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내밀한 이야기’ 담은 작가노트가 관객 만나는 색다른 전시

송파구 문화실험공간 호수 ‘작가노트 집(Zip)’ 실험전시

등록 : 2022-01-2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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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석촌호수 ‘문화실험공간 호수’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오는 2월6일까지 ‘작가노트 집(Zip)’ 전시가 열리고 있다. 2층 작가노트가 전시돼 있는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작가노트를 먼저 보고 작품 감상

47명 청년 예술가 창작과정 엿봐

신선한 시각, 작업 중 고뇌 등 담아

“새로운 가능성 살펴본 좋은 기회”

“작품 감상에 있어서 완벽한 해석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관람객이 작품보다 먼저 작가노트를 만난 뒤 작품을 감상한다면 해석이 달라질지, 아니면 그대로일지 이번 전시를 통해 실험해보고 싶었죠.”

관람객은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을 먼저 접하고 작품의 배경이나 작가의 의도를 알기 위해 작가노트를 살펴본다. 그렇다면 반대로 작가노트를 먼저 본 뒤 작품을 감상하면 어떻게 될까. 송파구 석촌호수 ‘문화실험공간 호수’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오는 2월6일까지 열리는 전시 ‘작가노트 집(Zip)’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 실험적인 전시다.

오연경(25) 문화실험공간 호수 큐레이터는 12일 “순서를 바꿔서 작가노트를 먼저 읽고 작품을 보면 어떻게 감상이 이뤄질까 궁금했다”며 “공간에 빼곡히 채워진 작가노트를 먼저 읽고 작가의 작품을 감상해보는 경험을 통해 작품을 상상해보는 일, 그리고 작품 감상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기는 계단에 전시된 작가노트와 작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송파구가 마련한 기획전시 ‘작가노트 집’은 청년 예술가 47명의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가노트의 ‘텍스트’를 담은 큼지막한 걸개를 작품처럼 만날 수 있다. 작가노트에는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의 작업 과정부터 신선한 시각이나 작업 중 겪는 고뇌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작가노트 집'은 작가노트뿐만 아니라 매달 작가를 선정해 실제 작품도 전시한다. 11월에는 기메수 작가의 증강현실 작품인 <어떤 기다림, 달빛 아래에서>, 12월에는 박다예 작가의 <해피 퍼피 하우스> 등 연작 회화작품 7점, 이태헌 작가의 프로젝션 매핑과 설치 작품인 <&크레딧(Credit)>의 영상을 전시했다.

박다예 작가는 주로 삶의 일상에서 찾는 ‘행복의 모양’을 작품으로 구현한다. 박 작가는 높은 건물 아래 풀을 찾아든 나비, 청계천 꽃 위를 나는 벌, 오후 해 질 녘 붉게 물든 하늘 등 일상 속에서 아름다운 영감을 주고 행복을 찾아주는 순간을 회화로 담아냈다.

1층에 전시된 박다예 작가의 작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작가노트는 대중에게 공개하기보다 큐레이터와 소통하기 위해 사용했죠. 이렇게 전시된 작가노트를 보고 나의 맨몸을 보는 느낌이 들어 처음에는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박 작가는 “나의 내밀한 이야기와 관객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한 발짝 더 앞에 서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이라서 색다르고 재밌었다”고 했다.

박 작가의 작가노트에는 남미의 동화 ‘해를 들어 올리는 난쟁이 요정’ 이야기를 통해 작가의 의도 등을 설명했다.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것을 본 아이가 해가 지면 내일 해는 어떻게 떠오르는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바닷속에는 난쟁이 요정이 살고 있어 아침이 되면 해를 들어 올려 해가 다시 뜬다고 알려준다. 박 작가는 “우리 마음에도 난쟁이 요정이 살고 있어서 희망이 사라져 힘든 시기가 올 때마다 희망과 행복을 들어 올린다”며 “나비, 벌, 할머니 뒷모습 등 우리가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순간들이 내가 생각하는 요정”이라고 했다.

이태헌 작가의 <&크레딧(Credit)>은 7천 개의 거울 조각이 연결돼 서로 이미지를 반사하도록 만들었다. 이 작가는 “거울에 빛이나 사물이 반사되는 것처럼 우리를 가두는 생각의 틀을 극복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연결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었다”고 했다.

‘문화실험공간 호수’에 작가노트와 작품을 전시한 박다예(왼쪽) 작가와 이태헌 작가가 12일 전시관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미디어아트 예술가인 이 작가는 주로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작품 활동을 한다. 프로젝트 매핑, 메타버스 등을 활용해 현실을 다르게 감각할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든다. 이 작가는 “미디어 등이 인간의 감각을 정형화하고 한계도 만들어내는데, 그런 것들을 깨부수고 싶은 욕망이 있다”며 “시뮬라시옹(실제가 가상 실제로 전환되는 것)이나 장자의 호접지몽 등에 큰 영향을 받아 우리가 경계나 한계를 둘 것이 아니라 무한히 상상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제 작품은 ‘이태헌 작가의 작품’으로 알려지지만 알고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협력한 결과물입니다. 미안하다는 생각 이면에는 내가 작품 소유권을 취한다는 생각이 깃들어 있죠.” 이 작가의 작가노트에는 같이 일하는 스태프에 대한 미안함이 녹아 있다. 예술 활동을 할 수 있게 뒷받침해주는 현장 직원들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 이에 대한 이 작가의 시각이 담겼다. 이 작가는 “작가노트는 시작과 끝”이라며 “작품을 만들 때 전시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작가노트를 쓰는데, 작품을 보고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누리집을 방문하면 작가노트를 볼 수 있게 한다”고 했다.

문화실험공간 호수에서는 전시와 함께 체험·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작가노트 페이지 북 바인딩’은 참여자가 직접 작가가 돼 자신이 원하는 노트를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작가노트 엠피(MP)3 렉처콘서트’는 작가노트가 있는 작가와 함께 작업 이야기를 응답 형식으로 들어보는 소규모 공연이다.

오 큐레이터는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 일반 작품 전시보다 늘어났다고 했다. 일반 관객뿐 아니라 작가들이 와서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오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텍스트 전시를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엿본 좋은 기회가 됐다”며 “앞으로 다양한 장르를 추가한 기획전시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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