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쏙 과학

전기택시에는 리튬이 만드는 ‘에너지 폭포’가 있다

서울 쏙 과학 ④ ‘충전’과 ‘방전’ 반복하는 에너지 준위의 원리 이용한 리튬이온전지

등록 : 2021-03-18 15:47 수정 : 2021-06-2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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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준위 높은 리튬을 이용해

에너지 준위 낮은 불소 만나게 하면

전자 주고받는 힘 폭포처럼 거세져

그들 사이에 낀 흑연, 전기 세기 조절


운행 택시 한 대를 전기차로 바꾸면

연간 CO₂ 21t가량 온실가스 줄어

서울 전기택시 1035대…전체 1.4%


시, 올해 보조금 활용 300대 늘릴 계획

서울 시내를 주행하는 전기택시. 앞문 옆에 ‘개인 친환경 스위치’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개인 친환경 스위치?’

서울에서 운영되는 친환경 전기택시 브랜드 ‘스위치’라는 글씨를 차량 옆면에서 봤을 때만 해도 기연가미연가했다. 그때 택시 특유의 갓등이 눈에 들어왔다. 후미등 위엔 ‘KONA’(코나)라는 영어 글씨가 은빛으로 반짝였다. 엘지(LG)에너지솔루션의 리튬이 온전지를 탑재한 전기차 브랜드다. 서울택시 100대 중 1.4대꼴이라는 전기택시가 분명하다면, 탈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달렸다. 좁은 길을 엔진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차를 따라잡으려, 구두를 신은 발로 전속력을 냈다. 백미러를 향해 애타게 손을 흔들어댔지만 차는 점점 멀어졌다. 마스크 속에 이산화탄소가 차면서 호흡이 가빠졌다. 포기하려는 순간, 택시가 건널목 신호등에 잡혔다. 다시 뛰었다. 차 문을 열고 좌석에 몸을 던지며 외쳤다.

“헉헉, 이거, 전기택시, 맞죠?”

“예. 맞습니다. 어디 가세요?”

행선지와 함께 ‘배터리의 과학 원리에 대해 쓰려고 하는 과학 스토리텔러’라고 소개했다. 이창훈 택시기사는 반색하며 “기사로 꼭 써달라”고 말했다. 그는 동료기사들을 만날 때마다 전기차의 좋은 점을 늘 이야기한다. 전기택시로 바꾼 지 1년6개월. 예전 차에 비해 운행비가 연 500여만원,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가속도 잘되고, 운행감도 훨씬 좋아요. 충전소도 이제 꽤 많은 거 같아요. 이거 보세요. 이 근처만 해도 이렇게 많이 뜨잖아요.”

전기차 내부 모습. 운전기사는 엘피지(LPG) 차량에 비해 냄새도 없는데다 운행감도 좋다고 했다.

그가 가리키는 내비게이션 화면에는 450m 거리에 서울상공회의소, 500m 거리에 신한은행 등등 여러 곳의 ‘실시간 충전소 상태정보’가 떠 있었다. 급속으로 완전히 충전하려면 50~60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보통은 완전히 방전되기 전에 충전하기 때문에 30분만 충전해도 무리가 없다. 완전히 충전하면 400㎞, 하루 운행 정도는 거뜬히 소화한단다.

전기차에는 노벨화학상에 빛나는 리튬이온전지의 과학 원리가 숨어 있다. 물질들의 ‘에너지 준위’(energy level) 차이를 이용해 전지 속에 전기에너지를 가둬두는 것이다.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이차 전지가 없었다면 스마트폰 혁명은 물론 신재생에너지의 보편화도 어려웠을 것이다.

리튬을 이용한 충전법을 찾아낸 공로로존 구디너프, 스탠리 휘팅엄, 요시노 아키라 등 교수 3명은 2019년 노벨화학상을 공동수상했다. 당시 노벨위원회가 발표한 보도자료엔 이 발견의 의미가 잘 녹아 있다.

“그들은 ‘재충전할 수 있는 세상’을 창조했다. … 이 가볍고 재충전되는 강력한 전지는 휴대전화에서부터 노트북과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사용되고 있다. 또한 태양에너지와 풍력발전으로부터 상당량의 에너지를 저장하면서 화석 연료 없는 사회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사회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리튬이 온전지의 과학 원리가 뭔지 살짝 맛만 보자. 먼저, ‘에너지 준위’. 이건 쉽게 말하자면 전자 등 입자가 갖는 에너지값이다. 원자 속에서 전자들은 제각기 자기가 가진 에너지값에 따라 핵 주변을 돈다. 핵에서 멀리 도는 전자는 에너지 준위가 높다. 그런 전자는 마치 댐 위에 갇힌 물처럼 틈만 나면 낮은 곳으로 떨어지려 한다.

에너지 준위가 높은 금속이 리튬(Li)이다. 뭐든 계기만 있으면 전자를 줘버린다. 물만 만나도 바글바글 전자를 내뿜는다. 불소(F)처럼 에너지 준위가 물보다 낮은 물질, 즉 전자를 받는 걸 더 좋아하는 물질을 만나면 그 힘이 폭포처럼 거세진다.

이 성질을 길들여 유용하게 쓰는 법을 과학자들이 찾아냈다. 에너지 준위 차이가 높은 리튬, 그리고 전이금속산화물처럼 에너지 준위가 낮은 물질을 조합하되 전해질과 분리막으로 전자의 이동을 제어해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다.

복잡한 원리지만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이렇다. 최근의 리튬이온전지는 흑연(C6)을 음극으로, 전이금속산화물인 리튬코발트산화물(LiCoO₂)을 양극으로 쓴다. 처음엔 방전 상태로 시작한다. 여기에 전기에너지를 넣으면 전이금속산화물에 있는 리튬이온과 전자가 음극 흑연으로 이동해 리튬이 포함된 흑연(LiC6)이 된다. 에너지가 저장된다. 이게 충전이다.

전자를 주고 싶어 하는 리튬과 받고 싶어하는 불소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 같은 사랑. 그들 사이에 낀 흑연. 이들의 삼각관계를 상상하다가 문득, 충전 중 일어났다던 전지화재 사건이 떠올랐다. 전지 결함인지 전지관리시스템(BMS) 문제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전지제조사와 자동차회사는 공동책임을 지고 리콜을 결정했다.

이 택시의 기사 역시 “현대차로부터 안내문자를 받았다. 4월 초에는 무상점검과 리콜을 받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불안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그렇게 치면 엘피지(LPG) 차도 위험하죠. 제가 자가운전까지 합치면 운전경력만 25년이에요. 이런저런 차, 다 타봤어요. 엘피지 타면 차 안에서 냄새도 나고 머리도 아파요. 저는 (전기차에) 만족해요.”

서울시에 등록된 전기택시는 2020년 12월 기준으로 1035대다. 서울시는 올해 300대의 전기택시 운전자를 모집해 최대 1800만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올 연말에는 전기택시가 1300여 대로 늘 수 있다.

택시는 하루 주행거리가 일반 승용차의 7~13배다. 그래서 택시를 전기차로 교체하면 일반 승용차보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크다. 택시 한 대를 전기차로 바꾸면 연간 이산화탄소로 21t가량의 온실가스가 줄어든다.

리튬이 일으키는 에너지 폭포가 지구에는 평화를 준다. 과학자들은 나트륨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희귀성 때문에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리튬 대신 바닷물 속에 흔히 있는 나트륨으로 2차 전지를 만들 수 있다면 그건 노벨평화상감 아닐까?

전기차 충전기 업체 대영채비 김인창 연구소장이 지난 2일 대구 공장에서 전기차 충전기별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자문 : 김영식 울산과학기술원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 LG에너지솔루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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