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농사짓자

잡초? 모르면 원수, 알면 친구

이름 없는 잡풀도 제각각 갖고 있는 생존 이유 살피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어

등록 : 2016-05-26 15:42 수정 : 2016-05-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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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만(5월20일)을 전후해 경기도 고양 등 수도권에 폭염주의보가 발동됐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지구가 단단히 화가 났다. 그렇게 화석연료 태우고, 숲을 없애고, 땅을 죽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날씨가 그렇게 더워지다 보니 작물 생장 시기도 빨라졌다. 4월부터 5월에 심은 작물들과 함께 풀들이 아우성을 치며 솟아오른다. 풀은 어린 모종보다 더 빨리 그리고 힘차게 올라온다. 초보 농부들은 그 속도에 기겁한다. 풀들을 놔두면 작물이 살아가기 힘들다. 풀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초보 농부들이 첫해 여름을 지나면서 적잖이 농사를 포기하는 건 바로 그 풀 때문이다.

제때 하면 30분, 하루이틀 늦추면 한나절, 사나흘 늦추면 하루 종일, 한두 주 놓아 두면 두 손 두 발 들게 만드는 게 김매기다. 그러면 풀은 그렇게 제거만 해야 할 대상일까?

질경이
차즈기
닭의장풀

쇠뜨기 뿌리 자르면 통기·통습 해결

고양 선유동 맹추네 농장은 풀 반 작물 반이다. 바로 옆 밭은 풀이 한 포기도 없다. 사막 같다. 그런데도 작물들은 잘도 자란다. 맹추네 도시 농부보다 밭을 자주 잘 돌보는 것도 아니다. 알고 보니 옆 밭에선 밭갈이를 할 때 토양 살충제와 제초제를 무더기로 뿌리면서 땅을 뒤집는다. 모종을 심을 때는 심기도 전에 검은 비닐로 이랑을 덮어 버린다. 작물 이 외에는 자랄 수 없게 만들었다. 고랑에 풀이라도 나올라치면 다시 제초제를 뿌린다. 제초제는 베트남 참전용사들이 겪은, 대를 이어 몸을 파괴하고 기형을 낳는 고엽제 성분이 들어가 있다. 그렇게 재배한 작물을 농부와 그 가족들은 먹기나 할까?

이른바 ‘잡초’라고 하는 풀은 알면 친구요, 모르면 원수다. 사귀면 아군이고 미워하면 적이다. 그런 풀들도 나름의 생존 전략이 있다. 땅을 기면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 홀로 키를 올려 주변을 장악하는 것, 넝쿨로 뻗어가는 것, 뿌리를 깊게 내려 생존하는 것, 뽑아 놓으면 슬그머니 다시 뿌리를 내려 부활하는 것 등. 모두 하늘의 뜻을 따라 종족을 번식하려는 것이다.

초보 농부를 가장 괴롭히는 건 바랭이다. 옛날부터 ‘논에는 가리(갈대)가 원수, 밭에는 바랭이가 원수, 집에는 시뉘가 원수’라는 말이 있었다. 바랭이는 잡초의 여왕이다. 작물의 키가 작으면 땅을 기며 세력을 넓히다가, 작물의 키가 크면 저도 키를 늘려 작물 위에 군림한다. 뿌리를 뽑아 버리면 마디에서 뿌리를 내어 불사신처럼 되살아난다. 강아지풀도 질기다. 뿌리가 억세 몇 주 놔두다 보면 손으로 뽑을 수 없을 지경이 된다. 농부와 가까워지기 참으로 힘든 친구다.


큰 키로 작물을 못 살게 하는 것에는 명아주·개망초·털비름·밭피·돼지풀·왕고들빼기 들이 있고, 넝쿨을 뻗어 주변 작물을 괴롭히는 것에는 환삼·돌콩·나팔꽃이 있다. 키는 작아도 뿌리를 깊이 내려 흙속을 장악하는 것에는 쇠뜨기·조뱅이가 있고 잔디처럼 밭을 덮는 것에는 괭이밥이 있다. 한련초·털비름·밭피·닭의장풀은 뿌리를 뽑아 놓으면 죽은 척하고 있다가 비가 오면 다시 살아난다.

그러나 모든 풀은 뿌리로 영양분을 끌어올리고 빗물을 내려보낸다. 작물을 위압하고 타고 올라가는 것은 뽑거나 일찌감치 잘라 주어야 하지만, 그들 또한 하는 몫이 있다. 쇠뜨기는 ‘염라대왕이 쓰는 화로의 부젓가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뿌리를 깊게 내린다. 원자폭탄이 터진 히로시마에서도 살아남은 게 쇠뜨기다. 따라서 쇠뜨기는 없애려 하지 말고, 호미나 김매기 낫으로 뿌리를 잘라, 통기 통습을 하도록 하면 된다. 환삼이나 메콩은 어릴 때 뽑아야 하지만, 이런 식물은 황폐한 땅을 되살려 주기도 한다. 고추밭의 비름은 탄저병을 예방해 주는 구실을 한다. 봄이 지나면서 씨를 맺고 시드는 냉이·꽃다지는 그대로 두어 이듬해 봄 나물로 삼고, 키가 작물을 덮지 않는 조뱅이·비름은 낫으로 잘라 주면 된다. 밭을 덮는 괭이밥도 마찬가지다.

쇠뜨기
괭이밥
망초
고들빼기

김매기는 대강대강 여러 번이 좋아

대부분 풀들은 보릿고개를 넘기게 해 주는 쓸모있는 먹거리였다. 개망초·명아주·왕고들빼기·비름·괭이밥·쇠비름·질경이 들은 시쳇말로 하면 자연건강식품이다. 괭이밥의 시큼한 잎은 효소로 만들면 여름철 건강 음료수가 되고 샐러드용으로도 훌륭하다. 쇠비름도 효소로 좋다. 방아·차즈기처럼 향내 나는 풀들은 해충을 막아 준다. 이런 풀들은 뿌리가 깊지 않으니, 요리 재료로 쓰다가 작물을 덮을 정도로 키가 크면 정리하면 된다.

김매기는 한번에 꼼꼼히 하기보다는 대강대강 여러 번 하는 것이 좋다. 뽑는 것보다 계속 베어 내고, 벤 것으로 작물 주위를 덮어 주면 습기를 보존하고 다른 풀들이 세력을 넓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초보 농부는 풀밭을 만들어 농사를 망치고, 중농은 풀을 보아야 매고, 경험 많은 농부는 풀이 나기 전에 매 준다고 한다. 풀은 비를 몇 번 맞고 나면 작물을 가릴 정도로 키가 큰다. 장마 전까지 밭에 갈 때마다 호미를 들고, 두둑과 작물 사이를 긁어 주자. 뿌리가 흔들리면 성장이 억제된다.  

유광숙, 김희수 도시 농부

사진 맹추네 농장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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