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대표와 소송 갈등 딛고, 소통·참여 공동체로 거듭나

행복둥지 이야기 공모전 수상 후보작 ③ 강동구 천호2동 ‘다성시티아파트’

등록 : 2019-11-28 16:15 수정 : 2019-11-2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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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혐의 전임 대표와 3년 소송 뒤

승소해 1억2천 배상 판결 받았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내편 네편 갈리고

아파트 공동체는 삭막하게 파괴돼


서울시·강동구 지원사업 적극 응모

사업 선정되며 조금씩 자신감 얻고

입주 뒤 처음으로 ‘마을 축제’도 열어


‘주민 80% 총회 참석’ 등 공동체 회복

강동구 천호동 다성시티아파트 주민들이 22일 아파트 앞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맨 오른쪽이 강병국 주민대표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강동구 천호동 다성시티아파트는 2003년에 입주한 49가구 작은 아파트이다. 원래 28가구 강동빌라에 살던 주민들이 재건축한 아파트로, 재건축 조합장이던 1대 주민대표와 2대 주민대표의 아파트 관리비 횡령 사건으로 오랫동안 주민들은 반목과 갈등을 겪어야 했고 법정 소송까지 하게 됐다. 회복하기 힘들 수도 있었던 상처를 이겨내고 주민들이 화합하기까지는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혹시 우리와 같은 일을 겪을지도 모르는 주민공동체에 도움을 주고자 우리의 경험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2013년 9월, 전임 대표를 지지하는 주민들과 전임 대표들의 비리를 밝혀내려는 주민들의 거친 싸움이 벌어졌다. 이를 말리려고 하는 차에 중립적인 사람을 대표로 뽑자는 주장에 얼떨결에 대표가 됐다. 주민대표가 되고 보니, 관리비의 잔고가 거의 없었고 장기수선 충당금까지 바닥나 있었다. 게다가 전임 대표들은 공용 통장이 아닌 개인 명의의 통장으로 관리비를 받아 한 번도 통장 열람이나 감사를 받지 않았다.

주민들의 횡령에 대한 민원과 허술한 관리비 명세를 확인하고서 전임 대표들의 비리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조사 결과, 횡령액이 10년에 걸쳐서 억대를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아파트 입주 이래 처음으로 비상주민총회를 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귀찮아하던 주민들을 설득해 매우 어렵게 주민총회를 했다. 이 자리에서 전임 주민대표들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전임 대표는 통장 사본 제출을 거부하고 사과 대신 막말을 쏟아내는 등 주민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해 많은 주민이 상처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주민들은 소송인단을 꾸려 민형사 소송을 시작했다.

2014년 3월부터 진행된 소송은 너무도 길고 무척 힘든 길이었다. 변호사를 구하고,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법원을 쫓아다니는 데 정말 많은 시간을 뺏겼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주민들이 서로 편을 나눠 싸우거나 상대방의 험담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소송인단이 전임 대표들의 횡령을 덮고 봐주려고 한다’ ‘지금 주민대표가 쉽게 끝날 수 있는 일을 소송까지 진행해서 주민들을 이간질한다’ ‘소송을 하지만 배상도 못 받고 소송 비용만 날릴 것이다’ 등등 아파트 내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특히 전임 대표들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소송인단 주민들은 협박과 폭언에 시달렸다. 사소한 주차 문제가 큰 시비로 이어지는 등 아파트 공동체는 삭막하게 파괴돼갔다. 주민들 간에 교류나 이웃 간에 신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유언비어와 분열 조작은 주민들을 크게 괴롭혔다.

소송을 진행하는 한편, 제대로 된 주민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주민총회와 외부 회계 감사를 진행했다. 먼저 6월과 11월 일 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전 주민이 참여하는 주민총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또한 2년에 한 번씩 외부 회계사에게 회계 감사를 받도록 했다. 이 두 가지는 지금도 주민 자치를 실현하고 공정하게 운영하기 위한 중심축이 되고 있다.

2017년 3월, 3년을 끌어온 재판이 끝났다. 피해액 중 공소시효가 지난 부분은 배상받지 못했지만, 다행스럽게 1억2천만원 정도를 배상받을 수 있게 됐다.

소송은 끝났지만 아파트 주민들 마음의 상처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분위기는 삭막했다. 그러던 중에 서울시의 공동체 지원사업과 강동구청의 이웃 만들기 사업 등을 알게 됐다. 주민 소통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사업에 적극적으로 응모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컸고 주민들이 서로 어울리기 싫어했다.

하지만 몇 번의 노력 끝에 올해 강동구 공동체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던 지하주차장 캐노피 설치에 지원금을 받게 됐다. 또한 서울시 에너지 공동체 사업과 강동구청의 이웃 만들기 사업에도 선정됐다.

다성시티아파트는 이를 통해 처음으로 주민 소통을 위한 에너지 절약 마을 축제를 열었다. 그간 서먹서먹했던 주민들은 축제를 통해 떡, 전, 어묵 등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처음으로 주위 이웃들까지 초대하는 행사를 열었다. 작은 주민 축제였지만 ‘15년 동안 아파트에 살면서 한 번도 이런 행사를 할 줄은 몰랐다’는 한 할머니 말처럼,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축제였다. 이후에도 주민 단합을 위해 매월 에너지 절약 불 끄기 행사, 반려견 보호자를 위한 모임 ‘개토피아'를 통해 주민들의 화합을 다졌다. 또한 주민들은 에너지 투어 여행도 함께 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아파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은 소송의 상처를 많이 치유하고,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소통하면서 더 좋은 아파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6년간 주민들과 부딪히면서 느낀 것은 ‘특이한 주민은 있어도 나쁜 주민은 없다’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만나보면 주민 한명 한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는 사람이 많았다. 처음에는 ‘번거로운 사업을 왜 하느냐’고 하던 주민들도 막상 사업을 추진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반응도 좋았다.

3년의 소송으로 폐허가 된 공동체를 회복하는 시간은 힘들었지만 그 과정은 소중한 경험이 됐다. 결국 해보는 것, 도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실패도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둘째,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처음 주민총회를 할 때는 과연 모든 주민이 다 모일까 걱정했지만 지금은 주민 80% 이상이 주민총회에 참석해 의사 결정하는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확립됐다. 물론 우리 같은 작은 세대 아파트라서 가능했던 면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메신저, 이메일, 실시간 방송도 가능해서 온라인을 통한 정보 공유나 의사 결정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 결국, 의사 결정 과정에 주민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 기술 등을 도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는 실망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처음에는 한두 명의 주민들로 출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임을 만들었는데 한 명도 안 오더라도 실망할 필요 없다. 모임을 만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대단하고 만족스러운 일이다. 다음에 할 때 두 명이 오고 세 명이 오면 되니까. 그렇게 몇 년 하다 보면 많은 주민이 참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외부 도움이 큰 힘이 됐다. 우리는 서울시와 강동구청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원받은 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주민 공모 사업에 선정된 것만으로도 주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주변을 둘러보면 여러 기관이나 시민단체 등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우리 아파트는 10년간의 횡령으로 인한 소송을 3년간 진행하는 상처가 있었지만, 주민 참여와 소통으로 지금의 아파트를 만들 수 있었다. 마음과 뜻만 모은다면 누구나 어떤 주민공동체도 충분히 상처를 이겨내고 따뜻한 주민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우리 모두 이웃과 함께하는 따뜻한 주민공동체를 만들어보자. 모두 파이팅.


“소규모 아파트 주민 커뮤니티 활성화 경험 나누고 싶어”

인터뷰 | 강병국 주민대표

“3년 동안 소송해 1억2천여만원을 받아냈죠. 전체 횡령 액수는 2억원이 넘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시효가 지났거나 증거 불충분으로 전부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강동구 천호2동 다성시티아파트 강병국(47) 주민대표는 전임 주민대표들이 아파트 관리비를 횡령한 사실을 밝혀내고 소송해 1억2천여만원을 받아냈다. 2002년 아파트 재건축 이후부터 1대와 2대 주민대표가 10여년 동안 관리비를 횡령한 것을 강 대표가 나서서 밝혀낸 것이다. 강 대표는 “아파트 주민대표가 관리비를 횡령한 것을 소송을 통해 받아낸 사례가 아마 서울에서 유일할 것”이라고 했다.

“서로 싸우는 통에 중립적인 사람을 주민대표로 하자는 제안에 덜컥 하게 됐죠.”

강 대표는 2013년 9월, 아파트 관리비 횡령 비리를 두고 1, 2대 주민대표와 주민들이 싸우는 것을 말리다 얼떨결에 주민대표가 됐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서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인 강 대표는 주민대표들의 횡령 사실을 발견하고 그해 11월 주민총회를 소집해 이를 알렸다.

처음에는 믿지 않던 주민들이 장기수선 충당금도 ‘깡통’인 관리비 통장을 공개하자 크게 놀랐다. 이런 상황에 주민 여론이 급격하게 들끓었다. 그러자 당황한 1대 주민대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서더니 오히려 “나는 횡령하지 않았다”며 적반하장의 행태를 보였다. 그래서 2014년 3월 소송을 시작했다.

강 대표는 주민대표를 맡고 나서 경찰서에 5번이나 갔다고 했다. “맞아서 가고, 싸움 말리다 가고, 주민 신고로 갔죠.” 그는 협박과 폭언에도 시달려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너 이×× 밤길 다닐 때 조심해”라고 욕하기도 하고, ‘총 쏴서 죽이겠다’든지 ‘칼로 찌르겠다’는 말을 수시로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2017년, 3년을 끌어온 재판이 끝나 1억2천여만원을 배상받을 수 있게 됐다. 소송은 끝났으나 이전 주민대표와 친분이 있던 주민들과 사이가 서먹해지고 아파트 분위기가 삭막해졌다. 그래서 강 대표는 아파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서울시와 강동구의 주민 지원 사업을 신청해 주민 소통을 위한 에너지 절약 마을 축제를 열었다. 주민들은 서로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동안 서먹했던 마음을 풀었다.

이옥분(67)씨는 아파트 분위기가 확 바뀌어서 매우 좋다고 했다. 그는 “젊고 똑똑하고 열정적인 회장님은 우리 아파트의 보배”라며 “자신도 바쁜데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나서줘서 무척 고맙다”고 했다.

강 대표는 소규모 아파트 주민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주민 자치를 실현하는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작은 규모의 아파트는 대인 관계 쌓기가 수월해 주민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용이하다”고 했다.

다성시티아파트 주민들이 아파트 내에서 친환경 마을을 만들기 위한 에너지 절약 축제를 열었다. 다성시티아피트 주민모임 제공

강 대표는 서울시나 구청에서 하는 지원 사업을 잘 활용하면 밖으로 아파트 이미지를 높일 수 있고, 아파트 주민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앞으로도 에너지 절약 사업, 음식물 쓰레기 자원화 사업 등을 신청해 주민들의 힘을 모아 열심히 해나가야죠.”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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