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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학교 로비, 문화공간으로 바꿨더니 학생들의 보물 됐어요”

등록 : 2021-11-2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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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 암사동 선사고등학교 학생·학부모·교사, 그리고 건축 전문가가 협업해 휑했던 학교 2~4층 로비를 2020년 5월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2층은 ‘놀자’, 3층은 ‘갤러리(전시)’, 4층은 ‘날리지(학습)’ 공간이다. 학생들이 3층 갤러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행복학교 사업’으로 학교 공간 복지 실현하는 강동구

선사고, 외면받던 학생 쉼터 ‘홈베이스’ 지금은 ‘북적’

“홈베이스가 학생들 보물이죠.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이 되면 자리다툼이 치열해요.”

강동구 암사동 선사고등학교는 지난해 5월 학생들 휴식 공간인 ‘홈베이스’를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학교 건물 각층의 로비 공간에 있는 홈베이스는 그동안 시설물이 낡은데다 어둡고 휑해서 학생들에게 외면받았다. 홈베이스 개선팀에 참여했던 3학년 천설화(19)양은 19일 “이전 홈베이스는 탁자가 있긴 했지만 음침한데다 난방도 안 돼 추워서 잘 이용하지 않아 그저 가로질러 가는 넓은 복도에 불과했다”며 “새롭게 바뀐 뒤로는 홈베이스에서 수업도 할 정도로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천양은 “반이 다른 친구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찮아 교실에 가서 떠들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은데, 홈베이스를 바꾼 뒤로 다른 반 친구하고도 같이 쉬면서 대화할 곳이 생겨 너무 좋았다”고 했다.

선사고는 2020년 5월 1억7천여만원을 들여 학교 2·3·4층 로비(홈베이스)를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바꿨다. 앞서 선사고는 학생·학부모·교사를 상대로 문제점과 요구 사항을 조사한 결과 놀이, 문화, 학습이 공존하는 휴식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학생들은 홈베이스를 어두운 조명, 낡은 시설물, 우중충한 색상 때문에 칙칙하고 답답하다고 느꼈죠. 심지어 더럽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많았습니다.” 학교 혁신부 대표를 맡은 정진영 선사고 교사는 “학교는 이전부터 필요한 공간 개선을 논의해왔는데, 그중에서 학생들이 가장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 홈베이스를 선정했다”며 “인식 조사를 해봤더니,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고 공간개선 이유를 설명했다.

선사고등학교 문화 공간 ‘날리지’


선사고는 2019년 11월 학생·학부모·교사 그리고 건축전문가가 함께 참여한 홈베이스 개선팀을 만들어 현장과 도면을 직접 보면서 개선 방향을 잡았다. 학생들은 학년별로 개선팀에 참여해 5주 동안 매주 1~2회씩 모여 다양한 개선 의견을 내고 토론했다. 학생들은 2층은 1학년, 3층은 2학년, 4층은 3학년 반이 있어 층마다 학년별 특성에 맞는 문화 공간을 만들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학생들은 직접 공간을 구상하고 디자인한 기획안을 건축 전문가에게 전달해 구현 가능한 디자인 설계를 만들었다. 마침내 학생·학부모·교사, 그리고 건축 전문가가 협업한 2층 ‘놀자’, 3층 ‘갤러리(전시)’, 4층 ‘날리지(학습)’ 공간이 탄생했다.

맨발로 대화를 나누고 놀이할 수 있는 2층 놀자는 놀이를 의미하는 노란색을 기본색으로 삼았다. 계단형 의자에서 휴식, 대화, 그룹모임, 독서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자작나무로 된 세계지도와 다양한 그림 형태의 디자인으로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창조를 의미하는 주황색이 돋보이는 3층 갤러리는 피아노가 있어 음악을 즐기고 학생들 작품을 전시 할 수 있는 공간이다. 4층 날리지는 3학년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이라서 작은 스터디룸(공부방)과 협업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입시를 대비한 면접 연습도 할 수 있고, 노트북이 있어 자기소개서 등도 작성할 수 있다.

지난해 선사고를 졸업한 노근영(20)씨는 2년 전 수능시험을 치른 뒤 홈베이스 개선팀 활동을 했다. 노씨는 “아무래도 수능 끝나고 티에프를 시작해 3학년 학생이 많이 참여하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얼마 있지 않아 학교를 떠나야 하는 터라 후배들에게 좋은 휴식 공간을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하며 학교 혁신 사례를 접할 기회가 있었던 노씨는 “홈베이스 개선으로 학교 공간 혁신에 대한 사용자 참여를 이미 경험해 쉽게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바꾼 학교 공간, 소통력·창의력 높여요

어둡고 칙칙한 곳, 생동감 도는 곳 변신

2018년부터 구비 50억 들여 53곳 개선

학생 만족도 높아…타 시도 벤치마킹

2019년 선사고등학교 홈베이스 개선팀에 참여했던 3학년 천설화양(왼쪽)과 졸업생 노근영씨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홈베이스 공간을 아이들이 전혀 사용하지 않아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죠. 허브 공간을 만들면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홈베이스를 디자인한 건축가 송상환씨는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공간 구성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면, 현실에서 구현 가능한 부분은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송 건축가는 “고3 학생들이 학교에서 쉴 수 있는 개인 공간이라고 해야 자기 책상밖에 없는데, 4층 로비를 두 다리를 쭉 뻗고 쉴 수 있는 공간이면서 학습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했다”며 “학교에서 학생들이 다리를 뻗고 있는 걸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고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선사고에서는 흔쾌히 수용해 만족한 결과를 얻었다”고 했다.

‘공간이 바뀌면 아이가 바뀐다.’ 강동구행복학교의 슬로건이다. 10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은 게 ‘사각형’의 학교 공간 구조다. 대부분의 학교 시설이 감시·통제하기 편한 구조와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색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의성을 높이는 감수성 있는 교육 환경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이런 학교 공간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창의성을 기르기는 어렵다. 강동구는 이런 학교 공간을 과감하게 소통과 창의력을 높일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다양한 성향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만큼 다양한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근영씨는 “시대가 많이 변했는데도 여전히 학교 공간 프레임은 옛것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며 “좀 더 나은 미래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공간이 변해야 한다”고 했다.

강동구 민선 7기 공약 사업인 행복학교는 구정 핵심 개념인 ‘공간복지’를 학교에 적용한 것이다. 행복학교는 학생과 학부모가 직접 제안하고 전문가의 도움으로 학교 공간을 새롭게 바꾼다. 칙칙한 복도와 로비, 건물뒷마당, 교실이나 독서실과 별 차이 없는 도서관 등 ‘죽어 있는 공간’을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숨 쉬게 한다.

행복학교는 광역자치단체나 교육청에서 시작한 사업이 아니라서 지방자치단체인 강동구가 직접 사업비를 댄다. 대부분 학교가교육청 지원금으로 필요한 부분만 ‘수리’하는데 견줘 강동구는 적극적으로 구비를 들여 아이들이 원하는 학교 공간으로 바꾼다.

구는 행복학교 사업으로 2018년부터 올해까지 50억원을 들여 43개 초·중·고 공간 53곳을 개선했다. 구는 2018년 4개 학교에 미래형 컴퓨터교실과 통학로 등을 개선했고 2019년 17개 학교의 현관·복도, 색채를 바꿨다.

2020년 18개 학교에 스마트 도서관과 놀이숲을 조성했고, 올해는 14개 학교에 자연과 함께 놀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구는 2022년까지 총 60곳의 행복학교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강동구는 선사고 외에도 고덕동 묘곡초등학교의 볼품없었던 복도를 아이들이 독서와 놀이를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고, 강솔초등학교는 텅 비어 있던 건물 뒷마당에 놀이와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한영중학교는 열린 책장을 설치해 채광이 부족했던 도서관에 햇볕이 잘 들어오도록 바꿨다.

행복학교는 부모와 학생들 반응도 좋고, 행복학교 사업을 교육 행정의 본보기로 삼아 경남과 경기도 고양시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매니페스토 우수사례로 ‘지역문화 활성화 분야’ 최우수상, 공공디자인 우수상도 받았다.

김미진 강동구 교육지원과 주무관은 “미래 세대인 아이들의 인격, 사회적 성장을 돕는 것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에 맞춘 공간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글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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