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서울&] “애국 아니고 내 삶을 채운 소중한 기적”

합계출산율 0.5명 시대, 세 자녀 키우는 위례 엄마들
“고단함 속에서도 일상은 제게 거대한 행복이죠”

등록 : 2026-11-0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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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례에 거주 중인 세 자녀의 엄마들이 서울&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장연주, 이혜민, 전지영, 간지애씨. 정소진씨는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급히 나서는 바람에 사진에 함께하지 못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명대였다. 두 명의 여성이 평생 한 명의 아이를 낳을까 말까 한 초저출생의 시대다.

이 흐름 속에서 ‘세 자녀 이상’ 가구는 그야말로 극적으로 급감했다. 서울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기 100명 중 셋째는 10명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쪼그라들었고, 서울시는 급기야 2023년 5월부터 ‘다둥이’ 지원 기준을 세 자녀에서 두 자녀로 낮췄다.

이제 서울에서 셋 이상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단순한 ‘다자녀’ 가구를 넘어 우리 사회의 낯설고도 진귀한 풍경이 됐다.

서울 한복판의 초등학교마저 2026학년도 ‘신입생 0명’의 충격을 겪거나 폐교 위기에 내몰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홀로 다른 세상인 듯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활기로 가득 찬 동네가 있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2026학년도 서울 공립초등학교 입학생 수 1위는 송파구의 ‘서울위례솔초등학교’로 무려 264명에 이른다. 다수 자치구의 학급이 소멸해 가는 동안 위례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보육과 교육의 최전선’이 됐다.

그렇다면 가장 아이가 많다는 이곳 위례 신도시에서 살아가는 다자녀 가정들의 실제 삶은 어떨까? 위례 지역의 육아 커뮤니티와 학부모들의 입소문을 수소문한 끝에 지난달 29일 세 자녀를 키우는 30~40대 엄마 다섯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서로 연대하고 치열하게 분투하며 자신만의 일상을 단단히 일궈가는 다둥이 엄마들의 얘기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던진다.

벼랑 끝에서 품은 기적, “우리의 삶을 완성하다”

다둥이 부모가 된 이들의 출발점은 저마다 달랐다. 어린 시절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왁자지껄한 울타리를 꿈꿨다는 사연부터, 배우자의 다복한 일곱 남매 환경이 좋아 자연스레 셋을 품게 된 이야기까지. 이들은 국가적 대의명분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채우는 과정에서 세 자녀를 만나게 됐다는 사연을 들려줬다.

특히 난임의 고비를 넘기거나 고위험 임신을 견뎌낸 사연은 다둥이 엄마로서의 삶이 얼마나 절실한 기적인지를 짐작게 했다. 30대 후반, 난임으로 3~4개월씩 병원에 입원하며 몸과 마음이 무척 힘들었다는 전지영씨는 우여곡절 끝에 첫째를 안았고, 마흔둘의 나이에 막내를 낳았다. 전씨는 “친정아버지가 말릴 정도로 늦은 나이였고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남들이 겪지 않은 사선을 넘고 나니 아이의 존재 자체가 거대한 행복이 됐다”고 회상했다.

임신 5개월 차에 병원에 입원해 응급 수술을 받아야 했던 장연주씨의 사연도 숙연함을 자아냈다. 장씨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데 배 속의 아이는 살겠다고 계속 태동을 하더라. 그때 성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여름에 병원에 들어가 겨울이 돼서야 퇴원했지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내게 온 생명 자체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계획대로 딸 둘, 아들 둘을 원했지만 둘째 임신 때 아들·딸 쌍둥이가 한 번에 찾아오며 다둥이 엄마가 된 간지애씨 역시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었지만 서로 성향이 다른 세 아이를 지켜보는 하루하루가 지루할 틈 없이 경이롭다”며 웃었다.

4인 제한과 짠 내 나는 가계부…통계에 가려진 민낯

셋째까지 키우게 된 미담 같은 사연 뒤에는 다자녀 가정이 매일 감당해야 하는 팍팍한 경제적·사회적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아이들 식비와 사교육비는 다자녀 가정이 마주하는 가장 거대한 벽이다.

장연주씨는 “중3 아들이 키가 180㎝인데, 학교 급식으로는 양이 안 차 집에 오면 냉장고부터 연다. 하루에 네 끼, 다섯 끼를 해 먹여도 부족하다”며 성장기 아들 셋을 둔 집의 식비 부담을 토로했다.

식비에 이어 교육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대출을 받아 위례에 집을 마련한 간지애씨의 가계부 역시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사교육비 부담을 덜기 위해 학원 대신 학교 방과후 수업 6개를 꽉 채워 돌리지만, 이마저도 세 아이 몫을 합쳐놓으면 3개월에 2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경우도 있지만, 비싼 주거비를 맨몸으로 감수하며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이들도 있다. 직업군인인 남편을 따라 위례 관사에 살다 이곳의 아이들 키우기 좋은 인프라와 분위기에 매료돼 아예 ‘월세’로 계속 거주 중인 전지영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씨는 “매달 비싼 월세와 교육비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지만,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공공 프로그램과 끈끈한 엄마들의 네트워크를 포기할 수 없었다”며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전출을 갔음에도 기꺼이 주말부부를 감수하며 이곳에 ‘올인’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유행하는 고가의 스마트폰 대신 책과 옷을 동네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물려받아 입힌다는 이혜민씨의 말처럼, ‘짠 내 나는 절약’은 이들의 훈장이자 일상이다.

다둥이 가정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 시스템의 엇박자도 일상을 괴롭힌다. 간지애씨는 “공공시설 박물관이나 호텔을 예약할 때 아이디 하나당 4명까지만 예약이 가능하다보니 늘 불편하다. 아이 셋을 데리고는 일반 택시 탑승도 불가능해 요금이 비싼 콜밴을 부르거나 10년 장롱면허를 꺼내 직접 운전해야만 했다”고 꼬집었다. ‘다둥이 친화 도시’를 외치지만 5인 이상 가구를 염두에 두지 못한 인프라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초등 돌봄의 천국, 고교 진학의 절벽…위례의 명암

엄마들이 위례 신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초등학교 시기까지 누릴 수 있는 풍부한 공공 인프라 덕분이다.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학교 돌봄 교실과 방과후 프로그램은 물론, 구청에서 운영하는 송파런을 통해 한 달 3천원에 바이올린 등 악기를 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은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아이가 학령기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불안감은 커진다. 입학예정자가 넘쳐 초등학교는 교실을 증축해야 할 정도지만, 정작 고등학교 진학 시기가 되면 과밀 학급과 좁은 선택지라는 절벽에 부딪힌다.

서울 송파, 경기도 성남·하남 세 행정구역으로 쪼개져 있는 위례의 특수성은 이 절벽을 더욱 가파르게 만든다. 장연주씨는 “아이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려면 경쟁률이 너무 치열해 3명 중 1명만 붙고 나머지는 원치 않는 먼 학교로 배정받게 된다”고 답답해했다. “초등학교 때까진 살기 좋은 꿈의 도시지만, 고입을 앞두면 이 동네를 떠나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는 엄마들의 토로는 쪼개진 광역 행정의 사각지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아이 셋 키우는 무게 속에서도 나를 찾으며 살아가요”

치열하게 부대끼며 진짜 어른 되어가
‘재지 말고 부딪히라’고 조언하고 싶어


고립을 연대로 바꾼 힘, ‘엄마’를 넘어선 ‘나’의 확장

다자녀 엄마들의 삶이 감동적인 이유는 단순히 헌신하는 ‘희생양’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확장하며 건강한 연대를 이뤄내기 때문이다. 이들은 출산과 육아로 단절될 뻔한 일상을 지역사회와의 적극적인 교류로 돌파해나가고 있었다.

전지영씨는 송파 산모건강증진센터 조리원 동기들과 10년째 이어온 끈끈한 네트워크가 낯선 위례 생활을 버티게 해준 최고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시기 위례로 이사 와 고립감을 느꼈던 이혜민씨는 주민센터 줌바댄스팀에 가입해 한성백제축제에서 대상을 받고, 틈틈이 요양보호사와 보육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며 자신의 능력을 넓혔다고 했다. 간지애씨 역시 홀로 카페에서 뜨개질하다 우연히 지역 자원봉사단에 합류해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동화책 도슨트 무대에 오르며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또한 프리랜서 피아노 강사로 일하는 장연주씨의 일상은 치열함의 절정이다. 관절 건강을 위해 셔플댄스를 배우고, 구립 합창단 소프라노 단원으로 무대에 서며, 밤 12시 아이들이 잠들면 헤드셋을 끼고 새벽 2시까지 전자 피아노를 연습한다. 장씨는 “내가 무너지지 않고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을 묵묵히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아이 셋이라는 무거운 짐 앞에서도 ‘나’를 잃지 않으려는 이들의 악착같은 몸부림은 고스란히 건강한 가정의 뿌리가 되고 있었다.

형제라는 가장 위대한 유산, “재지 말고 부딪혀라”

힘든 만큼 아이들이 주는 행복의 질량은 압도적이다. 다둥이 엄마들은 입을 모아 “형제라는 존재 자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회성 교육이자 평생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정소진씨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딸과 애교 많은 아들이 주는 감동의 포인트가 다 다르다. 셋을 낳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감정의 풍요로움이 있다”고 미소 지었다. 간지애씨 역시 “첫째가 배운 구구단과 한글을 쌍둥이 동생들에게 그대로 전수해줘서 5살 때 한글을 뗐다. 아이들끼리 싸웠다가도 금세 화해하고 뭉치는 걸 보면 절로 사회성이 길러지는 듯하다”고 했다.

다둥이 엄마들이 공통으로 가슴 한편에 품고 있는 아픈 손가락은 다름 아닌 ‘첫째’다. 전지영씨는 “첫째 때 한 실수를 둘째 때 만회하고, 둘째 때의 실수를 셋째 때 바로잡았다. 겉보기엔 첫째라 혜택을 제일 많이 받은 것 같지만, 부족한 엄마의 시행착오를 맨몸으로 다 겪어낸 첫째에게 늘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장연주씨 역시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막내에게 첫째는 무한한 배려를 베풀지만, 정작 아이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견제와 양보가 매일 일어난다”며 “그 치열한 부대낌 속에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스스로 배워가는 과정을 볼 때면 뭉클해진다”고 덧붙였다.

대화의 막바지, 만약 주변에 둘째나 셋째 자녀를 낳을까 말까 주저하는 후배 부모들이 있다면 무슨 얘기를 해줄 것인지 묻는 말에 이들이 내놓은 답변은 묵직하고 단단했다. 전지영씨는 “사교육비가 얼마 들고 집값이 어떻고 하는 사회적 이슈에 얽매여 낳을까 말까 재기만 하면 답이 없다. 일어날지 모를 일에 겁먹지 말고, 본인이 감당할 수 있다는 부모로서의 확신만 있다면 주저하지 말라”고 단언했다. 이혜민씨도 “막상 아이가 생기면 절약하고 해결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게 되면서 엄마도 진짜 어른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정책의 수치로만 다뤄지는 저출생 담론 속에서, 위례에 모인 세 자녀를 키우는 다섯 엄마의 대화는 현실이 얼마나 고단하면서도 동시에 눈부신 기쁨일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또한 이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세상에서 가장 소란하고 찬란한 둥지를 묵묵히 일궈가고 있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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