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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기관이 해적 방송 추구한다고?

서울문화재단의 유튜브 방송 스팍TV 개국, 다양한 성격의 시민피디 15명, B급 영상문법

등록 : 2018-09-20 16:22 수정 : 2018-09-2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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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상암동 서울산업진흥원(SBA) 촬영장에서 서울문화재단 김미희 시민피디(사진 가운데)가 서울문화재단 미디어소통실 임승언 주임(왼쪽), 조윤식 촬영감독과 함께 18일 문을 연 재단의 온라인 방송사인 ‘스팍TV’ 개국 기념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있다. 아래 사진들은 대부분이 유튜버인 15명의 서울문화재단 시민피디들이 자율적으로 만든 ‘스팍TV’ 정규 편성 프로그램. 왼쪽부터 .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유튜브로 문화의 장벽을 낮춰라.”

지난 18일 개국한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직무대행 서정협)의 온라인 방송국 ‘스팍TV’의 미션이다. 스팍TV는 서울문화재단의 기존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user/sfacmovie)에 ‘뉴스’ ‘예능’ ‘다큐’ ‘토크’ ‘교양’ 등 요일별 고정 프로그램을 보탠 것이다. 한마디로 ‘방송국 편성표’를 갖춘 셈이다. 스팍TV의 ‘스팍’(SFAC)은 서울문화재단의 영문명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의 약자다.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인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온라인 방송국인데도 스팍TV는 근엄하지 않다. 스팍TV 개국 총감독을 맡은 이정훈 서울문화재단 영상감독은 이 방송을 “욕설·외설 빼놓고 다 되는 해적 방송”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기존의 지상파TV나 광고의 ‘고상한’ 영상 문법을 따르지 않겠다는 의미다. 스팍TV는 오히려 자유롭고 틀이 없는, 때로는 B급으로 인식되는 유튜브 영상 문법을 좇는다. 여기서 해적방송은 유럽의 시민방송이 규제 등을 없애기 위해 벌인 저항과 실험 방송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자유로움을 상징한다.

개국일인 지난 18일 스팍TV에 올라온 화요일 고정 프로그램 <케빈 & 제인>을 살펴보자.

“케빈, 뭐해요?” 유튜브 화면 속에서 1980년대 풍으로 머리를 두 갈래로 가지런히 땋은 여인 ‘제인’이 묻자, 옆에 있던 8 대 2의 예스런 가르마를 한 남자 ‘케빈’이 쌀쌀맞게 답한다. “제 일이에요. 상관없잖아요.”

의도적으로 복고풍 의상과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은 대사조차 입모양과 맞지 않는다. 영상을 보면 금세 더빙 싱크로율이 낮았던 1970~80년대 텔레비전에서 방영됐던 외화가 떠오른다. 그러나 ‘어색한 더빙 한국어’로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는 사이, 사람들은 어느새 ‘예술+기술+생명 아이디어’를 모으는 서울문화재단의 ‘다빈치 아이디어 공모’ 사업에 대해 알게 된다.

<케빈 & 제인>은 서울문화재단의 김유라·신유정 두 시민피디의 작품이다. 두 사람은 지난 3월 시민피디 15명을 뽑는 서울문화재단의 공모에 선정돼 다른 시민피디들처럼 한 달에 두 편씩 동영상을 만든다. 서울문화재단 시민피디들은 19살의 대학 신입생에서부터 30대 후반의 안무가, 큐레이터, 독립영화감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대부분 유튜브에서 자기 채널을 가지고 활동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유튜브 영상 문법에 익숙하다.


신유정 시민피디도 <케빈 & 제인>과 같은 포맷을 만든 이유를 “요즘 유튜브에서 1980년대식 복고 영상 붐이 일고 있다”며 “지상파 TV에서처럼 전문가를 앉혀놓고 정보 전달을 하면 요즘 세대들은 재미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피디의 이런 지적에 함께 활동하는 시민피디 15명은 모두 공감을 표시한다. 대부분 유튜브 활동을 하며 피부로 느낀 문제이기 때문이다.

복고풍의 앵커가 과장된 말투로 문화 소식을 전하는 월요일 고정 프로그램 <스파-크 뉴스>를 기획한 정광석(33·비디오 영상집단 ‘비디오트럭’에서 활동) 시민피디는 “요즘 세대는 내용보다는 이미지로 어떤 영상을 볼 것인지 선택한다”고 한다. 뭔가 튀거나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 영상은 클릭조차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문화 행사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 할 때도, 정보에 집중하기보다는 먼저 눈에 띄는 이미지와 캐릭터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게 정 피디의 지적이다. 한마디로 시민피디들의 복고풍 콘텐츠들은 유튜브에서 잘 통하는 포맷(틀)을 사용해 문화에 대해 높은 벽을 쌓고 있는 젊은 층의 벽을 낮춰보자는 것이다.


복고풍 영상과 재미로 승부

“공기관 동영상 트렌드 바뀔 것”

동영상 바다 유튜브서 생존이 과제

유튜버, 시민피디로 상당수 참여

서울문화재단 시민피디들이 지난 5월 동대문구 서울문화재단 회의실에서 재단의 이정훈 영상감독(왼쪽부터 네 번째 서 있는 사람)과 함께 ‘스팍TV’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개국과 함께 올라온 <스파-크 뉴스>를 보면, 앵커 ‘배간지’씨가 큰 안경에 올백 머리를 하고 헐렁한 양복을 입고 앉아 9월30일까지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리는 전시‘그때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를 소개한다. 만화 같은 목소리로 이 전시가 올해 작은예술지원사업으로 선정됐다는 것과 전시회에 “제주 강정마을, 일본 오키나와의 미군 주둔 문제 등을 다룬 작품”도 나온다는 뉴스를 들으면 묘한 느낌이 든다.

배간지 앵커 역을 맡은 배욱진(34) 시민피디는 좀더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 평소에도 유튜브에 있는 복고풍 영상들을 많이 살피며 공부한다. 별명인 ‘배간지’로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배 피디는 “유튜브 시청자들이 한두 번은 참신하게 느껴도 계속 같은 포맷을 쓰면 식상할 수 있다”며 “늘 새로운 포맷도 유튜브를 보면서 같이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스팍TV의 고정 프로그램이 복고풍 영상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박종언(31) 시민피디가 기획·제작한 수요일 고정 프로그램 는 박 피디와 다른 시민피디 한 사람이 배드민턴이나 원반던지기 등으로 ‘승부’를 겨루면서 서울문화재단 문화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가령 박 피디는 경기 중 불리해지면 위기 탈출을 위해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상대에게 묻는다. 상대방은 박 피디의 질문에 길게 답하다가 그만 공을 놓치고 만다. 바로 이어서 해당 문화 프로그램을 스케치한 박 피디의 영상이 나온다.

이제 막 닻을 올린 스팍TV가 얼마나 순항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유튜브라는 바다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새로운 동영상들이 하루에도 수만~수십만 개씩 올라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피디들은 “100%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며 “스팍TV가 앞으로 정부 산하기관이나 전국 문화재단의 동영상 트렌드를 바꾸는 데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핵심은 재단이 시민피디들에게 아주 큰 폭의 자유를 주었다는 점이다. 구독자 4만여 명의 유튜브 채널 ‘취미탐험’을 운영하는 박종언 피디는 “스팍TV는 시민피디들에게 영상에 들어가야 할 핵심 내용만 제시하고 영상 형식에서는 매우 큰 자유를 주었다”고 설명한다. 박 피디는 “라는 포맷을 제시할 때도 ‘이 정도까지 오케이일까’라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스팍TV 스태프는 수정 없이 수용했다”며 “이는 틀에 박힌, 형식적 대응을 하는 상당수 다른 기관들의 중간실무자들과는 다른 태도”라고 한다.

스팍TV 스태프의 이런 유연한 태도는, 이 새로운 방송이 유튜브라는 큰 바다를 항해하는 데 훈풍으로 작용할 것 같다. 시민피디라는 돛을 달고 배는 이미 바다로 나아갔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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