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함께 도서관을 만든 뒤 ‘가족’이 되었다

행복둥지 이야기 공모전 수상 후보작 ⑥ 강동구 강일동 SH강일리버파크 11단지 작은도서관 ‘행복책방’

등록 : 2019-11-28 16:20 수정 : 2019-11-2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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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던 청년들

‘공동 밥상 프로그램’으로 처음 만난 뒤

‘2년 동안 텅 비어 있던 공간’ 변화 모색

“도서관 만들어 공동체 형성” 마음 모아


SH, 책과 6개월간 지원금 보태고

청년들, 퇴근 뒤 직접 톱질하며 꾸며

개관 뒤 수제 맥주 함께 만들어 먹으며


‘우리는 새로운 가족’ 매일매일 깨달아

행복책방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위 왼쪽부터 박혜은·한만형(자원봉사), 박정한(행복책방 대표), 김연우·김연태·이태연·강수지(자원봉사), 아래 테이블 왼쪽부터 이지은(행복책방 부대표), 이승용(총무), 이지은(자원봉사), 윤재선(행복책방 관장).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강동구 강일리버파크 11단지는 청년 주거 복지정책 중 하나인 ‘행복주택’이 처음 시행된 곳 중 한 곳이다. 사회 초년생인 우리는 직장을 따라 이곳에 입주하게 되었고 “많은 청년이 모여 살면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2년간 거주해온 현실은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기에 바쁜 나머지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그렇게 2년이 지나 또다시 봄이 왔고, 2018년 4월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엘리베이터에 붙은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밥상을 차려드립니다.”

사회적기업 희망제작소에서 진행한 밥상을 차려준다는 단순한 이야기에 여러 청년이 모이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만난 우리는 3회간 진행된 이 모임을 단기 모임에서 끝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지속적인 모임을 유지할 수 있겠냐는 고민을 하였고, ‘작은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며 이를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우리는 ‘작은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모였다. 우리 아파트 시공사가 공간은 만들었지만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2년간 텅 빈 곳이었던 이곳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로 점차 온기가 가득한 애정이 넘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이 공간, ‘작은도서관’은 따뜻하고 행복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우리의 마음을 담아 2019년 1월 시범운영을 거쳐 3월 말 ‘행복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문을 열었다.

두근거리는 시작! 도서관 개관 준비

처음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2018년 5월에 개관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했지만, 청년을 위한 도서관에 대한 선례가 부족해 협의를 지속해야 했다. 마침내 SH 도서관지원 담당자의 여러 지원으로 2018년 10월 도서관 개관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 10명이었던 우리는 불확실 속에 함께하는 사람이 6명으로 줄어들었지만, 공간이 완성되면 더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도서관 개관을 준비했다.

SH공사의 책과 6개월에 걸친 조금의 초기 지원금이 있긴 했지만, 초기 형성에는 큰 노력이 필요했다. 봉사자들은 퇴근 뒤 저녁에 틈틈이 모여 도서 라벨을 붙이고 공간을 꾸미는 등 그 누구의 요청이 아닌 자발적인 애정을 담아서 도서관 개관 작업을 했다. 퇴거한 입주민이 남기고 간 제법 쓸 만한 테이블이 생기면 도서관으로 옮기고 공간을 꾸미기 위한 시트지 작업 등 손수 자르고 붙이는 시공을 하며 도서관은 개관식을 맞이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이 일의 중심에는 박정한 행복책방 대표가 있다. 우리와 같은 사회 초년생 직장인인 그는 퇴근하면 도서관에서 손수 톱질하고, 전동 드릴로 책장 등을 설치하고 전기 배선을 하며 정성을 다했다. 땀 흘리며 일하는 그에게 물었다.

“이 도서관이 대표님의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가 대답한다.

“지금은 힘이 들지만 함께 꾸미며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 또한 즐겁고, 완성된 뒤 이 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 여러 가지 할 것을 생각하니 이 또한 즐겁고 기대되네요.”

이곳에 입주한 청년은 최대 6년까지만 거주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열정은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그렇게 1년의 준비를 거쳐 지난 3월 말 정식 개관을 하였다.

청년 이웃에게 배우는 문화 클래스

여기는 300여 가구의 청년이 모여 사는 ‘행복주택’이다. 다른 공동체와는 다른 우리만의 특성에 주목하고 싶었다. 우리는 어쩌면 한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고 서로 알려주며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 클래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함께하는 우리 자원봉사자들 혹은 그 지인들이 여러 문화 강좌를 진행하고 홍보하여 단지 내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한 가지 프로그램을 소개해보자.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은 수제 맥주를 만드는 취미가 있다. 그는 맥주의 역사부터 수제 맥주 제조 실습, 판매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정성껏 준비한 내용으로 강의했다. 결과는? 수제 맥주 제조라는 새로운 문화에 많은 청년 입주민이 뜨거운 호응을 보여줬다. 프로그램도 즐거웠지만 제조한 뒤 다 함께 맛보는 맥주라 더욱더 꿀맛이었으리라.

이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에는 ‘행복주택’에 거주하는 노년층도 함께했는데, 수어로 노래를 배우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어르신은 평소 수어에 관심이 많았다며 청년들이 모르는 퀴즈를 맞히는 등 적극적으로 임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30대에도 밤을 새운다. 보드게임을 하며

기존 도서관의 틀에서 벗어나 퇴근 뒤 저녁 시간에 운영하는 행복책방은 주민들이 다채롭게 문화 공간, 힐링 공간, 소통 공간을 비전으로 삼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독서 모임, 영화 상영, 보드게임 등 정기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중 보드게임은 게임이라는 흥미 요소를 넘어 주민 간에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게 했다.

한번은 ‘달무티’라는 보드게임에 너무 즐겁게 참여한 나머지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밤을 새운 적은 있어도 30대 직장인이 된 지금 이웃들과 밤샘이라니!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이 생긴 것이다. 보드게임을 잘하는 도서관 대표는 그날의 전설로 ‘달무티’라는 별명이 생겼다.

소중한 인연을 만나다

<심야식당>이라는 책 또는 영화를 보면 야간에 운영하는 식당을 중심으로 여러 사연을 지닌 손님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도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이다. 앞으로 태어날 아기의 태교를 위해 동화책을 빌리러 오는 아빠,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밤늦게 오는 학생, 철학책이 재미있어서 주로 빌려 가는 어르신…. 근처 놀이터에서 놀다가 유리문 너머로 개관식 때 쓰인 알록달록한 풍선을 보고 이끌려 들어온 꼬마 손님에게 풍선을 선물로 주었더니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은 적도 있었다.

작가 한 분은 새로 제작할 도서의 영문 번역이 필요하던 중 이곳에서 영어에 능통한 주민과 협력하여 성공적으로 책을 출판하기도 했으며, 교사는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분을 만나 서로가 모르는 정보를 교환하는 등 만남의 장이 되어 각자의 삶에 시너지 효과를 발현했다.

주인공은 나야 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한 사람의 생일을 챙기는 걸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내 생일을 기억해준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다 같이 모여 케이크 촛불을 불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건넨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일상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닐까? 매월 행복책방을 운영하는 봉사자들의 생일 파티를 열어 서로를 축하한다. 우리는 서로를 축하하고 서로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끼며, ‘행복주택’은 혼자 사는 차가운 아파트가 아닌 따뜻한 가족 같은 우리가 함께 사는 곳으로 바뀐다.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입주민의 30% 이상이 도서관 회원으로 참여하고 이용하는 공간이 된 ‘행복책방’은 작은도서관을 넘어, 새로운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이 모이고 쉬며 서로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다.


도서관이자 공동식탁…단지 입주자 30% 가까이 회원 등록

인터뷰 | 박정한 행복책방 대표

“며칠 전 생일을 맞았는데 행복책방 사람들이 생일 파티를 해줘 너무 좋았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이런 걸 거예요.”

박정한(31) 행복책방 대표는 올 1월 운영에 들어간 아파트 입주 청년들의 커뮤니티 공간인 행복책방의 설립 목표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그 목표가 얼추 달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인 ‘행복주택’ 강일리버파크 11단지에 2016년 1월 입주한 박 대표는 “회사 일로 일주일간 출장 갔다가 돌아왔을 때도 도서관 사람들이 반겨주는 모습이 엄청 좋다”고 말했다.

본가 집이 지방인데다 근무하는 회사가 아파트 바로 앞이어서 행복주택을 처음 분양했을 때 입주해 이제 4년째 생활하고 있다. 박씨가 내는 금액은 9평 크기에 월 12만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운영 10개월 만에 행복책방은 입주 청년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1년 전만 해도 을씨년스럽게 방치된 공간에서 11단지 330가구 가운데 30%에 육박하는 가구가 회원으로 등록해 이용 중이다. 에스에이치(SH)공사 기증 도서 1천 권, 지원금으로 산 700권 등 총 2300권은 163㎡(약 49평) 공간의 책꽂이에 빼곡히 꽂혀 있다. 강동구청의 지원을 받아 청년층이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을 매주 구입한다.

행복책방의 칵테일 만들기 수업 장면. 행복책방 제공

이뿐만 아니라 청년 주민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보드게임 개최, 수제 맥주 만들기, 가죽 공방, 유튜브 제작 강의, 금요 영화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혼자서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 주거민의 특성상 도서관이 같이 밥을 해 먹는 ‘공동식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박정한 대표와 부대표, 총무 등 대표진 3명을 비롯해 20대 말~30대 초반 남녀로 구성된 자원봉사자 14명 등이 서로 내 일 네 일 가리지 않고 작은도서관 운영에 앞장선다. 박 대표는 “한 달에 최소 프로그램 두 개를 운영한다”며 “운영진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는 단톡방을 만들어서 밥 먹는 프로그램을 자주 ‘번개’ 쳐서 각자 반찬을 가져와 함께 나눠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처음 작은도서관을 준비할 당시 본인이 손을 들고 대표를 맡았다. 대학 때 벽화 그리기 자원봉사 활동을 비롯해 회사에서 하는 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박씨는 “따뜻한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작용한 것 같다”고 작은도서관 일에 적극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운영진 외에도 윤재선씨가 지난해 10월부터 강동구청의 인력지원 사업으로 행복책방의 관장 일을 맡아 도서관 운영 전반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내년부터 인력지원이 어떻게 될지 방침을 정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박 대표는 걱정했다.

이번 행복책방 현장 실사를 맡은 한국사회주택협회 소속 이강진·임소라씨도 실사보고서에서 “행복주택은 입주자 입주 기간이 총 6년이라 애정을 쏟았던 사람들이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예상된다”며 “지금 사람들이 떠나도 공간이 유지될 수 있는 운영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행복책방 사람들은 이번 공모사업 상금으로 도서관 한편에 싱크대를 설치해 따뜻한 밥상을 차리고 싶다는 ‘소확행’을 꿈꾼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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