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화폐 모아, 이웃의 재능·따뜻한 정을 가치로 인정

행복둥지 이야기 공모전 수상 후보작 ② 마포구 ‘마포공동체경제모아’

등록 : 2019-11-28 16:13 수정 : 2019-11-2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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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커뮤니티 카페 폐업 위기 계기

주민·활동가, 지역화폐 ‘모아’ 만들어

화폐 발행비용·관리비용 많이 들지만

‘모아’를 꺼내면 ‘우린 공동체’ 깨달아


참여가게 200곳·사용자 100여명 늘고

5억6천만 사용…1천만원 수수료 절약

총액 일정비율 공동체 기금으로 적립마을 대안학교·공유트럭 살리기 지원


21일 오후 마포구 망원시장 골목 ‘카페M’ 앞에서 마포공동체경제모아의 윤성일 대표(맨 오른쪽)와 주민, 활동가들이 공동체화폐 ‘모아’를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마포구 망원시장 골목에 ‘카페M’이 있다. 동네 사람들이 시장에서 산 음식을 펼쳐놓고 차와 함께 먹는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남의 영업장에서 갖고 온 음식을 펴놓고 먹다니! 정이 통하는 동네 사랑방이라 가능하다.

지금은 찾는 사람도 많고 제법 안정적으로 운영되지만, 처음에는 이곳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의 소식과 정보가 오가는 커뮤니티 카페를 열었으나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운영이 힘들었다. 카페M과 같이 좋은 공간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다른 마을 협동조합이나 좋은 동네 가게들도 많이 어렵다는데, 경기 탓만 하지 말고 우리 힘으로 그들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동네에 애정이 많은 여러 주민과 활동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만들어낸 것이 바로 ‘동네 돈’이었다. ‘우리 동네에서만 쓰이는 특별한 돈을 만들어보자. 카페M에도 찾아가고 마을의 좋은 가게들도 찾아가고 우리 마을에서만 돌고 도는 돈이 있다면 좋겠다. 마을 사람임을 서로 알아보고 서로 응원하는 징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역경제를 우리 힘으로 만들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마포공동체화폐 ‘모아’가 벌써 4년째 이어지고 있다.

모아를 받는 공동체가게는 망원시장을 포함해 이제 거의 200곳이 되었다. 모아를 고정적으로 쓰는 사람도 100명쯤이다. 울림두레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애용하며 안전한 먹거리를 챙기는 주부들도 있고, 주민이 만든 협동조합 병원 무지개의원의 조합원들도 있고, 마을에서 살아가는 재미를 아는 성미산마을 사람들도 있다.

요즘은 도시에 살면서 동네에서 누굴 알고 지내기 어렵고 마을이라는 개념도 희미해졌다. 하지만 모아를 쓰는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돈이라는 수단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게에 모아를 내밀면,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동네 사람이구나’ ‘우리 단골이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더 잘해준다. 모아를 받는 가게라는 표시를 보면, ‘여기는 마을과 공동체에 관심을 가진 따뜻하고 믿을 만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모아라는 돈은 사단법인 마포공동체경제모아(법인 모아)에서 발행한다. 돈을 찍는 일을 맡은 법인 모아는 정작 이 일로 돈을 벌지는 못한다. 오히려 발행비용, 관리비용으로 들어가는 돈이 훨씬 많다. 그동안 서울시와 마포구의 공모와 지역단체 기금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마을 사람들 후원과 응원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동네의 많은 사람과 재미있는 활동도 함께 할 수 있었다.

4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재미있었던 일 가운데 하나가 동네의 환경운동모임 ‘알맹’과 지난해 가을에 펼친 비닐봉지 안 쓰는 망원시장 만들기 캠페인이다. 장바구니를 이용하고 비닐 포장 없이 먹을 만큼만 담아가는 자기 용기 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인센티브로 100모아(100원 상당)짜리 ‘동전 모아’를 줬다.

동전 모아는 평소 재활용이 잘 안 되는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아 압착해 동전 형태로 찍어 만들었다. 워크숍을 열어 주민들이 모아 온 플라스틱 병뚜껑을 기계에 넣어 알록달록 귀여운 자기 동전 만들기 체험행사도 했다. 동네 아이들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동전 모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며 환경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하게 되었다. 장바구니를 챙겨 들고 지갑에서 ‘모아’를 꺼내는 우리가 지구와 마을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 함께하는 공동체임을 자연스레 깨닫는 순간이었다.

모아를 사용하면 기금도 모인다. 공동체가게에서는 받은 모아를 현금으로 바꿀 때 총액의 일정 비율을 ‘공동체기금’으로 적립한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일부러 동네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마을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기금을 쓸 곳은 ‘공동체기금 결정대회’를 열어 정한다. 첫 번째로 2017년 겨울 성미산학교에서 한 ‘청소년 기본소득’ 실험에 100만원을 지원했다. 성미산학교는 마을 아이들이 다니는 초중고 과정 대안학교다. 아이들은 경쟁이 가득한 이 사회에서 함께 돕고 함께 사는 대안적인 방법을 고민한다. 기본소득을 통해 삶이 어떻게 변하고 무엇이 나아질 수 있는지 자신들 눈으로 보고 싶어 했다. 이 기특한 실험에 모아가 함께하며 기금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기본소득으로 지역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2018년 1월엔 공유트럭 ‘마포희망트럭’이 굴러가도록 지원도 했다. 마포희망트럭은 벌써 10년 차가 된 꽤 유서 깊은 동네 공유재다. ‘우리 집에 아이들이 다 커서 책상이 남는데 다른 사람에게 유용하게 쓰이면 좋겠다’ 등 나눔이 자주, 쉽게 이뤄질 수 있게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 해 1t 트럭을 한 대 장만했다. 이 희망트럭이 10년 동안 동네 사람들이 나눔을 실천하게 하는 쏠쏠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오래되다 보니 손볼 일도 잦고 보험료며 유지비용도 밀린 게 만만치 않았다. 인제 그만 떠나보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아직은 팔팔한 ‘이 친구’와 좀더 함께 있고 싶었다. 더구나 앞으로 혼자 사는 사람, 작은 이삿짐 등이 많아져 주민들에게 더욱 쓸모 있는 트럭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모아를 쓰는 사람들 힘으로 희망트럭을 살려냈다.

모아를 쓰면서 섬처럼 흩어져 자기 장사하는 데 바빴던 200개의 가게가 모아로 이어지고, 함께 사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지난 4년간 5억6천만원가량의 모아가 사용되었다. 신용카드 수수료도 1천만원 이상 아낄 수 있었다. 이런 이익이 고스란히 우리 자신에게 돌아왔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간의 수많은 에피소드를 뒤로하고, 이제 모아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려 한다. 모아라는 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종이돈 형태의 모아가 핸드폰으로 쏙 들어가는 작업을 시작했다. 모바일 앱으로 모아를 사용하면 손으로 빳빳하게 만져지고 지갑에서 쓱 빼서 내미는 정은 좀 덜해지겠지만, 그만큼 편리해지고 더 많은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기 쉬워질 거다.

결제수단 역할뿐 아니라 나눔의 플랫폼을 열어 돌고 도는 ‘동네 돈’으로 더 쉽게 다가가려 한다. 자신이 가진 물건이나 재능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그 가치는 모아라는 돈으로 인정받고, 그 돈은 또 다른 가게와 동네 사람들에게 쓰인다. 모아가 더 많은 사람이 지구와 마을과 함께 사는 방법을 실천하고 그 속에서 정을 느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작은 매개가 되기를 기대한다. “마포 주민이라면 누구나 ‘모아인(人)’이 될 수 있는 우리 마을, 멋지지요?”


공동체가게 가족 나들이 재미 ‘쏠쏠’

인터뷰 | ‘모아’ 이용자 김정은씨

마포구 신수동 주민 김정은(39)씨는 남편, 7살짜리 아이와 망원동 가족 나들이에 나설 때마다 마포공동체화폐 ‘모아’를 챙긴다. 망원시장에서 장을 볼 때도, 서점에서 아이 책이나 학용품을 살 때도 꼭 모아를 사용한다. 식당에서는 물론 연극·영화(성산동 마을극장) 관람료로, 병원(마포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진료비로도 쓸 수 있다. “공동체가게가 점점 늘면서 요즘은 가게 목록을 보고 골라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김씨는 말한다. 중부여성발전센터 강좌, 마포도서관 구내식당에서도 쓸 수 있게 되었단다.

김씨는 망원동에서 15년 살다 2015년 신수동으로 이사 왔다. 동네 식당에서 모아를 알게 됐다. 신수동에서 거의 유일한 공동체가게였다. 평소 공동체 활동에 관심이 많은 남편이 적극적으로 하자고 해 모아를 사용하는 약정회원으로 가입했다. 당시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지역 문화공간 카페를 모아의 공동체가게로 신청했다. “처음엔 투표하러 갈 때처럼 의무감으로 시작했는데, 요즘은 보너스 받는 느낌으로 모아를 재밌게 쓰고 있다”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 가족은 공과금 등 고정비를 뺀 생활비의 30%가량을 모아로 쓴다. 남편이 카페를 정리하기 전엔 손님에게서 받은 모아도 현금으로 바꾸지 않고 다시 사용했다. 모아를 쓰면서 가장 좋은 점으로 사용 가능한 공동체가게의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꼽았다. 김씨는 “낯설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는 사장님 미소에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했다.

2018년 10월 마포공동체경제모아와 동네 환경운동모임 ‘알맹’이 함께 펼친 비닐봉지 안 쓰는 망원시장 만들기캠페인에서 플라스틱 병뚜껑을 재활용해 ‘동전 모아’를 만드는 체험행사를 했다. 마포공동체경제모아 제공

아쉬운 점도 있다. 아직은 모아를 쓸 수 있는 지역이 망원동, 성산동 일부로 매우 제한적이다. 신수동 이웃들에게 모아를 소개하고 사용을 권하기도 하지만 실제 가입으로 잘 이어지지 않았다. 모아를 잘 모르는 직원이 받지 않으려 하거나 공동체가게로 등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식당에서 꺼릴 때도 가끔 있다.

김씨는 공동체화폐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서 지난 8월 (사)마포공동체경제모아의 생활모아연구원 모집에 지원했다. 그를 포함해 마포 주민 17명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모아 정보를 찾고, 사용자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등 개선점을 찾아가는 활동을 연말까지 한다. 더불어 각자 주제를 정해 보고서를 쓰고 연말에 보고회를 연다. 김씨는 ‘사용자를 어떻게 넓힐 것인가’라는 확장성과 홍보를 주제로 잡고 고민하고 있다. 특히 공동체화폐의 가치에 대해선 공감하는데 가입하지 않는 이유도 정리해보려 한다.

내년 봄부터 모아 사용자에게 주는 인센티브가 5%에서 3%로 낮아진다. 공동체가게가 내는 운영기금은 (모아로 받은 총금액의) 5% 이내 자율에서 3% 의무로 바뀐다. 인센티브 재원 확보 문제로 그간 월 모아 발행액은 2천만원으로 제한적이었는데, 계획대로 잘 추진되면 외부 지원 없이 자립 기반을 갖춰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김씨는 “대부분의 사용자가 공동체 관계를 넓혀가는 데 더 의미를 둬 인센티브 축소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씨는 모아를 ‘동네’라고 표현한다. 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옹산에서처럼 이웃이 있는 친근한 정서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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