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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거실로 개조한 한옥 “감나무의 변화 눈앞에서…”

건축 80년 천연동 한옥을 리모델링해 한옥공모전 대상 조정구 건축가

등록 : 2017-11-0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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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주최 제7회 한옥공모전

마당 감나무 바로 옆에 4평 거실

통유리·철제 프레임으로 새 공간

현장 답사해 자연스러운 건축 추구

조정구 건축가가 ‘천연동 한옥’에서 리모델링 과정을 얘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대문구 영천시장 뒤편의 독립문로8길 골목. 서울 도심 주택가인데도 재개발 바람에서 비켜나 1960~1970년대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동네다. 이 골목길 동 이름(천연동)을 따 ‘천연동 한옥’으로 알려진 집이 있다. 대지 119㎡(36평)에 건축 면적이 71.3㎡(22평)인 조그만 한옥이다.

이 집이 지난달부터 명성을 얻었다. 국토교통부가 주최한 제7회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1939년에 지어 80년 가까운 세월이 쌓인 집을 리모델링해 대상을 받은 조정구(51) 건축가(구가도시건축 소장)를 한옥에서 만났다.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니 마당에 자리한 4평 크기의 아트리움과 붉은 잎의 감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천연동 한옥’은 아트리움을 활용해 마당을 거실로 변신시켰다. 국토교통부 제공


작고 낡은 한옥을 손봐 대상을 받았다는 게 놀랍다.

“솔직히 대상은 생각지 못했다. 대상 아래인 ‘올해의 한옥상’은 어느 정도 기대했지만. 그동안 세 차례 ‘올해의 한옥상’을 받아서인지 더 기쁘다. 올해 주제인 ‘한옥의 현대화’에 이 집이 어울렸던 것 같다.”

‘천연동 한옥’은 기존 한옥의 가치와 시간의 흔적을 잘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주거 요구를 반영해 한옥 개·보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마당을 거실로 활용하고, 대신 마루에 주방과 식탁을 들였다.

마당 아트리움에 뚜껑을 덮어 거실로 쓰는 게 신선하다.

“통유리와 철재 프레임을 통해 실내 공간이 됐다. 바닥엔 마루를 깔았고. 거실이 된 마당, 마당으로 나온 거실이랄까?”

조 소장은 이 거실에선 자연의 일부가 돼 시간과 자연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누릴 수 있다며, 그 느낌을 감나무로 표현했다.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감꽃이 피고, 잎이 연해지며 윤기가 나고, 감이 열리고, 낙엽이 떨어질 때 감이 익고, 마침내 까치밥이 되고 나면 겨울이 오고.

혹시 춥지는 않을까? 지난해 3월 리모델링을 마치고 입주해 겨울을 난 주인 김혜정씨는 “실내 온도를 20도에 맞춰 난방했는데 특별한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한옥과 마당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한국인의 정서는 자연과 교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가까이 들여 관계를 맺는 것인데, 마당이 있는 한옥은 그런 교감에 적합한 집 형태다.”

조 소장은 건축계 안팎에서 ‘수요답사’라는 발품팔이로도 이름난 존재다. 서울대와 일본 도쿄대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선배의 건축사무소에서 현장을 경험한 그는 2000년 11월 ‘구가도시건축’ 사무소를 세웠다. 그러곤 수요일마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를 돌며 건축을 매개로 서울의 삶과 장면들을 기록해왔다. 그 답사의 숫자가 지금까지 789회를 찍었다.

고집스럽게 보일 정도다. 답사 동기와 진행 방식은?

“사람들이 사는 모습, 삶의 형상이 궁금해서다. 소설가가 시장 같은 곳을 돌아보는 것과 비슷하다. 오래된 동네의 한 지점에서 시작해 동네 분들을 만나고 동네 모습을 스케치와 사진 등에 담는다. 그다음 주 수요일엔 지난주 답사가 끝난 지점에서 답사를 이어간다. ‘땅따먹기’ 놀이처럼 답사 지역을 넓혀가는 방식이다. 보광동과 한남동, 이태원 등을 둘러보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둘러보니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정체성이 확실한 도시다. 조선 시대 이래로 자연과 지형에 순응하며 건축물이 들어섰다. 한강과 내사산(남산, 낙산, 북악산, 인왕산), 외사산(관악산, 북한산, 아차산, 덕양산)을 거스르지 않고 주거지와 궁궐이 어우러졌다. 서양 선교사들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감탄한 이유다. 그 정체성이 1960~1970년대까지 어느 정도 지속됐는데, 1980년대 이후 무분별한 토목사업과 난개발로 크게 훼손됐다. 동네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기왕에 답사했던 동네들이 사라지는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지금 ‘서울의 집'은 무엇이 문제인가?

“너도나도 ‘아름답고 살기 좋은 서울’을 얘기하지만, 아파트 방식의 개발이 결코 능사가 아니다. 서울의 구도심이나 주거지역은 자연과 역사를 고려한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이런 곳은 되도록이면 3층 이상을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야 햇빛과 바람을 누릴 수 있다.”

서울시가 ‘뉴타운’을 폐기하고 추진하는 도시재생에 대한 생각은?

“큰 방향에서 옳다고 본다. 하지만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개발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아파트만 짓지 않지 사실상 개발하듯 밀어붙인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던 것들에 대한 존중과 섬세함이 필요한 것 같다.”

조 소장이 꿈꾸는 집은?

“집은 ‘마음의 풍경’이다. 자연스러운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주는 집, 마음이 편안한 집이 좋다. 마치 편안한 연애처럼. 자꾸 긴장하고 모습을 바꾸면 연애가 힘들지 않나?”

한옥과 마당이 편해서인지, 조 소장은 15년째 서대문구 충정로 근처 한옥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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