관 살려


재능기부로 프로그램, 동아리 운영

아파트 입대위 문제도 함께 풀어내

공동체 활성화 지원 사업 연계 행사로

정원 가꾸기, 동아리 배움터 등 활동

은평구 북한산힐스테이트1차 아파트는 소통 공간 ‘솔숲작은도서관’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봉사해왔고, 그간 아파트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 행사도 이어오고 있다. 7월 단지 정원 가꾸기 활동으로 종지꽃 분갈이를 하는 주민 봉사자들.

감염병의 공포가 삶의 터전을 엄습해오던 지난여름, 불광동 북한산 기슭에 자리 잡은 우리 아파트에 난데없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 중앙 광장에서 드문드문 선 사람들 앞에 다소 긴장된 표정의 주민들이 기타, 피아노, 색소폰 등을 들고 마이크 앞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입주민들은 베란다에 나와 광장을 내려다보며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보듬고 연주를 감상했다.


갑작스러운 비대면 상황, 공동체 활동에 큰 도전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눈인사조차 부담스럽던 시기, 아파트 몇몇 주민이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간 아파트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민 간에 행사가 이어져오던 터였고 마을의 소통 공간이 된 솔숲작은도서관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용히 봉사해왔다. 바쁜 일상에 어렵게 시간을 내 봉사하고 공동체 꾸리기에 힘을 보태오고 있었지만, 올해 갑자기 맞이한 비대면 상황은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와 솔숲작은도서관 주민봉사단의 이런 마음에 은평구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힘을 보탰다. ‘아파트 발코니에서 즐길 수 있는 음악회를 열어보는 건 어떨까’ ‘이참에 손편지를 이용해 주민들 간 소통을 이끌어보는 건 어때?’ 등 생각이 모였고, 그렇게 음악회는 기획됐다.

여름 발코니 음악회에 이어 지난 10월 열린 찾아가는 음악회 모습.

재능기부 음악회에 손편지 곁들여 소통 끌어내

처음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행사 취지를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안내문을 엘리베이터에 붙이면서도, ‘선뜻 음악회에 나서겠다는 사람이 있을까?’ ‘누가 편지 쓰기에 응모해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모든 것은 기우였다. 갑자기 닥친 팬데믹 공포로 주민들은 이런 소통에 목말랐던 모양이다.

아파트 주민들의 코로나 극복과 이웃 간에 말하지 못했던 감사 사연은 온라인(구글폼) 공간에 소복이 쌓여갔다. 편지에 곁들여 전달할 꽃 한 송이를 마련하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오자, 이왕이면 코로나19로 판로가 막혀 어려움을 겪는 농가를 돕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운영진은 전남 강진에 있는 수국 농가와 연계해 수국 꽃다발을 마련했다. 사연과 관련된 이웃에게 사연을 쓴 주민이 편지와 꽃을 직접 전했다.

음악회 무대에 서보고 싶다고 신청한 첫 주민은 뜻밖에도 25살의 대학생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든 첫 신청 전화에서부터 다양한 주민들의 참여 신청이 이어졌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해보겠다는 초등학생 형제, 아파트 노인 노래 교실 어르신들의 아름다운 중창, 색소폰 연주가 취미인 어르신 등 주민 참여와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다.

발코니 음악회는 사회적 거리 두기 원칙을 지키며, 중앙 광장에 띄엄띄엄 놓인 의자에 앉아 즐기거나 각자 집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고 즐겼다. 자발적 재능기부자들의 음악을 들으며, 이웃 간의 사연도 소개되는 소통의 시간이 이어졌다. 행사가 끝난 뒤 모인 사연들은 대형 펼침막으로 만들어져 아파트 단지에 걸리고 엘리베이터 게시판에도 한동안 게시됐다. 입주민들은 단지를 오가며 훈훈한 이야기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2015년 아파트 관리업무 중단 위기도 함께 넘겨 우리 아파트에는 주민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솔숲작은도서관이 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분들이 재능기부 수업을 해주면서 주민들이 참새 방앗간처럼 찾아 동아리 모임을 하기도 한다. 이 공간은 2014년까지는 창고처럼 방치됐다.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한 명씩 모이기 시작하면서 기증받은 책과 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작은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다음해 우연한 기회에 서울시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사업에 참여하면서 ‘문고에서 꽃피는 마을공동체’라는 주제로 더 많은 주민 봉사자가 참여했다. 인근 지역 주민에게도 개방해 다양한 문화 수업을 이어오고 있다.

솔숲작은도서관을 중심으로 마을 소통의 움직임이 이어져오던 중에 아파트가 한 차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15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내부 문제로 해체되며, 3개월 동안 경비원과 환경미화원, 관리사무소 직원의 급여가 집행되지 못했다. 아파트 관리업무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내기 위해, 주민들에게 이 상황이 공유되도록 솔숲작은도서관 활동 주민들이 직접 힘을 모았다. 주민들은 당시 아파트의 유일한 주민 커뮤니티 공간인 솔숲작은도서관에 모여 603가구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단체 카톡방을 만들었다. 주민 절반 이상이 참여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변호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주민들이 나섰다. 이들의 노력으로 차츰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마을 행사가 이어져 이웃끼리 어울릴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마련됐다. 아파트 광장에서 인근 지역 고등학교 오케스트라의 봉사로 ‘한여름밤의 음악회’가 열렸다. 은평구립도서관 도움으로 영화제도 열었다. 풍선파티, 물놀이, 장터 등 소소한 행사도 곁들여졌다. 녹색장터는 꾸준히 이어오는 행사다. 한 번은 아파트 노인정의 김혜원 회장이 아무 말 없이 쌀 한 가마니로 절편을 한가득 만들어 왔다. 자발적으로 궂은일에 나서주는 주민 봉사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덕분에 참여 주민들은 삭막한 아파트에 화합과 공감의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긍지를 느꼈다.

7월 단지 정원 가꾸기 활동으로 종지꽃 분갈이를 하는 주민 봉사자들.

팬데믹 속 소소한 일상의 행복 경험할 수 있어 뜻깊어

올해는 서울시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힐링~동아리 배움터’ ‘힐링~정원 가꾸기’를 하고 있다. 동아리 배움터에서는 문화생활을 통한 주민 소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이라 10명 이하의 소규모 동아리 활동으로 진행하며 난타, 은평구 지역의 미래유산 역사 강의, 독서 모임, 시니어 노래 교실 등이 운영되고 있다.

정원 가꾸기는 단독주택에서 정원을 가꿔본 경험이 있는 주민과 봉사를 자원한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한다. 이들은 6월부터 토요일마다 오전 8~10시에 모여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휑한 곳을 찾아 맥문동과 종지꽃을 심었다. 아이들도 나와 풀 뽑기를 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꽃과 나무 이름을 알아가며 정감 있는 이웃 소통의 장을 만들어간다.

솔숲작은도서관에서 중국어 재능기부를 하는 주민 이미해씨는 “중국에서 오래 생활하고 여기에 정착했는데, 솔숲과의 만남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중국어 재능기부를 시작으로 정겨운 주민들과 만나게 되었고 솔숲 봉사를 계기로 아파트 행사에도 참여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2020년은 우리 아파트 주민들에게 뜻깊은 한 해였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모두가 힘들었지만, 마을에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파트지만 사람 사는 향기가 나는 곳으로 거듭나는 마을을 느끼면서, 주민들은 이 겨울을 버티고 새봄에 피어날 화합의 꽃을 또 기다리고 있다.

8월 단지 안 솔숲작은도서관에서 열린 은평의 문화유산 알기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


“공동체 활동, 한번 해보면 자신감 붙어”

인터뷰 | 정재은 전 솔숲작은도서관 총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로 서먹했던 주민들이 발코니 음악회에서 사연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눴던 게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다.”

4일 <서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재은 솔숲작은도서관 전 총무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4월 주민 참여로 발코니 음악회가 열린 뒤 “아파트에서 상상할 수 없는 문화다. 이웃들이 좋아서 감동이고 따뜻함을 느꼈다” 등 120여 명이 모인 주민 단체 카톡방에는 30여 개의 ‘뜨거운’ 소감이 올라왔단다. 그는 “주민들이 (공동체 활동을) 해보니, 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해야지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정씨는 2013년 이곳으로 이사 왔다. 그때 초등학생이던 아이는 이제 고등학생이 됐다. 이사 첫해 아파트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2008년 입주 때 하자 보수 문제 등으로 시작된 입주자대표회의 동 대표 간의 갈등이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주민 커뮤니티 공간도 거의 방치돼 있었다.

그와 몇몇 이웃이 잠자고 있는 지하 주차장의 작은도서관을 다시 살려 이용하자고 봉사에 나섰다. 책을 기증받고 관리하면서, 재능 기부 동아리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중국어 교실, 노래 교실 등이 열렸다. 주민 모임이 활성화하면서 한때 단체 카톡방엔 300여 명이 모였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갈등을 푸는 데도 역할을 했다.

이런 과정에서 공동체 활동이 시작됐고 7년 동안 이어져왔다. 정씨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봉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한번 해보고 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은 것도 한몫했다”고 덧붙였다. 현재는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사무소, 솔숲작은도서관 세 곳이 손잡고 공동체 활성화에 함께하고 있다.

앞으로 솔숲작은도서관 활동의 변화도 예상된다. 초창기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주민 몇몇이 이사를 하거나 개인 사정으로 활동이 뜸해졌다. 지금은 세대교체를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현장실사에 나선 한국사회주택협회의 김준호·박성훈 회원은 “2014년부터 활발한 활동으로 아파트 주민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며 노하우가 쌓였고, (공동체 활동을 이어갈) 인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고 보고서에 썼다. 공모전 상금 사용에 대해서 정씨는 “주민 단체 카톡방에서 의견을 모아 정할 예정”이라며 아파트 커뮤니티 공간 리모델링과 화장실 설치 등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씨는 지난해까지 솔숲작은도서관 총무를 맡았다. 그는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자신도 성장했다고 한다. 그사이 퍼실리테이터(진행 촉진자) 교육을 받고 3년 정도 활동했다. 올해부터는 동 자치지원관으로 취업했다. 그는 “앞으로도 함께 사는 따뜻한 아파트 만들기를 위해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며, 참여 주민들이 역량을 키워가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난 7월 솔숲작은도서관에서 신간 서적 분류와 목록 정리를 하는 주민 봉사자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