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쏙 과학

전기료가 마이너스? ‘에너지 제로’ 공항고의 비밀

서울 쏙 과학 ⑥ ‘복사 냉난방 시스템’에 숨은 열 이동의 과학원리

등록 : 2021-04-15 15:35 수정 : 2021-04-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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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도움 없이 직접 열 전하는 복사

태양이 지구에 에너지 전달하는 방식

액체 등의 입자가 이동하는 대류보다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30% 더 높아


태양광·지열 동시 이용 에너지 자립고

‘온돌 복사열 원리’로 난방과 냉방 해결

학교 중앙홀, 지하수와 열 주고받으며


‘인체와의 열교환’도 활용해 온도 유지

공항고등학교는 남쪽 창에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상상해버렸다. 한 블로그에서 ‘복사열을 이용한 인체와의 열교환’으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 학교가 있다는 글을 읽은 순간, 중앙홀에 줄지어 서서 열을 뿜고 있는 학생들의 이미지가 떠올라버렸다.

하지만 직접 찾아간 강서구 공항고등학교 중앙홀은 텅 비어 있었다. ‘열교환’을 하는 ‘인체’들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학교측은 수업이 끝난 오후 2시30분 이후에 방문해달라고 했다. 코로나19 방역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앙홀은 훈훈했다. 그 ‘복사열’이라는 것이 어디선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올려다보니 5층 높이까지 천장이 뚫려 있었다. 천장엔 지붕 대신 창문이 있어 그리로 봄볕이 들어왔다.

햇빛. 태양에서 오는 빛이야말로 가장 큰 복사열의 원천이다. 태양은 약 1억5천만㎞ 떨어진 지구로 1㎡당 1.4㎾의 복사 에너지를 쏘아댄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 아무런 물질이 없어도, 그 열과 빛이 전해진다. 열이 물질의 도움 없이 직접 이동하는 것, 이것이 ‘복사’다.

내친김에 열의 이동 방법을 더 살펴보자.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복사·전도·대류. 물체를 이루는 입자의 운동이 이웃한 입자에 차례로 전달돼 열이 이동하는 방법, 이것이 전도다. 기체나 액체를 이루는 입자가 직접 이동해 열을 전달하는 방법, 이것은 대류다.

중앙홀로 비스듬하게 들어온 오후의 햇빛은 차츰 짙어지는 그림자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의문이 떠올랐다. 정말 태양 복사만으로 이렇게 따뜻해질 수 있는 걸까? 혹시 다른 에너지원이 있는 건 아닐까?

문득 블로그 글에서 읽은 ‘바닥 복사 냉난방’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바닥을 짚어봤다. 여느 대리석 바닥답지 않게 미지근했다. 봄볕이 제아무리 따가워도 실내 바닥까지 데울 수는 없을 터. 공항고는 태양열과 함께 지하수의 열을 이용하고 있었다.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을 통해 전체 건물 상태를 파악하는 안중성 공항고 시설관리부장.

그때 안내차 나온 공항고 시설관리부의 안중성 부장이 중앙홀 구석의 한 벽면으로 이끌었다. 분홍색으로 곱게 칠한 벽 아래에는 흰 문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신발장 같은 크기의 평범해 보이는 문. 그러나 자물쇠가 붙어 있었다. 잠겨 있는 모든 것은 열어보고 싶은 유혹을 일으킨다. 안 부장이 작은 열쇠를 꺼내 들고 물었다.

“보여드릴까요?”

“예! 그럼요.”

중앙홀 바닥에 깔린 파이프라인을 조절하는 밸브들.

문이 열리자 파란 꼭지 일곱 개와 빨간 꼭지 일곱 개가 나타났다. 제각각 파이프라인과 연결돼 있었다. “중앙홀 바닥에 깔린 파이프”라고 행정실의 전금남 부장이 설명했다. 파이프 안에는 지열로 데워진 물이 흐르고 있단다.

“지하에 지열을 이용하는 히트펌프가 있어요. 겨울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지하수가 열을 주고, 여름에 기온이 치솟으면 열을 뺏어가지요. 지하수는 1년 내내 15도 정도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거든요.”

두 사람은 지하의 설비실을 열어 히트펌프를 보여줬다. 히트펌프는 흘러들어온 지하수에서 여름에는 열을 빼앗아 9도로 낮추고 겨울에는 열을 더해 52도로 높여준다. 이것이 바닥에 깔린 파이프로 흘러가면서 적정 온도를 유지해준다.

공항고의 안중성 시설관리부장(왼쪽)과 전금남 행정부장이 히트펌프 등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그렇다면 블로그 글에 언급된 ‘복사열을 이용한 인체와의 열교환’은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 자, 이 대목에서 열의 정의를 되짚어보자. 열이란, ‘온도가 높은 물체에서 온도가 낮은 물체로 이동하는 에너지’다. 쉽게 말해, 따뜻한 쪽에서 차가운 쪽으로 흘러가는 게 열이다.

겨울엔 바닥 열기가 천장 쪽으로 올라간다. 실내는 따뜻해진다. 온돌의 원리와 같다. 여름엔 반대다. 바닥엔 찬물이 흐른다. 그 위에 선 사람 체온은 평균 36.5도. 인체의 열은 온도가 낮은 쪽, 즉 바닥으로 흘러간다. 무더운 여름 동굴에 들어갔을 때 바람 한점 불지 않아도 시원함을 느끼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게 ‘인체와의 열교환’이다.

이러한 복사 냉난방 시스템은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천장 복사 냉방이 에너지 절감 잠재력이 가장 높은 기술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복사난방은 대부분 미국 가정에서 이용 중인 온풍 난방보다 에너지 효율이 30% 더 높다고 밝혔다.

건축물 에너지 효율 1등급, 녹색건축 2등급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엔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까지 받은 공항고의 에너지 효율은 어떨까. 안 부장의 대답은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전기료요? 어느 달엔가는 마이너스가 나오기도 해요. 소비량보다 저축량이 많다는 뜻이죠. 창문과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깔았는데, 거기서 저장되는 에너지가 소비량보다 많아요.”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고 에너지를 자체 생산해 사용하는 건물. 내부 에너지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해 에너지를 극도로 아끼는 친환경 건축물. 공상과학영화 같은 소리라 여겼던 ‘에너지 제로’ 건물은 실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창문 밖으로 이중창처럼 덧댄 태양광 패널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패널은 여름철 차양처럼 태양 열기는 막아주되 태양 에너지는 흡수하고 있었다. 4월의 햇빛이 그 위에서 반짝였다. 에너지의 미래는 우리 곁에 와 있다고 속살거리듯.

천장의 검은 파이프라인은 기류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공기확산기(디퓨저)다.

글·사진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참고 자료: 서울시교육청 블로그 ‘서울교육나침반’, 한국천문연구원 천문우주지식정보, 한국에너지공단 에너지 이슈 브리핑 ‘현대식 온돌 냉난방시스템’, 서울시교육청 ‘공항고등학교 이전·신축공사’ 계획서.

자문: 고재환 서울시교육청 교육시설안전과 주무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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