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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독립출판 서적이 가져다준 자신감, 삶의 전환점 됐어요”

등록 : 2021-11-18 15:26 수정 : 2023-07-1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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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독립서점 ‘인덱스’에서 독립출판을 한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엔비에이(NBA) 만년꼴찌 팀 토론토 랩터스 응원기를 담은 <랩터스>를 펴낸 해준 대표(위 사진 왼쪽부터), 자신의 다양한 직업 경험을 다룬 <직업여행자의 밥벌이 다반사>를 펴낸 유진아 대표, ‘꿈 많은 Z세대의 퇴사일기’인 <그럼 이만 퇴사해보겠습니다>를 펴낸 윤채림 대표와 한국외국어대 캠퍼스타운사업단 사업으로 ‘독립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한 ‘독립출판 프로젝트’ 매니저가 각자 출간한 책 등을 들고 밝게 웃고 있다. 이들 앞에는 함께 프로젝트에 참가한 청년들이 출간한 독립출판 서적들이 전시돼 있다.

20~30대 청년 3인의 ‘나의 첫 번째 독립출판’ 제작기

한국외대 캠퍼스타운사업단, ‘독립출판 프로젝트’ 진행

“책을 내고 나니까 많은 인연이 생기면서 인생이 달라졌어요. 책 출간이 제 삶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지난 9일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독립서점 ‘인덱스’에서 만난 스페인어 강사 해준(38·필명)씨가 자신이 펴낸 책 <랩터스>(가익가 펴냄)를 보여주며 말했다. 해준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한 대학 연구원 유진아(39)씨와 프리랜서 윤채림(24)씨도 자신들의 책을 들어 보이며 동의의 뜻을 표시했다.

인덱스 2층에서는 각 독립출판 서적들의 제작 과정을 담은 전시가 진행됐다. 청년들이 책을 내기 위해 어떻게 자료 수집을 했는지, 제작 과정에서 표지 디자인은 어떻게 변했는지 등을 볼 수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유씨는 자신의 다양한 직업 경험을 다룬 <직업여행자의 밥벌이 다반사>(지음지기 펴냄)를, 윤씨는 ‘꿈 많은 Z세대의 퇴사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그럼 이만 퇴사해보겠습니다>(Slenbooks 펴냄)를 출간했다. 세 사람은 모두 스스로 설립한 독립출판사에서 책을 펴내면서 ‘작가’라는 호칭과 ‘독립출판사 대표’라는 직함을 함께 얻었다.

세 사람은 이날 인덱스에서 열리는 ‘나의 첫 번째 독립출판’ 전시에 참석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같은 날 시작해서 오는 22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는 세 사람을 포함해 모두 26인이 펴낸 ‘첫 번째 독립출판 서적들’이 전시 중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외국어대 캠퍼스타운사업단이 2020~2021년에 걸쳐 4차례 실시한 ‘독립출판 프로젝트’ 참가자들이다.


전시대에는 <철거풍경>(이경민),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송혜현), <꽈슐랭가이드>(김하람), <얼렁뚱땅, 요가강사가 되었다>(홍서빈), <요식업 디자인 노동자>(조유빈) 등 독특한 이름과 주제의 책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청년 창업 증진을 목적으로 진행된 해당 프로젝트는 독립출판에 뜻이 있는 만 39살이하 청년을 선발해 150만~190만원의 제작비와 디자인 프로그램인 ‘인디자인’ 교육 등 책 출간 지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독립출판 프로젝트’ 매니저는“2020년 5월 제1기부터 지난 8월의 제4기까지 지원자 평균 경쟁률이 10 대 1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매니저는 “지원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왜 지원했는지 물어봤는데, 상당수가 자기를 표현하고 싶다고 답했다”며 “‘나를 나타내는 게 중요한 시대가 됐음’을 새삼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날 모인 세 명의 출판사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해준 대표는 미국 프로농구 엔비에이(NBA) 팀 중 하나인 토론토 랩터스의 오랜 팬이다. 스페인어를 전공한 해준 대표는 대학 3학년 때인 2004년 캐나다 연수 때 랩터스를 알게 됐다. 1995년 창단된 뒤 계속 바닥권을 헤매는 팀이었다. 해준 대표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꼴찌 근방에 머무는 랩터스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스페인어 강사와 글쓰기·독서토론 강사로 바쁘게 살아왔지만, “한 방이 없다”고 늘 자신을 질책해왔던 그였다.

그런데 2019년 랩터스가 “일을 냈다”. 창단25년 만에 처음 NBA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만년 꼴찌의 우승을 지켜본 해준 대표는 “나도 할 수 있다.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독립출판 프로젝트’에 참가했고, 그렇게 태어난 책이 <랩터스>다. 책 출간은 정말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가장 큰 것은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게 해준점이다. 그는 “과거의 나 자신과도 화해했고,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했다. 해준 대표는 또 뭔가 새로운 것을 써보자는 마음도 커졌다고 한다.

유진아 대표는 “책을 펴내고 독립출판사를 열면서 ‘독서라는 평생의 동반자와 찐 사랑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유 대표는 책 제목처럼 상당히 많은 직업을 경험했다. 유 대표는 직업도 여행같이 느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많은 사람이 떠나고싶은 멋진 여행지를 많이 가지고 있듯이, 유대표에게 세상은 해보고 싶은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는 곳이다.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유 대표는 남미 에콰도르 청소년학교의 한국어 교사에서부터, 중·고등학교 강사, 청년 일자리 사업의 단기 일자리, 위탁형 대안학교 교사, 탈북자 대안학교 교사, 정부기관 계약직 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책 출간 뒤 경험·사고·네트워크 확장 이어져…책은 인생 동반자”

‘나 표현’ 청년 세대에게 독립출판 인기

‘랩터스’, 만년꼴찌팀 팬의 자기 극복기

‘직업…’, 직업여행하면서 책 놓지 않아

‘그럼…’, 퇴직과정 쓰면서 정체성 찾아

유진아(왼쪽부터)·해준·윤채림 대표가 지난 9일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독립서점 ‘인덱스’ 앞 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출간 과정을 얘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유 대표가 이렇게 다양한 직업여행을 하면서도 절대 놓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책’이다. “책은 제 가장 오랜 벗이고, 스승이자 부모예요. 그리고 담요와 꿈이기도 해요.” 책은 부모처럼 자상함으로 대해주기도 하지만, 담요처럼 힘들 때 위로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직장 상사의 갑질에 사표를 쓰고 나왔을 때도, 새로운 직장을 탐색할때도 그는 책에 빚진 것이 컸다.

책을 좋아하는 유 대표는 결국 독립출판 프로젝트에 참가해 ‘덜컥’ 출판사 등록까지 해버렸다. 마치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책을 만든 뒤 독립서점 200여 곳에 일일이 전자우편을 보내서 입고가 가능한지 묻는 것도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윤채림 대표에게 책을 낸다는 것은 ‘자기를 찾는 일’이었다. 영어통번역학부를 졸업한 윤 대표는 외국계 기업에 취업했다. 다른이들은 안정적이라고 좋게 평가했던 직장이었지만, 윤 대표에게는 자신을 ‘갇힌 존재’처럼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도서관에서 여행기를 많이 읽었어요. ‘나도 여행하고 글 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요. 직장에 다니면서도 계속 ‘이렇게 나이 들고 싶지 않다. 갇혀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윤 대표는 그때 ‘독립출판 프로젝트’를 만났다. 사표를 던진 뒤 퇴사 시점이 가까워오는 시기에 만난 프로그램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주저 없이 바로 지원해 독립출판의 길로 들어섰다.

윤 대표는 사표를 던진 날을 시작으로 살아온 날들을 역순으로 서술해나갔다. 회사생활과 그 이전의 아르바이트, 그리고 예전에 가봤던 여행 경험을 서술해가면서, 윤 대표는 자신의 가치관,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윤 대표는 자신의 책을 “주체성을 찾는 얘기를 다룬 것”이라고 설명한다.

세 사람은 단 한 권의 책을 냈을 뿐인데도 ‘세상이 크게 바뀐 것 같은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세 사람이 모두 함께 얘기한 것은 ‘인연의 확대’다.

“제 책을 지방의 독자가 인스타그램에 태그 해서 올린 사진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받은 첫 후기였거든요. 책으로 독자와 맺은 인연이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어요.”(해준 대표)

“가까운 사람은 저를 더 잘 알게 됐다고 말하고 잘 모르던 사람이 가까워지기도 해요. 회의 때 외에는 거의 보지 못하던 분이‘책이 나왔더라’고 친근하게 말씀을 건네주시기도 했어요.”(유진아 대표)

“대화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는 드러내기 어려웠던 ‘제 은밀한 내면’을 알게 되면서 ‘팬이 됐다’는 주변 사람들도 있어요. 책 출간을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해 주시는 것도 너무 좋아요.”(윤채림 대표)

세 사람은 이런 관계의 확대는 반드시 경험과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넓어진 경험과 사고는 또다시 다음에 출간할 책의 밑거름이 된다.

해준 대표는 “2009년 가봤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가보고 싶다”고 했다. 10여 년 전보다 훨씬 더 넓어진 시각으로 보고 들은 것을 책으로 담고 싶어서다. 그는 또 스포츠·음악·와인·연극 이야기도 책으로 펴내고자 한다.

유 대표도 앞으로 오랫동안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책도 꾸준히 낼 계획이다. 다만 상업출판의 굳어진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책을 내고 싶다고 그는 강조한다.

윤 대표는 우선 자신이 첫 책을 내면서 경험한 것을 후배 대학생들에게 전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현재 거제도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있다는 윤 대표는 책의 바탕이 될 다양한 경험도 쌓고 싶어 한다. 어쩌면 경험 쌓기를 위해 다시 회사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이 세 사람이 가는 길은 다 달라 보인다. 하지만 모두 언젠가 큰길에서 만날 것 같다. ‘책과 함께’라는 이름의 큰길에서.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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