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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음식 1호, 1768년 7월 냉면

등록 : 2016-05-04 15:38 수정 : 2016-05-04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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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음식의 역사는 생각보다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에 나오는 우리 민족 최초의 배달음식은 조선시대 냉면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황윤석의 <이재난고>에는 “과거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날짜는 1768년 7월이다. 당시 궁중에서 즐기던 고급 요리인 냉면이 양반층에서 인기가 생겨 배달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순조(1800~1834년)가 즉위 초 군직과 선전관을 불러 달구경을 하다가 “냉면을 사 오라고 시켰다”고 기록돼 있다. 교방 문화가 발달한 진주에선 관아 기생들도 진주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고 한다.

1906년 7월14일 일간신문 <만세보>에는 첫 배달음식 광고(사진)가 등장했다. “각 단체의 회식이나 시내·외 관광, 회갑연과 관·혼례연 등 필요한 분량을 요청하시면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광고주는 최초의 조선음식 전문점 명월관이었다. 당시 고급 요릿집의 대명사였던 명월관은 음식을 각각 그릇에 담아 교자상까지 차려 배달하기도 했다. 일종의 한정식 출장 뷔페였다.

조선 말기의 인기 배달음식은 해장국 ‘효종갱’(曉鐘羹)이었다. 광주 남한산성의 유명 해장국집에서 배추속대, 콩나물, 송이, 표고버섯, 쇠갈비, 해삼, 전복 등을 토장에 섞어 온종일 끓인 뒤, 밤사이 국항아리를 솜으로 싸서 소달구지에 실어 한양으로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때쯤 먹는 음식이었다. 통행금지 해제 시간까지 술을 마시던 사대문 안 양반들에게 효종갱은 속풀이에 그만이었던 모양이다. 서예가이자 문신인 최영년이 1925년 <해동죽지>에서 “광주 성내 사람들이 잘 끓인다. 국항아리가 그때까지 따뜻해서 해장에 더없이 좋다”고 쓸 정도였다.

1930년대 들어서면서 각종 탕과 냉면, 국밥, 비빔밥 등으로 배달이 확대됐고, 배달원의 일상이 신문에 소개될 만큼 배달 문화가 널리 퍼졌다. “다리 쓰는 일 중에 제일 많은 것이 배달부다. 한 시간에 달리는 거리는 대개 이십리. 하루 밤낮을 달린다면 거의 오백리나 된다.”(1931년 1월2일 <동아일보>)

1900년대 인천으로 중국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짜장면이 생겼고, 해방 이후 미국의 밀 원조에 힘입어 짜장면이 대중적인 음식으로 부상했다. 1950년대엔 ‘신속배달’이란 수식어와 함께 중화요리가 외식 문화의 한 축을 이루었다. 1980년대에 아파트 건설 붐이 일면서 단지마다 중국음식점이 들어섰다.

이와 함께 치킨 전문점들이 생겨나면서 본격적인 ‘배달음식 시대’가 열렸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조기 퇴직자들의 음식점 창업 러시로 배달음식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했다. 2010년대에는 정보기술(IT)과 결합한 배달앱까지 가세하면서 배달음식 시장은 연간 12조원 규모까지 성장했다. 


김정엽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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